상상의 놀이터(Imaginary Playground)로 초대합니다. 작가, 그레이스 은아 킴
상상의 놀이터(Imaginary Playground)로 초대합니다.
작가, 그레이스 은아 킴
2016년 10월 27일 직원들의 출근이 막 시작된 아침 시간에, 신포동 주민센터의 한 직원이 인천아트플랫폼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네댓 명이 검은 천을 들고 이리저리 다니며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어 지나가던 동네 주민과 행인들이 무섭다고 민원을 넣었다는 것이다.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가 이런 일을 ‘벌였다’던데… 어찌된 것이며, 도대체 언제 끝나는 것이냐”는 것이 문의의 골자였다. 우리는 그레이스 은아 킴 작가가 동틀 무렵부터 퍼포먼스를 할 것이라고 사전에 알려 왔기에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공손히 대답해드렸다. “곧 끝날 것입니다. 예술 작업이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 아침 나절 가벼운 소동이라면 소동이랄까?
‘상상의 놀이터(Imaginary Playground)’라는 제목의 이 해프닝은 2016년 인천아트플랫폼 국외 입주작가인 그레이스 은아 킴이 추진한 프로젝트로, 폭 1미터, 길이 약 45미터에 달하는 검은 천을 도심의 여러 장소들을 이동하며 일시적으로 설치했다가 치우는 작업과 5명의 공연자들이 출연한 퍼포먼스로 구성된다. ‘상상의 놀이터’라는 타이틀에서 ‘상상의’는 불필요한 수식어인지도 모르겠다. ‘놀이’가 항상 상상의 세계를 전제하고, ‘상상’이야말로 ‘놀이’의 기본적인 속성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할 때 자기가 엄마, 아빠, 어른이라 상상하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수퍼 영웅이나 공주와 왕자가 되지 않던가. 여러 가지 역할극은 실제가 아닌 픽션의 세계에 내 자신을 투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눈이 내리다’와 ‘흰 눈이 내리다’가 결국은 같은 뜻이지만 다른 어감인 것처럼, ‘상상의’라는 수식어 덕에 놀이의 ‘상상적’ 속성이 환기되고 그 가치가 부각된다.
과연 그레이스 은아 킴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정작 행인들은 놀라고 심지어는 무서워하기까지 했던 그 모든 행위가 그저 ‘놀이’였고, ‘재미있자고 한 것’은 아닐 터였다. 작가는 오히려 어린 아이가 수퍼영웅이 되는, 즉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장소로서 놀이터의 기능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고자 했던 것이리라.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단어로 ‘공공 장소에서의 개입(intervention in public space)’을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개입(intervention)’의 방식은 누군가를 귀찮게 하고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우리의 환경과 사회를 다른 각도에서 함께 들여다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자 작가 나름의 말을 거는 방식, 대화에 초청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레이스 은아 킴 작가에게 작업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1) 2016년 인천아트플랫폼 7기 국외입주작가로 9월부터 11월까지 인천에서 작업을 해왔다. 특히 10월 27일에는 여러 명의 공연자들과 함께 인천 중구의 해안동과 신포동 일대에서 ‘상상의 놀이터’라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어떤 프로젝트였는지 간단히 소개해 달라.
‘상상의 놀이터’ 는 한밤중 설치 작업과 함께 시작된 예술 실험이었다. 설치 시간으로 한밤중을 택한 것은 도시가 깨어나는 아침에 나의 작업이 자연 현상인 듯이 나타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검은 천을 기존의 구조물들에 걸치거나 감는 방식으로,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풍경 안에 상징적인 방해요소를 그림 그리듯 생성시키고, 그렇게 새로운 통로와 장애물을 만들어내고, 때로는 사람들의 행동 방식이나 공간 안에서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게 하려는 시도였다. 이후 퍼포먼스는 도시에 생기가 돌고 행인들이 서서히 거리에 나오기 시작하는 동틀 무렵에 시작되었다. 도중에 마주치는 행인들도 퍼포먼스의 일원이라고 여겼다. 나의 ‘상상의 행인’역을 수행하는 공연자들 역시 해가 뜰 즈음에 도착하여 행위의 무대였던 길거리에서 시적인 액션들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를 일시적으로 단절시키고 중단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불과 몇 시간 뒤에 작업을 멈춰야 했는데, 민원이 많기도 했고, 경찰도 그만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항상 평화적인 실험을 원하지 대중들과 적대적이길 원하지 않기 때문에 도중에 그만두는 것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민원을 제기한 대중들 역시 내 프로젝트에 참여한 공연자였고, 그들도 우리와 함께 무대를 공유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던 간에, 나는 내 작업의 일부로 그들을 환영한다.
