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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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근대다.” 이 땅의 근대와 연관해서, 가장 중심도시가 인천이다. 그렇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여기서 또 반복하고 있다. 왜냐고? 정작 이런 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천이 바보다.” ‘인천 = 근대’라는 등식을 인정한다. 하지만 과연 인천이 근대와 관련해서, 국내와 해외에 내놓을 수 있는 ‘문화’는 무엇일까? 인천이 과연 근대와 관련된 ‘콘텐츠’를 잘 보유하거나 계발하고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 같은 항구도시로서의 군산과 목포와 비교해서도 그렇다. 근대문화의 복원과 향유에 관심을 두고 있는, 대구와 부산과도 비교하게 된다. 근대와 관련된 인천은 ‘서 말의 구슬’을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걸 아직 제대로 끼우지 못했다. 지금 내 눈에 비친 인천은, 구슬은 있으나, 목걸이를 아직 만들지 못한 형상이다. 그간 인천의 근대와 관련된 저간의 노력과 성과에 박수를 보낸다. 빛이 바랬거나 묻혀있는 구슬을 찾아내고 정갈하게 닦아낸 그들이 고맙다. 그렇다면, 이제 목걸이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인천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관(官)이 하기보다, 민(民)이 해야 할 일이다. 관의 뒷받침으로, 민이 해내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이다.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와 같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인천사람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따라서 이 글은 결국 자신에게 쓰는 반성문이자, 함께 일궈내자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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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 바보라 함은, 내가 바보라는 자각이다. 바보라는 강력한 단어를 등장시켜서, 제발 말로만 떠들지 말자는 얘기다. 바보의 한 예로, 근대성(近代性)을 ‘과거’와 ‘건물’에만 두지 말자는 얘기다. 인천을 찾는 사람들이 개항장 거리에서 근대문화유산이라는 건물을 바라보고, 짜장면을 먹는 것이 과연 ‘근대’를 경험하는 것일까? 이게 인천의 근대를 경험하는 일일까? 이런 한나절 투어로 ‘인천 = 근대’가 끝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인천의 ‘문화적’ 가치, 곧 인천의 ‘근대적’ 가치를 콘텐츠화 시키는 게 급선무다. 인천에 ‘근대문학관’이 있어서 반갑다. 인천에 ‘근대음악관’이 생겼으면 더욱 좋겠다. 신민요와 재즈를 모두 즐기고, 일찍이 살풀이와 사교춤을 모두 수용한 게 인천이었다. 일찍이 근대음악과 서구문화를 수용했던 인천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근대문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전통의 가치를 생각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야한다. 서로 다른 둘이 부딪히기도 하고 어울리기도 하면서 만들어냈던 그 ‘문화적’ 가치는, 곧 인천이 선도적 역할을 해서 이룩해낸 ‘근대적’ 가치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귀중한’ 가치다.

인천인이여! 우리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일본제1은행인천지점(현, 인천개항박물관)은 건물이 남아있어서 의미가 있고, ‘애관극장’은 예전의 건물도 아니고 위치가 바뀌었다고 가치가 덜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인천의 근대를 연구하는 지역학자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아연실색했다. 당시 조선사람 혹은 인천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이 더욱더 큰 의미가 있었을까? 번스타인이 피아노연주회가 있었고, 최승희가 신무용공연을 했고, 당시 대중들이 가장 좋아했던 ‘창극’의 공연으로 인산인해를 이룬 공간이 애관(愛觀)이었다. 인천이 진정한 ‘근대적’ 가치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용동권번(龍洞券番)의 기생이야기를 콘텐츠(이야기, 공연)로 만들어서 소통하는 일도 중요하다.

인천의 근대를 기반으로 한 문화적 가치는, 앞으로 이런 장소와 연관된 ‘근거있는 상상력’을 통해서 콘텐츠를 통해서 가능할 수 있다. 상상력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콘텐츠가 된다. 그런 콘텐츠는 공연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소통하게 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영화와 뮤지컬에서 만들어지는, 근대와 관련된 콘텐츠는 앞으로 ‘인천만의 가치창조’와 연관해서 좋은 예가 된다. 우리가 누군가? 우리가 더 이상 바보일 순 없다. 그러기 위해선, 인천의 ‘근대적’ 가치를 ‘콘텐츠’로 만드는 작업을 실천해야 한다. 근대를 상상하라! 거기에 바로 인천의 ‘미래가 될 과거’가 있다.

윤중강(평론가, 연출가. ‘만요컴퍼니’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