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무뎌져 버린 이 년(二年), 때마침 시작된 인연(因緣)

조금씩 무뎌져 버린 이 년(二年), 때마침 시작된 인연(因緣)

정효민(연수문화재단)

“네? 제가 아트플러그 연수로 인사발령 났다고요?”

2022년은 위의 말과 함께 충격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으로 시작했다. 인사명령이 나왔을 때, 내 이름이 전보 대상자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 기존에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사발령과 함께 공유된 좌석 배치에 내 자리는 없었다. 단순히 내 이름이 누락된 것으로 생각하고 기획경영팀에 문의했다. 돌아온 답은 내가 예술창작공간 ‘아트플러그 연수’에서 근무하게 되었다는 답변이었다.

지난 2년간 쭉 <예술지원사업>과  <송도불꽃축제>를 운영해오다 갑자기 맡은 사업뿐 아니라 근무지까지 바뀌게 된다는 것은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내 전공과 지금까지의 경력과는 전혀 무관한 시각예술 ‘레지던시’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많은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거쳐온 ‘문화원’, ‘기획사’에서 늘 적은 인원으로 일을 해오다 문화재단에 입사한 후, 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일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던 터라 근무 인원이 적은 공간으로의 발령은 힘들었던 예전 기억들이 떠오르게 만들기 충분했다.

내가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두 가지로 추려진다. 첫째, <예술지원사업>과 <송도불꽃축제>에 대한 애증 때문이었다. 나의 첫 문화재단 경력에서 처음으로 맡은 사업이 위의 두 사업이었기에 내게는 무척이나 특별한 사업이었다.

<예술지원사업>은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지역의 예술인 및 예술단체와 이제 막 유대감이 형성되고 있었던 시기였고, 도입기를 거쳐 성장기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기였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인해 지역의 예술가(단체)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2년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면서도 실질적인 도움의 방법들을 제시해주지 못했고, 제대로 된 네트워크의 자리도 마련하지 못한 마음의 빚이 너무 크게 남아 있었다. 3년 차에는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예술지원사업의 담당자로서 할 수 있는 제안 혹은 줄 수 있는 도움을 최대한 제공하고 싶었기에 아쉬운 마음이 컸다.

2021 연수예술지원사업 선정 공연 극단미추홀 <바다로 간 쓰레기> 2021 연수예술지원사업 선정 전시 <The sea of glass>, 가변설치, 2021, Yuna Kim

<송도불꽃축제>는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가장 아쉬움이 남는 사업이 되어버렸다. 1년 차에는 ‘대구’와 ‘이태원’에서 급속도로 퍼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축제가 취소되었고, 2년 차에는 전국적으로 바이러스가 대유행하면서 불꽃축제를 운영할 용역사를 선정한 다음 날 최종 취소되었다.

사무실 컴퓨터에 2년간 저장한 ‘송도불꽃축제 계획’의 괄호 안에는 두 자리 숫자로 가득하다. 파일마다 조금씩 수정·보완한 내용이 아닌,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개최 방식이 바뀌는가 하면,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송도달빛축제공원’으로 장소가 바뀌기도 하고, ‘불꽃’ 주제가 아닌 완전히 다른 주제로의 전환까지도 고려되었다. 그렇게 긴 호흡으로 준비한 축제가 아주 짧은 호흡으로 취소되는 과정을 2년 동안 겪고 나니, 많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인사이동에 충격을 받은 두 번째 이유는 ‘주어진 미션’의 불투명함이었다. 사실 어느 부서로 가든 어느 업무를 맡든,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내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는 일인가?’에 있고, 이에 이어 ‘내게 주어진 명확한 미션이 있는가?’ 혹은 ‘내가 그 일에 기여할 수 있는가?’에 있다.

아트플러그 연수로의 인사이동에 대해서 첫 번째 질문에는 나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연수구 옥련동에 개관한 예술창작공간 아트플러그 연수는 연수구와 인천시 그리고 우리나라 시각예술이 연수라는 지역에서 선순환할 수 있는 중요한 거점이 되고자 하는 비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게 주어진 미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무도 제시해주지 않았고, 스스로도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아트플러그 연수에서의 생활을 무척이나 불행하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아트플러그 연수로 발령이 나고 2주 정도가 지났을 때, 팀장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그리고 다른 말보다 먼저 사과를 하셨다. 인사이동에 대한 이유를 빨리 설명해주지 못했다고 말이다. 이어서 정효민 주임이 이곳에서 어떤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는지 또 어떤 것들을 배워갈 수 있을 건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주셨다.

그리고 어느 입사 동기는 내게 “효민 주임은 조직을 밝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 아트플러그 연수는 물리적으로 재단과 떨어져 있는 곳이잖아. 어려운 환경이지만 주임님이라면 그곳을 일하기 즐겁고 행복한 장소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해주었다.
팀장님과 동기의 말을 듣고 나니 이전까지 내가 가졌던 마음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2020년 2월로 돌아가 보면, 그토록 원했던 문화재단 입사 그 자체만으로도 하루하루가 행복했고 처음 접하는 모든 일에서도 배워가는 설렘을 느꼈는데 고작 2년 만에 조금씩 무뎌져 버렸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트플러그 연수로의 발령에 충격을 받았던 건 어쩌면, 기존에 하고 있던 일을 그대로 계속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나의 비겁한 반응은 아니었을까 하고 저절로 반성이 되었다. 이런 생각에 도달하니 아트플러그 연수로의 이동은 오히려 내게 ‘조금씩 무뎌져 버린 이 년(二年)에 때마침 시작된 인연’이었다는 감사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예술창작공간 ‘아트플러그 연수’

요즘 접하는 모든 일은 내게 있어 처음 일어나는 일들이다. ‘1기 입주작가 모집’, ‘레지던시 보고전’, ‘공개비평’, ‘프로젝트 세미나’ 등 모든 일이 처음 접해서 어려운 일이지만, 반대급부로 새로운 것을 접하는 설렘으로 가득하다. 이번 인사이동에서 나는 가장 중요한 진리를 찾은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장소, 어느 업무, 어떤 역량보다 내가 품고 있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고 결국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스스로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서울 용산에는 ‘한남 더 힐’이 있지만, 인천 연수에는 ‘옥련 더 힐’이 있다.” 요즘 반은 농담 그리고 반은 진담처럼 외치고 다니는 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곤 한다. 현재 이곳은 눈이 오면 출근을 하기 어려울 만큼의 언덕 위에 있어서 ‘Ongnyeon The Hill’(‘옥련’ 지명의 영어 표기법 ‘Ongnyeon’을 그대로 사용)이지만, 앞으로는 ‘Ongnyeon The Heal’이 되어 예술로 사람들의 마음이 치유되고 균열이 생긴 감정들이 메워지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내 마음이 전달되면 아마도 그들도 고개를 끄덕여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진 정효민(丁孝敏, Hyomin Jeong )

연수문화재단 예술진흥팀에서 ‘아트플러그 연수’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예술행정가이자 기획자이다. 2019년에는 『마드리드 0km』라는 에세이를 발간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했고 sns와 브런치를 통해 지속적으로 집필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