2) ‘상상의(imaginary)’라는 단어와 ‘놀이(play)’라는 단어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가 생각하는 단어들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이매지너리(imaginary)’는 상상 속 공간,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상관없이 마음 속에서만 존재하는 현상을 지시한다. ‘무언가를 상상하였다면, 그 상상은 이후에 현실이 된다’는 개념을 내포하기도 한다. 상상을 통해 경험이 생긴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상상이라는 것도 종국에는 결국 현실의 문제가 된다는 의미이다. 현실은 개인적인 상상과 공동체적인 상상 간의 끊임없는 타협의 결과물이다. 나는 놀이의 이론적 측면에도 관심이 있는데, 놀이가 이성적 구조와 존재 방식의 바깥에 존재하는 한계 공간(liminal space)이라는 점에 특히 주목한다. 놀이터는 다른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는 존재의 참된 모습(眞相)이 표현의 수단을 찾을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상상의’와 ‘놀이터’ 모두 내가 나의 작업에서 일깨우고자 했던 공간의 심리지형적(psychogeographical) 조건을 지시하는데, 이는 공공 공간에 작동하는 매커니즘과 그 속에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구조물과 각종 경계들은 물론, 사람들이 공동체의 풍경을 어떻게 읽고, 겪으며 공유하는지 그 방식을 만들어내는 규칙들을 의심해 보게 해준다.
3)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신청서상의 계획과 내용의 차이는 있지만, 공공 공간에 개입한다는 형식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공공 공간(public space)’이 작가의 작업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는 어떤 것인가?
나에게 공공 공간이란 ‘상상의 놀이터’ 프로젝트에서와 같이, 유의미하고 사회적이며 예술적인 탐구가 일어날 수 있는 가공하지 않은 무대와도 같다. 말했다시피, 나는 공간과 장소의 심리지형적 측면에 관심이 많다. 우리는 풍경과 메커니즘을 만들어 낸 창조자이지만, 거꾸로 이러한 풍경과 메커니즘이 우리 자신 모습을 규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환경과의 상호 작용은 끊임없이 돌고 돌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는 매우 힘이 든다. 이 순환 고리를 끊고 비판을 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오히려 공공이라는 것을 개인으로서의 자기 안으로 끌어 들여야만, 내면화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공의 풍경은 나의 캔버스가 되고, 개입은 탐구의 영역이며, 사람들은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내 작업의 공동 창조자이다. 나는 대중과의 직접적인 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맥락을 설정하려고 애쓴다. 공공영역에서 벌어진 각각의 프로젝트들은 내가 무엇을 경험했고 배웠는가 하는 점에서, 그리고 대중으로부터 어떤 피드백을 받았는가라는 점에서 모두 매우 의미가 있다.
4) ‘개입(intervention)’이라는 형태가 최근 들어 서서히 현대미술계에서 그 양상을 드러내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단어이자 혼란스러운 개념인 것 같다. 특히 ‘개입’이나 ‘간섭’은 타인의 범위나 권한을 침범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생각하는 ‘개입’의 가치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나 역시 ‘개입’의 부정적 측면을 이해하고 있고, 그간 예술사에게 보아 왔거나 동시대적이라고 하는 예술 행위들이 개입이라는 방식을 선동적이고 아나키스트적 동기에서 사용해 왔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나도 이러한 접근 방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항상 나의 방식에 주의하려고 애쓴다. 개입을 통해 기존의 규범들을 의심해 보고자 하는 것은 같지만, 매우 기본적인 상호 존중의 범위 내에서도 비판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아가 개입은 사회적, 예술적 탐구의 방식으로, 일종의 휴머니즘적 행동주의(activism)를 겨냥한다. 나의 개입들은 실재와 픽션, 인지와 미지 사이의 모호한 공간 안에서 대중과 연계하는 것이다. 개입의 공간에서 관람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 새로운 의미를 구축하도록 자극 받게 되고, 이러한 지점은 내 작업의 극히 중요한 부분이 된다. 나는 모순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 ‘실제로 참인 것(real truth)’이 발견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실존적 몽유병(existential sleepwalking)’에서 이따금씩 깨어나고, 우리의 환경과 사회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인지할 수 있으려면, 기존의 매커니즘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으려면, 개입을 통한 대화를 이끌어 내야만 한다.
