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노래, 꽃으로 피어나라!
인천 노래, 꽃으로 피어나라!
장유정(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교수)
최근 인천을 기반으로 한 소중한 음반들이 여러 장 나왔다. 인천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여러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인천을 소재로 한다든지, 인천 출신 음악인이 참여한다든지, 인천에 주관 단체가 있다든지 등의 의미를 모두 포괄한다.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음반이 최근에 이렇게 활발하게 나온 적이 있었나 싶다. 그러므로 일단 긍정적인 마음을 전제로 몇 개의 음반을 무작위로 들어 그 성과와 한계를 보려 한다.
먼저, 《리:애스컴(RE:ASCOM)》 음반이다. 부평구문화재단에서 문화도시 부평 사업의 일환으로 발매한 이 음반은 미8군 무대가 있었던 부평 애스컴(ASCOM) 출신 원로 음악가들에 대한 오마주로 제작된 음반이다. 김면지(예술숲 대표) 총괄 감독의 기획력이 돋보인 이 음반은 신구의 조화와 조합이 특히 아름다운 음반이다. 인순이가 쟈니리의 <뜨거운 안녕>을, 이혁이 신중현의 <미인>을, 고영열이 배호의 <배신자>를 불렀는데, 편곡과 보컬이 친숙함과 낯섦을 오가며 멋진 사운드를 연출했다. 이 작업에 참여한 분들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강력한 내공의 음악가들이다. 부평음악도시 뮤즈컴 1기로 선발된 지역 음악가들의 노래도 신선하다. 김홍탁의 창작곡 <하얀사랑>을 더하면서 단순한 부활이 아닌 새 생명마저 부여받았으니 나무랄 데 없는 음반이다.
다음으로 《뮤즈컴(MUSCOM)》 음반은 공모 사업을 통해 선발된 음악인들이 참여한 음반이다. ‘뮤즈컴(MUSCOM)’은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는 대중음악(Music)의 무대(Stage)가 되고 새로운 창작을 지원(Support)하는 사령부(Command)의 기능’을 하겠다는 의미를 지닌 용어다. 위에 제시한 영어 단어의 대표 철자를 합쳐 만든 ‘뮤즈컴’은 실제로 다양한 장르의 멋진 음악을 담고 있다. 참여한 음악가들은 오헬렌, 정예원, 보쏘, 네이키드소울, 진해인데, 이들 중 그 누구도 비슷하지 않고 독특해서 골라 듣는 맛이 있다. 장르는 물론이고 양악에서 국악까지 악기와 창법 등에서도 다양함을 추구한 음반이다. 좋은 음악인들이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때 그 결과물이 훌륭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 사례가 될 것이다.
《리:애스컴(RE:ASCOM)》 음반 |
《뮤즈컴(MUSCOM)》 음반 |
ⓒ부평구문화재단 |
세 번째 음반은 《인천 시티 팝》이다. 인천광역시에서 주최한 ‘제1회 인천시민창작가요축제’에서 선정된 대표곡 6곡이 음반에 수록되어 있다. 최근 불어닥친 이른바 ‘시티 팝’의 인기에 부응하는 음반인지라 특히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리라 생각한다. ‘시티 팝’을 장르로 볼 수 있는가의 논쟁이 있기는 하나 1980년대부터 우리나라에도 시티 팝이라 칭할 수 있는 노래들이 등장했다. 윤수일의 <아름다워>, 모노의 <넌 언제나>,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 등이 새롭게 한국 시티 팝의 원조로 발굴되는 한편, 본격 시티팝의 모습을 보여준 김현철의 음악이 한국의 원조 시티 팝으로 호명되었다. 정작 김현철 자신은 자신의 음악을 애초에 시티 팝이라 칭하지 않았으나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시티 팝은 김현철의 음악과도 연결된다.
일본에서는 이미 시티 팝이 오래전부터 인기를 얻었으나 시티 팝의 유행을 굳이 일본의 영향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 시티 팝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았으면서도 멋진 시티 팝의 모습을 보여주는 김현철 등의 음악이 이미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시티 팝의 핵심은 ‘도시’ 또는 ‘도시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라 할 수 있다. 대표 시각적 클리셰는 ‘자동차를 타고 네온사인이나 가로등이 환하게 켜진 밤에 도시의 강변이나 도로를 달리는 모습’이다. 기계음 등이 가미된 청량한 느낌의 연주는 시티 팝을 시티 팝이라 부르는 데 일조한다. 인천광역시에서 발매한 《인천 시티 팝》 음반에 수록된 <BREAK TIME>, <Moonlight>, <I’m Alright>, <너만 있으면>, <불밤>, <West City>에서도 청량감 가득한 시티 팝 특유의 정서를 만날 수 있다.
제1회 인천시민창작가요축제 포스터 |
《인천 시티 팝》 음반 |
ⓒRUBY RECORDS |
이 밖에도 ‘제7회 인천 평화 창작 가요제’ 수상곡을 담고 있는 《2021 인천평화창작가요제》 음반도 ‘평화’를 화두로 하여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음반으로써의 의미를 지닌다. 인천 콘서트 챔버에서 제작한 《인천 용동 권번 예인 이화자 다시 부르기》 음반은 인천 용동 권번 예인 ‘이화자’를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시도는 좋았으나 민요 창법을 주로 사용했던 이화자의 노래를 벨칸토 창법으로 부르면서 노랫말이 선명하게 안 들렸다. 멋지지만 난해한 연주는 이화자의 노래를 국적 불명의 노래로 만들기도 했다. 발굴했다는 <월미도>도 노랫말 없이 연주곡으로 이루어져 있어 아쉬웠다. 의아했던 것은 이화자의 생몰연대를 언급한 부분이다. 이화자가 1950년 서울 자택에서 사망했다는 것을 옛 기사에서 찾을 수 있는데도, 음반 곳곳에서 그를 생몰연대조차 알 수 없는 신비한 여성으로 그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삶을 재조명해서 음반을 낼 때는 기초 자료부터 차근차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인천을 기반으로 한 음반이 양적으로 풍부하게 나왔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양이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요청된다. 무엇을 어떻게 왜 복원해서 다시 부르고, 무엇으로 인천의 정체성을 드러낼 것인가의 문제는 음악가들이 계속 풀어가야 할 숙제가 아닌가 한다. 한동안 인천 노래에 빠져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중 어떤 인천 노래가 대중의 선택과 사랑을 받을지는 알 수 없다. 앞으로 나올 인천 노래의 싹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음반 속 인천 노래들은 소중하다. 지금 나오는 많은 노래들이 씨앗 되어 언젠가 인천 노래가 꽃으로 활짝 피어나길 바라본다.
장유정(張攸汀, Eujeong Zhang)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교수. 음악사학자. 한국대중음악학회 회장. 2009년 인천문화재단 플랫폼 문화비평상(음악 부문)을 수상하였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대중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 다방과 카페, 모던보이의 아지트, 『한국대중음악사 개론』(서병기 공저) 등 27권의 저서와 80여 편의 논문을 집필하였다. 발매한 음반으로는 《장유정이 부르는 모던 조선: 1930년대 재즈송》(2013)과 《경성야행》(202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