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에서 깨어난 시립미술관 건립 논의

-2016 인천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범시민 전문가 토론회 단상

금방이라도 인천에 번듯한 시립미술관이 지어진다는 소식에 모두가 들뜨던 때가 있었다. ‘여기에 지으면 좋겠다, 아니, 저곳이 좋겠다’며 행복한 상상에 시간 가는 줄 모르던 때도 있었다. 그랬다.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 이루지 못한 꿈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아 있기만 하다. 하지만 짓기로 했던 시립미술관은 여전히 ‘희망사항’으로 남아 실체 없이 떠돌 뿐이며, 뜨겁게 지역의 미술계를 달구던 분위기조차 속절없이 사그라져 그때의 기억은 다만 기억으로만 머물 뿐이다. 그렇게 시립미술관 건립 논의가 실종된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지역 미술인들의 숙원일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방치되고 있는 인천 미술의 귀중한 자료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도 시립미술관 건립은 촌각을 다투는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초유의 인천시 재정난이 겹치면서 일정 단계까지 진행되던 건립을 둘러싼 논의는 유야무야되는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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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점에 2016년 9월 29일(목) 오후 3시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린 ‘2016 인천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범시민 전문가 토론회’는 수면 아래로 잠긴 현안을 다시 상기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고 보인다. 인천대학교 조형연구소 주최로 열린 이 날 토론회는 차기율 인천대학교 조형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김상섭 인천광역시 문화관광체육국장의 발제 「인천시립미술관 건립 추진 현황 및 방향」과 미술평론가 김종길의 발제 「향유자 중심의 지역미술관과 전시계획 및 소장품 정책 제언」이 이어졌다. 토론자로는 최정숙 해반문화사랑회 대표, 황흥구 인천시의원이자 문화복지위원회 위원장, 이한수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교수, 그리고 류성환 문화창작R.A.연구회 대표가 나섰다.

이 토론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내용은 시립미술관 건립 로드맵이 대략적이나마 제시되었다는 점이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김상섭 인천광역시 문화관광체육국장은 발제 내용과 질의응답 순서 내내 시립미술관 건립에 대한 의지와 구체적인 절차를 제시하려 애썼고, 그 모습은 사뭇 인상적이었다. 시 측에서도 인천이 시립미술관을 비롯한 국공립 문화시설이 척박한 상황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를 보완할 만한 대안을 내놓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양새였다. 그는 “올해 초부터 시립미술관 건립에 주력하고 있고, 임기 중에는 확실한 결과를 내놓아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건립 계획이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최종적인 행정 절차가 임박했음을 내비쳤다. 그는 또한 “많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고려요소를 충족할 만한 부지 검토는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하반기 중 시립미술관 건립에 대한 개념과 일정 등에 대한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현재 가동하고 있는 내부의 TF팀을 범시민기구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 발전적으로 재구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도 하였다. 이제는 부지 선정보다는 인천시립미술관의 성격과 기능을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하는 단계라는 뜻이라고도 해석될 만한 내용이었다.

미술평론가 김종길은 경기도미술관의 운영 경험에 비추어 오늘날 미술관의 기능 변화에 주목을 하며, 체험, 교육, 에듀테인먼트, 이용자, 지역사회, 특성화, 온·오프라인 결합 중심의 미술관을 지향해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또 그는 “예술과 사회에 대한 능동적 개입과 창작 활동, 시대와 현실에 대한 창발적 발언과 지속성에서 나오는 인천만의 미술사를 정립할 시립미술관의 모습을 기대한다”고 조언하였다. 덧붙여서 ‘인천의 경우, 근대산업도시의 근대성을 기획 아이템으로 활용, 새로운 전시의 테마를 이슈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사를 내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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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토론에서 최정숙 해반문화사랑회 대표는 시민의 입장에서 바라는 시립미술관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해 특유의 쉽고 호소력 있는 어조로 “미술관 자체가 미술품이어야 한다”며, “이 도시에 (시립미술관이) 아름다움을 소장하여 언제나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황흥구 인천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 역시 시민의 대표로서 시립미술관에 기대하는 바를 이야기했는데, 무엇보다 “(인천은 시립미술관이 없는) 후발주자이기 때문에 앞으로 가장 좋은 미술관을 지을 수 있지 않겠는가”라며 시장을 비롯한 문화정책 부서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하였다. 다음 토론자로 나선 이한수 인천가톨릭대학교 회화과 교수는 건물 등의 하드웨어보다 운영과 관련한 기조를 수립하는 데 집중할 것을 주문하였다. 그는 ‘탈 권위를 통한 창조성 발휘가 중요’하다며 시민이 주체가 되는 미술관 건립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역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기획이 선행되어야 하며, 건물 중심의 사고에 갇히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심화되는 입시교육의 대안으로서의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류성환 문화창작R.A.연구회 대표는 일본 가나자와시에 있는 21세기미술관이 건립되기 전 100여 회의 공청회를 연 것처럼 우리도 끊임없이 논의한다면 올바른 방향으로의 건립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며, 흔들림 없는 정책 실현 의지와 기조를 당부했다.

지역 예술계의 뜨거운 현안이었던 만큼 방청석의 열기도 그에 못지않았다. 마이크를 잡은 지역의 예술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제라도 시립미술관 건립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다행’이라면서도 또 다시 한 목소리로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정책의 기조가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는 희망과 우려가 동시에 섞인 반응을 보였다.

이번 토론회는 지지부진하게 시립미술관 부지 선정을 둘러싼 논의를 거듭하던 5년 전에 비해 확실히 진전된 내용과 정책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건립 자체를 의심하고 백안시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 이 날 토론회에서 받은 인상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앞에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지적대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삶과 함께하는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모든 지혜와 노력을 모을 때가 아닐까 한다. 오늘날의 미술관은 더 이상 전문가만의 것도, 시 당국의 것도 아닌 시민의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물질적으로 존재할 시립미술관 건물의 설계부터 미술품 수집, 조사·연구, 전시, 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뿌리는 하나일 뿐이다. 결국 인천시립미술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시민에게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철학적인 고민이 고스란히 건립 과정과 이후의 운영에 녹아들어야 시민의 사랑을 받는 미술관으로 남을 것이다.

글 / 박석태(미술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예술지원팀)

사진 / 민경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