5) ‘상상의 놀이터’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함께할 공연자나 보조인력을 구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알고 있다. 한국과 다른 나라의 시민들이 예술 프로젝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한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한국이 아닌 이른바 ‘서구권’에서 진행했을 때와 특별히 다르다거나 어렵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도시와 도시간의 차이, 문화와 문화 간의 차이는 너무나 복잡하고 미묘해서 왜 서로 다른 현상들이 일어나는지를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어느 곳에서나 항상 도전 과제들에 직면하게 되고 이것을 해결하는 것 또한 어렵기 그지없다. 내가 마주치게 되는 예술가들의 유형이나 태도는 항상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뜻이 맞는 협력자들을 만나는 것은 운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프로젝트에 적합한 커뮤니티를 찾는 것은 다른 문제다. 커뮤니티는 멀리 숨어있거나 감지하기 어려울 때가 있기는 하지만 항상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6) 인천아트플랫폼에는 ‘시각예술’ 분야 입주작가로 들어왔는데, 진행한 프로젝트는 다분히 공연적이다. 작가는 프로젝트를 연출하거나 기획하는, 영화로 치면 감독에 해당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예술장르 간의 칸막이를 두자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의 예술적 아이덴티티는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비주얼 아티스트로 시작했고 여전히 시각적인 부분이 내 활동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하는 활동들을 하나의 어떤 것으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공연이나 퍼포먼스 작업을 하는 것 역시 이미지를 사고의 좀더 넓은 차원으로 확장하는 것이며, 관람자들과의 대화에 좀더 다가가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퍼포먼스 작업은 처음에는 부분적으로만 사용하였는데, 이미지들이 살아 움직이는 내 머리 속으로 관람자들을 초청하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그러고 나자, 이 세계와 공공 공간이 이미 살아있는 이미지이자 극장이었음을 깨달았고 관심이 더 가기 시작했다. 따라서 퍼포먼스는 일종의 전복적인 이미지 극장으로, 이미 존재하는 것 위에 다른 차원의 것을 평행하게 쌓아 올리는 것, 대화를 통해 실험하는 것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나에게 퍼포머(공연자)들은 공연을 수행하고 극을 재현하는 매개자 그 이상이다. 가끔씩 그들과의 작업들을 ‘퍼포먼스’라는 용어로 정의하는 것에 주저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나의 작업이 좀 더 사회적이면서 살아 있는 이미지 실험으로 여겨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이론적 측면은 항상 나의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의 모습은 이미지의 세계가 결정하고 이미지의 언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에서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록 이런 점을 잘 의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나의 퍼포머들이 항상 말이 없는(대사가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퍼포머들은 상상의 관중이자 그들 자체로 상징적이며 움직이는 이미지들이다.
7) 태어나고 자란 곳은 미국이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주요 거점은 독일이며, 박사과정 중인 학교는 스위스에 있고, 현재는 인천에 와 있다. 친척들이 있어 한국에도 비교적 자주 오는 것으로 안다. 노마드적 삶은 예술가의 숙명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삶에 대한 어려움은 없는지?
어떤 길을 선택하든 삶은 어렵게 마련이다. 장애물이 있다 할지라도, 삶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나를 매우 풍요롭게 한다. 나는 이러한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나는 세계와 세계 사이를 미끄러지듯, 표류하듯 옮겨 다닐 때에 가장 균형감을 느낀다. 이와 다르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한 장소에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이나 일정한 패턴과 예측가능성으로 빠져든다는 것은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한다.
8) 곧 인천아트플랫폼의 입주기간이 끝난다. 입주 종료 전에 전시를 개최한다고 들었다. 전시의 특징을 간단히 설명해 준다면?
‘상상의 놀이터’를 기록하기 위해 찍어둔 사진과 동영상들을 활용하여 새로운 영상을 편집하였고, 이에 더해 사운드 설치물을 전시할 예정이다. 기록물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단순한 도큐멘트로서 작품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놀이터’라는 이벤트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 위한 시적이고도 서정적인 방식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보면 좋겠다. 퍼포먼스 때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개념적 대화를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해당 전시 은 2016.11.19~30까지 인천아트플랫폼 G1 갤러리에서 진행된다. 전시 제목은 ‘상상의 놀이터’가 진행되었던 날짜에서 따온 이다.
9) 인천아트플랫폼 이후에 특별한 계획이 있는가?
인천에서의 긴 여행이 끝나면 베를린으로 돌아가 휴식 시간을 가지며 글쓰기 작업을 할 예정이다. 새로운 협업작업과 프로젝트들도 추진 중이다. 특히 내년에 베를린에서 퍼포먼스와 개인전을 진행할 예정이라, 그 또한 준비하려고 한다.
10) 예술가로서의 궁극적인 목표나 지향점이 있다면?
현재 우리는 어둡고도 위태로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끼곤 하는데, 내가 실행에 옮기려는 모든 행동들이 어떻게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적 질문이 되고, 나는 과연 어떤 리서치를 수행해야 하며, 타인들과 어떤 관계 맺음을 해야 할 것인지를 더욱 깊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술 작업들은 미래의 시간이 도래하여야, 실질적이고 사회적인 콘텍스트가 더욱 넓어져야만 그 존재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또한 세계 여러 도시의 사상가들과의 협업을 통해야만 작업의 가치가 부가된다고 믿는다. 예술은 사회 속에서 긍정적인 움직임을 발동시킬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불가능이 가능이 되는 ‘놀이터’와 같이 말이다.
글, 번역 / 이영리(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