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탈출 실패기(失敗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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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인천문화통신 3.0 취재를 위해 방문한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관람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스무 살 다섯 친구가 정처 없이 떠돌다 인천을 떠나 흩어지는 이야기다. 개봉한 지 15년이나 지났다는 영화 속 친구들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나 다른 점이라면 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에 겪은 일들을 우리는 대학을 졸업한 스물네 살에 겪고 있다는 것. 우리는 이십대 초반 반짝이는 네 해와 수천만 원의 학자금을 날렸다는 것. 15년 전의 그들과 현재의 우리는 모두 ‘인턴 탈출’과 ‘인천 탈출’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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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반기문 키즈라 불렸고, 유엔사무총장과 외교관이 되겠다며 국제고에 입학했다. ‘인천에서 배워서 세계에 펼치자‘는 슬로건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인천에서 배웠지만 인천을 배우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인천은 그저 떠나야할 곳, 머물러서는 안 될 곳이었다. 모의고사 배치표에 줄을 그어 나온 대학 이름에 ‘ㅇ’자만 보여도 기함을 했다.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로, 해외로 떠났다. 하지만 열아홉의 나는 수능을 망쳤고, 인천 탈출에 실패했다.

스무 살, 인천이 창피했다. 서울 사는 친척언니는 매주 보러 간다던 음악캠프를 수년에 한 번 공개방송 때나 볼 수 있었고, 지방 순회를 다니는 유명 가수의 콘서트나 연극과 뮤지컬 공연, 대형 전시도 서울과 가깝다는 이유로 인천에는 오지 않았다. 서울과 가깝다는 말은 그 사람들 생각이었다. 공연을 보기 위해 두 시간씩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대학로를 찾아야 하는 것도 싫었다. 인천에는 예술이, 문화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천 사람들은 모두 그저 인천 탈출에 실패했을 뿐, 서울로 가려다 삐끗해서 잠시 인천에 머물 뿐, 인천을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물하나, 적성에도 맞지 않는 사범대학을 다니다 한눈을 판 곳은 인천의 문화예술판이었다. 이 바닥에서 처음 만난 프로그램은 ‘인천왈츠’. 인천에 살고, 인천에서 공부하고, 인천을 오가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쏟아냈다. 내가 타고 다니던 버스, 우리 집 앞 소래포구, 놀러 다니던 차이나타운, 우리의 이야기가 한 편의 뮤지컬이 되었다. 바삐 살며 흘려보냈던 생각들, 일상을 함께 모여 나누니 이야기가 되고 작품이 되었다. 그곳에 인천 사람들이 있었다. 인천의 이야기가 있었고, 인천의 문화가 있었다. 나는 비로소 인천에 마음을 열었고, 인천을 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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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넷, 신포동의 임시공간에 인턴으로 출근한 지 세 달. 늦잠을 잤고, 택시를 탔다. 개항장 대표거리로, 경리단길, 가로수길처럼 만들어진다던 ‘신포로 27번길’을 기사 아저씨는 알아듣지 못했다. “홍예문에서 내려오는 길이요.”하니, 아저씨는 그제야 “아, 거기. 내가 잘 알지. 송학동이 내 고향이거든.”하며 핸들을 꼭 붙든다. 그리고 옛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지금은 근대건축전시관이 된 일본 제18은행에 근무하던 아버지, 아버지를 따라 개항장 일대를 누비던 아저씨의 유년기. 올해 인천왈츠의 배경으로 등장했던 개항장 일대의 역사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저는 송학동 말고 선학동이 고향이에요.”하자 또 다른 이야기가 졸졸졸 흘러나온다. 선학동이 버스 종점이었다는 이야기, 송도 신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동막, 동춘, 연수동까지도 모두 바다였다는 이야기. 출근길 우연히 잡아 탄 택시에서, 우리 세대에 넘어오지 못하고 묻혀버릴 뻔 했던 인천의 이야기들을 주웠다.

인천의 문화와 미래는 인천을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 인천에 정주하는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 그들이 사는 모습이 바로 인천의 문화이고 역사이다. 흘러가고 사라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주워 담고 이어가는 것은 앞으로 인천을 살아갈 이들, 바로 청년들의 몫이다. 청년들에게 인천 탈출을 종용할 것이 아니라, 인천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인천에 살며 인천을 느끼고 인천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이 나라 청년들에게 미래가 없다지만 문화예술계의 청년들은 더욱 그렇다. 인천 문화예술계의 청년은 더더욱 그렇다. 인천을 떠나는 문화예술계의 수많은 청년들은 어쩌면 인턴 탈출을 위해 인천을 떠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학 마지막 학기, 인천에서 먹고 살고 활동하면서 졸업은 해보겠다고 취업계를 내기 위해 방문한 교수님 사무실에서, 4대 보험 가입을 안 했으면 취업자로 인정이 안 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들으며 하고 싶던 말을 반쯤 삼켰다. 이 바닥에 정규직이 얼마나 있다구요. 4대 보험비 까고 나면 우리는 뭐 먹고 살아요? 거기 쓰여 있는 임금 250만원, 한 달이 아니라 네 달치예요.

인천의 문화예술판에 기웃거린 지 3년, 임용고시 공부를 포기하고 이 바닥에 주저앉겠다며 집을 뛰쳐나온 지도 반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바닥의 선배들은 내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인천을 떠날 것을 종용한다. 이해한다. 그들이 겪어온 과거도 순탄치 않았으며, 지금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그보다도 더 암담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가 탈출해야 하는 건 인천이 아니라 인턴이다. 스물넷. 나는 여전히 인턴 탈출을 꿈꿀지는 몰라도 더 이상 인천 탈출을 꿈꾸지는 않는다. 다만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인천을 오가는, 인천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 이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인천의 사람들을 만나고 인천의 이야기를 듣고 남기고 싶다. 함께 인천을 이야기 할 청년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인천의 청년들이 모여 떠들 시간과 공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께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인천 탈출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인천을 살고 있다고.

김진아 / 대학생,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