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숨결로 만드는 우리학교-주안초등학교 이전 공사장 가림막 공공미술 프로젝트(11.1)

0111월의 첫날 아침, 갑자기 불어 닥친 추위에 호호 손을 불다가 겨울이 왔음을 실감했다. 하얀 입김이 눈앞에 선명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주안초등학교에서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여 캔버스 위에 입김을 불었다. 얼어붙은 손을 녹이던 입김은 캔버스 위에서 하나의 그림이 되었다. 재학생 720명이 참여한 공공미술 작품 ‘나비’가 완성된 것이다. 1934년에 개교하여 올해 82년이 된 주안초등학교는 도시개발 사업으로 인해 인천기계공고 옆으로 이전 중이다. 원래 주안초가 위치했던 곳에는 새로 의료복합단지가 자리하게 된다. 정들었던 학교와 작별하고 낯선 곳에 새로 적응해야 할 아이들을 우려한 시행사 (주)SMC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작업을 제안했고, 채은영 큐레이터와 최선 작가의 기획으로 공공미술 프로젝트 ‘나비’가 진행되었다.

“8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가 이전하는데 보통의 도시재개발과 같이 공사를 하고 이사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보통의 공사장 가림막은 기능적이고 천편일률적이기 때문에 다른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인천아트플랫폼에 함께 입주해 있는 최선 작가가 사람의 숨을 활용해서 작업했던 것이 새로 들어오는 의료복합단지와도 의미가 통한다고 생각했어요. 특별한 기교 없이 물감을 부는 단순한 작업이기에 전교생이 모두 참여할 수 있기도 했지요.” (채은영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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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 작가가 ‘나비’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2011년, 일본이었다. 당시 동일본 대지진으로 고통을 겪은 사람들과 함께,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그림을 통해 아픔을 승화했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떨어뜨리고, 한 사람이 물감을 불면 다른 사람이 이어서 물감을 부는 형식이었다. 사람들의 숨결은 이어져 역사를 만들었다. 2014년 안산의 한 시장에서도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시 안산은 세월호 비극으로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외국인 노동자 또한 많은 도시였다. 남녀노소, 국적, 출신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함께 그림을 통해 생명을 표현했다. 지나가다 그림을 본 한 행인이 입김으로 번진 물감의 모습이 흡사 나비 같다고 말한 것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되었다.

이번 주안초등학교의 ‘나비’ 프로젝트는 새로 들어오는 의료복합단지가 사람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는 의미와, 82년 역사를 가진 학교의 새로운 터전에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이 함께 숨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를 함께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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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마다 그림을 그리는 능력의 편차가 크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다가 그게 ‘숨’이라는 것을 떠올렸어요. 숨 쉬는 것을 이용하면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더군다나 숨결은 성별, 국적, 나이 등 그 어떤 것도 상관없이 모두가 똑같잖아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숨결이 한데 섞여 어우러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최선 작가)

‘나비’ 프로젝트에 주안초등학교의 전교생 720명 모두가 참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인천아트플랫폼에 최선 작가와 함께 입주해있는 작가들의 도움이 큰 몫을 했다. 김푸르나, 손승범, 윤대희, 조원득, 최현석 작가가 직접 교실을 방문하여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도왔다. 참여 학생들의 연령대가 낮아 자칫 진행이 어려울 수도 있었지만, 주안초등학교 교사들의 협조 덕분에 프로젝트가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인천아트플랫폼의 김푸르나 작가와 주안초의 이혜경 교사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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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린다고 하니, 아이들이 전부 필통을 꺼내 연필을 들고 있었어요. 손으로 그리는 그림만이 그림이라고 배워왔던 것 같아요. 손이 아닌 입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재미있어했어요. 친구들과 함께 만드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각자 자기가 만든 모양에 대해 설명을 주고받기도 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김푸르나 작가)

“창의적 체험활동 프로그램이 있기는 했지만 직접 작가들이 학교에 찾아와서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은 처음이었어요. 평소에 미술 수업을 할 때에 비해 더 좋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고 아이들이 직접 작가들을 만나는 기회가 생겨 좋았어요. 저학년은 활동 중심의 수업이 많은데, 고학년으로 갈수록 활동할 기회가 줄어들어요. 아이들이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습니다.” (주안초 이혜경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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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숨결이 만든 공공미술 작품은 주안초등학교 신축부지의 공사장 가림막으로 이용될 예정이다. 삭막한 도시의 공사장이 아이들의 숨결과 온기로 채워지는 것이다. 비록 학교는 80여 년 지켜온 자리를 떠나지만, 활기를 잃은 구도심은 도시재생 사업과 예술작품으로 인해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다.

글 / 시민기자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