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과 호흡하는 문화, 도시 서구: 박희제 인천서구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을 만나다

<기획 인터뷰: 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지역민과 호흡하는 문화, 도시 서구박희제 인천서구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을 만나다

류수연(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박희제 센터장 소개

1989년 사회 첫 직업으로 기자를 선택하면서 정년을 맞을 때까지 32년간 한 직종의 외길을 걸었다. 국회, 총리실 등을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에 이어 1994년부터 인천에서 인천대학교 시립화,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 투쟁, 북구청 세도사건, 인천국제공항 개항, 경제자유구역 지정, 인천 신항 개항, 도시재개발 및 도시재생사업 등 수많은 현장을 취재해 인천 성장의 기록자이자 산증인이다. 인천서구문화재단 이사(전), 인천교통공사 이사(현), 인천언론인클럽 회장(현) 등을 맡았고, 제38회 인천시문화상을 수상했다.

인천의 문화지형도가 달라지고 있다. 인천문화를 대표하는 인천문화재단은 새 수장을 맞이했고, 새로운 문화도시가 탄생했으며, 여러 자치구에 기초문화재단이 각자의 비전으로 시민을 위한 문화적 토대를 놓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인천서구문화재단의 변화는 더욱 눈여겨 볼만하다.

최근 인천서구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는 새로운 비전에 닿을 올렸다. 박희제 센터장을 새로운 리더로 맞이했기 때문이다. 인천 문화계에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이 낯익을 것이다. 전 동아일보 기자였던 그는, 이미 ‘인천통’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기사는 오랜 시간 동안 인천 구석구석의 문화 소식과 그 숨은 의미를 전달해주었다. 그런 그가 이제 문화도시 서구를 일구어낼 새로운 리더십의 일원으로 합류했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박희제 센터장과 문화도시센터 직원들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박희제 센터장)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제2의 고향 인천, 그리고 섬

박희제 센터장이 인천과 처음 마주한 시기는 중3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들과 무작정 떠난 여행지가 바로 작약도. 그때부터 인천의 섬이 가진 매력에 빠진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뿐이었다면 인천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가 인천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원 시절이었다. 인천의 노동운동과 관련된 책들을 독파하면서 새롭게 마주한 인천은, 그에게 그대로 일종의 로망이 되었다고 한다. 1989년 기자가 된 후 인천에 자원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섬 여행을 즐긴다는 박 센터장은 인천의 귀한 보배인 섬들이 더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낙원으로 되려면 생태와 문화적 요소와 더욱 잘 결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사례로서 일본의 나오시마를 예로 들기도 했다. 잘 알려진 대로 나오시마는 ‘예술의 섬’이다. 오래된 섬의 가옥들을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킨 그러한 적극적인 문화적 접근이, 인천의 섬에도 요구된다는 것이다. 가령 덕적도의 서포리 해수욕장은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섬임에도 그 문화적 가치가 경제성이라는 원칙에 가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마음을 전했다.

“지역의 문화자원을 긴 안목으로 이끌어나갈 정책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지역의 특색 없이 획일화될 수 있습니다.”

예비문화도시 서구를 본격적인 문화도시로 성장시킬 아젠다로 그가 내세우는 것은, ‘지역문화의 주체성’이다. 한 지역의 문화자원을 성공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함에도 실제로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지역 특색은 사라진 채 비슷비슷한 도시들이 넘쳐난다. 인천 서구 역시 이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서구에는 분명한 차별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서구만의 독특한 자원으로 삼을 수 있는 ‘시민력’이다. 무엇보다 원도심에서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키워 온 문화력의 역사가 길다. 대표적인 것이 가정3동의 경우이다. 주민들이 직접 벽화를 그리고, 화분을 심으며 디자인거리를 만들었다. 폐공장을 문화복합공간으로 재생시킨 ‘코스모40’과 함께 민(民)의 힘이 관(官)을 움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서구는 인천의 다른 도시에 비해 지역민과 밀착된 문화 활동이 잘 활성화 되어 있는 편이다. 여기에는 문화충전소의 영향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거점공간으로 모델링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원도심 문화재생 상생마을 – 문화더하기 회복나누기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문화공간 네트워크 활동 모습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혹시 이음카드가 서구에서 시작된 것을 아시나요?”

