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호텔에 울려 퍼지는 특별한 피아노 선율: 대불호텔 피아노의 방
우리나라 최초 호텔에 울려 퍼지는 특별한 피아노 선율 대불호텔 피아노의 방
손민환(부평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최근, 중구 대불호텔 전시관 3층에 <대불호텔 피아노의 방>이 꾸며졌다. 이번 전시는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알려진 고(故) 이문영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명예교수가 아내 김석중 여사에게 선물한 피아노를 메인으로, 인천에 유입된 서양 악기와 근대 음악사를 함께 보여준다. 지난해 중구에 이 피아노가 기증된 것을 계기로, 기증자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개최한 전시다.
모든 전시가 마찬가지겠지만, 기획 의도와 유물에 담긴 스토리를 알면 더욱 재미있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하나의 메인 유물을 가지고 전시를 풀어낸 이번 전시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또한 이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대불호텔전시관에 대한 공간 이해가 선행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 본다.
전시실 전경 |
이번 전시가 진행된 대불호텔 전시관은 개항도시 인천에서 특별한 공간이다. 1884년 경, 일본인 무역상 출신 호리 히사타로(堀久太郞)가 일본식으로 목조 2층 건물을 짓고, 자신의 별명인 대불(大佛)에서 이름을 따서 ‘Hotel DAIBUTSU’라 부른 것이 대불호텔의 기원이다. 1885년 우리나라에 입국한 선교사 아펜젤러, 언더우드의 비망록에도 이 호텔에 머물렀던 기록이 확인된다. 호리 히사타로는 원래 호텔의 옆 부지에 서양식 벽돌조 3층 건물을 세워 1888년부터 본격적인 호텔 영업을 시작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호리 히사타로의 아들인 호리 리키타로(堀力太郞)가 이어 받아 운영하였다. 1918년 경 호텔을 매입한 중국인에 의하여 ‘중화루’라는 중화 요릿집이 되었다가 1970년 초 문을 닫고, 1978년 철거되어 주차장으로 사용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불호텔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은 2018년 대불호텔을 재현하고 전시관으로 사용하면서부터다. 수년간 지속해 온 ‘개발’과 ‘보존’, 그리고 ‘복원’과 ‘재현’ 논란 끝에 재현된 대불호텔을 전시관으로 이용하면서, 다시금 대불호텔이 주목 받게 되었다. 명확한 역사적 근거를 토대로 재현이 아니라 복원해야 했다는 쓴 소리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 시민과 인천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문화 거점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이번에 김석중 여사의 피아노가 전시되면서 대불호텔 전시관에 의미가 한층 더해졌다. 이 피아노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최고령 피아노’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2011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배재학당 피아노(1911년 제작)보다 20여 년 앞서 제작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가치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가장 오래되었다는 점은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기에 충분했다.
이 피아노는 뉴욕의 소머 앤 컴퍼니(Sohmer & Co.)에서 제작한 것으로, 제작 시기는 1888년경으로 추정(필자 추정)된다. 관람객들은 볼 수 없으나 피아노 상판을 열면 ‘PAT.’와 일련번호가 기입되어 있다. PAT.는 기술 특허를 의미하는 Patent의 약자로, 이 피아노에는 6개의 특허 승인 일자가 각인되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마지막 특허 승인 날짜는 1887년 3월 8일로, 특허 내용은 음색을 풍부하게 만드는 기술(Aliquot String)이다. 언론에서는 이 일자를 근거로 1887년에 제작된 것으로 일제히 보도하였다.
일련번호 또한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 피아노의 일련번호는 ‘15262#5’로, 소머 사는 1885년 12200, 1890년 17200, 1895년 22500, 1900년 27800 등의 일련번호를 순차적으로 부여하였다. 산술적으로 1년에 약 1000번 정도의 일련번호가 부여된 것으로, 15000번 대는 1888년경에 부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PAT.와 일련번호를 토대로 볼 때, 이 피아노는 1887년 최신 특허 기술을 도입하여 1888년경에 생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허 승인 일자 |
일련 번호 |
사람들이 이 피아노에 관심을 주목했던 부분은 최고령 피아노라는 것도 한몫했지만, 피아노에 관한 로맨틱한 이야기였다. 사실, 최고령 피아노라는 보도 자료가 무색하게 이보다 더 오래된 피아노가 국내에 존재하고 있다. 비록 최고령은 아니지만 이 피아노가 간직한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가족사진(ⓒ차녀 이선아 박사) |
1959년, 미국 유학을 마친 고(故) 이문영 교수는 중고 피아노를 구입하여 인천항을 통해 입국했다. 한국에 남아서 자신의 유학을 뒷바라지했던 아내 김석중을 위한 선물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피아노를 치며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군사 정권 하에 3・1민주구국선언, YH사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에 목소리를 낸 이 교수가 해임과 옥고를 거듭하는 동안, 아내 김석중은 자녀들과 피아노를 치며 그 시간을 인내했다고 전한다.
이문영 교수 부부가 작고한 이후, 이 피아노는 이 교수와 인연이 있었던 이영근 한국사법교육원 이사장에게 전해져 한국사법교육원 내 휘란 작은 도서관에서 전시되었다. 그러다가 생전에 “백범 김구를 존경한다.”는 이문영 교수의 발언에 따라 이영근 이사장이 이문영 교수의 자녀들과 상의하여 지난해 인천 중구에 피아노를 기증하였고, 인천중구문화재단에서 기증자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이번 전시를 기획한 것이다.
아내에게 바친 선물로 민주화 운동의 대부의 집에서 자리 잡았던 이 피아노는, 이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이었던 대불호텔 전시관에 자리 잡게 되었다. 전시와 더불어 토크콘서트와 작은 음악회를 수시로 개최할 계획이라고 하니, 눈으로만 보는 유물이 아니라 귀로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사진 손민환(孫珉煥, Son Min Hwan)
인천 지역사 연구와 전시 기획을 주로 하고 있다. 인하대학교박물관,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인천개항장연구소를 거쳐 부평역사박물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역주 강도지,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인천의 문화사적과 역사터, 도쿄제강 사택에 담긴 부평의 시간 등의 집필에 참여했고, <열우물연가: 부평 마지막 달동네>, <해방공장: 1945년 군수기지 부평의 기억> 등의 전시를 기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