서구만의 자랑거리를 묻자 그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1820년대 협동조합운동의 창시자인 로버트 오엔의 노동바우처에서 기원한 지역화폐는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서 사용되는 익숙한 개념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재난지원금이 지역화폐로 지급되면서 가입자와 사용처 모두 급증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역 전자화폐를 인천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이 바로 서구였다. 그것은 ‘서로 이음’이었는데 그것이 인천이음카드 사용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서구민들의 염원이 적극적인 실행력을 보였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사례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서구의 오랜 노력에 다시금 주목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서구는 오랜 시간 동안 환경적인 문제로 골치를 썩었던 도시였다. 쓰레기매립지와 소각장, 화력발전소, 주물공장 등 오염시설이 전국 최고로 몰려 있어 ‘환경재앙도시’로 불렸다. 이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변화가 요구되었다. 이에 서구가 내세운 것은 스마트 에코시티와 문화도시를 결합시키는 청사진이었다.

도심의 자투리 공간을 친환경적 포켓으로 활용하는 에코정원은 작은 곳에서부터 변화를 주도하려는 서구의 시각이 담겨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 민간 거버넌스에서 출발했고, 지자체의 행정이 그것을 도왔다. 이처럼 서구의 변화가 민관 협업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서구 성장 방향에 큰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주민참여생태공감프로젝트 – 문화이음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생태적 삶 시민조사단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회색도시가 녹색도시로

문화도시로서 인천 서구가 가진 가장 큰 강점 역시 여기에 있다. 현재 서구가 내세우는 도시의 키워드는 ‘회복’과 ‘탄력’이다. 사실 이것만큼 서구와 잘 어울리는 말은 없을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서구의 이미지는 회색도시였다. 그러나 현재 서구의 이미지는 달라지고 있다. 오랜 회색도시는 새로운 녹색도시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가 지역민들의 주체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서구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강점이라고 본다. 결국 문화도시의 비전은 시민들의 문화적 주체성을 일상(생활)에서 풀어내는 것,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시민캠페인 및 펀드레이징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서곶시민살롱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서구를 움직이는 103개의 거점에 주목하라

센터장으로 취임한 지 10일 남짓, 그는 현장을 다니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서구에는 103개의 문화충전소가 있는데 그 가운데 58개를 민간이 주도하고 있다. 현재 20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도서관과 문화기획사업이 결합된 가정동의 <사도들교회>, 복합문화공간 <비움>, 10년간 주민들과 호흡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서구 민중의 집> 등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2013년 문을 연 <서구 민중의 집>을 주민자치가 진화해온 좋은 사례로 꼽았다. 목재단지 주변의 동네 특성을 살려 노동자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모아 맞벌이 자녀에 대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하면, 회원들이 취미로 시작한 DIY 가구 만들기 동호회가 마을기업으로 성장했다.
서구에는 이러한 지역문화의 거점이 103개나 있다. 그것이야말로 서구의 문화적 동력을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에너지가 되고 있다는 점은, 서구만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문화다양성 기획학교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시민정책 공론장 <데모스 정서진>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예비’가 아닌 진짜 문화도시로의 발돋움

신임 박희제 센터장에게 인터뷰의 마지막이자 조금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지난해 문화도시 선정에서 서구가 고배를 마시게 된 원인을 어떻게 극복하고 문화도시로의 마지막 도전장을 내밀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었다.

박 센터장은 부임한 이후 서구의 중요 거점을 돌아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사실 그간 그는 문화에 대한 동경이 컸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친문화적 감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부했다고 했다. 그런데 센터장으로 부임한 이후 그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더 많은 예술가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서구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함께 구상하고 일할 사람들을 조직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머릿속 구상이 현장의 역량과 잘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조직을 보강 중인데, 무엇보다 타성이 젖은 듯한 모습부터 고쳐나가는 과정이 그 첫 번째 단추가 될 것이라고 여겼다. 무엇보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내부의 자체적 동력을 존중하면서도 외부 조력에도 열려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었다. 박 센터장 자신이 때로는 창으로 때로는 방패로, 바로 이 공간을 준비하고 채워 나가는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피력했다.

서구청년솔루션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지역문화자원활용실험단-콘텐츠실험(모노크롬)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문화는 사람이 만든다.

어떻게 역량을 최대치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문화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문화도시의 구호 역시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조직 내부에 과부화가 걸리지 않게 조절하면서 지역의 민간과 협업하는 상생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재단 역량으로만 감당하고자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거버넌스로 슬기롭게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잘 인식하고 있었다.

문화는 결국 사람이다. 문화도시의 이상 역시 결국 사람을 그 중심에 둘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새로 부임한 서구 문화도시센터 박희제 센터장을 중심으로 사람과 함께 성장할 문화도시 서구의 꿈과 도약을 응원하고 싶다.

인터뷰 진행/글 류수연

문학/문화평론가.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 현재 인천문화재단 이사이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