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세상의 문화, 서로 존중하는 문화로 나아가는 출발점: 인천중구문화재단 대표이사 나채훈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의 문화, 서로 존중하는 문화로 나아가는 출발점인천중구문화재단 대표이사 나채훈
나채훈(羅彩勳)
1947년 인천시 중구에서 태어나 약 40년간 거주했다. 이후 20년 이상 중구에 집필실과 사업장을 두고 중구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1974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지리학과를 졸업했으며(문학사), 이후 『주부생활』, 『여원』, 『리빙뉴스』의 편집국장을 지냈다. 더불어 그는 중국 고전서 연구에 바탕을 두고 리더십 연구에 힘써왔다. 주요 저서로 『정관정요』, 『삼국지신문』, 『카리스마 리더 조조』, 『유비의 리더십』, 『위대한 CEO 제자백가의 경영 정신』, 『중국인의 발상법』, 『1패에 기죽지 말고 2승을 노려라』, 『조조와 유비의 난세의 리더십』, 『누구도 나를 버릴 수 없다』 등 다수가 있다.
2021년 9월 24일 오후, 인천중구문화재단 나채훈 대표이사와의 인터뷰를 가졌다. 인천문화재단 손동혁 정책협력실장의 진행 아래 초대 대표이사에 대한 소개를 비롯하여 앞으로 인천중구문화재단이 구상하고 있는 역할과 사업방향, 그리고 인천의 여러 문화재단과의 협력방안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손동혁: 인천중구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라는 중책을 맡으셨습니다. 먼저 나채훈 대표이사님에 대한 소개로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나채훈: 고향이 인천이라 옛날부터 오래 봐왔죠. 자유공원 일대의 개항기 때 만들어졌던 건물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외부에서는 중구에 문화유산이 많다고 하지만 제가 볼 때는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란 곳이다 보니 상당히 관심이 많죠. 대학에서 쓴 논문도 인천 중구 조계 제도에 대해서 다뤘어요. 그 이후에는 방송국에 잠깐 있다가 『주부생활』이라는 여성잡지사에 들어갔어요. 제 실력이 있어서라기보다 제 윗사람들이 일찍 관둬서 데스크 생활만 18년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간신문도 만들어보고 했고요. 연극계에 몸담기도 했습니다. 희곡도 써보고 연극연출도 해봤고요. 『정관정요』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게 워낙 잘 팔려서 이참에 인천 가서 책 50권만 쓰면 평생 먹고살겠다 싶어서 인천에 내려왔어요.
막상 내려오니 소설만 쓰는 것도 참 그렇죠. 마침 인천 지역의 후배들이 문화단체 일을 주선해줘서 잠깐 일을 하는데, 제가 어릴 때 보고 자란 곳 도처에 틀린 안내판이 붙어있고 설명도 미흡하더군요. 제가 논문을 조계지에 대해서 쓰기도 해서 중구 지역의 개항사에 대한 강의를 하기 시작했어요. 역사지리를 전공한 입장에서 볼 때, 틀린 것들이 많았습니다. 고치고 강의도 하다 보니까 중구지역에서 인문교육을 11년 정도 하고 있었더라고요. 책도 마흔아홉 권 정도 썼고요. 대부분은 중국 역사에 대한 책들이고, 인천의 역사를 다룬 책은 『인천 개항사』가 있어요. 주로 삼국지 리더십 주제로는 강의를 했고요. 작년부터 다른 구에서 문화도시를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고향인 중구에 문화재단이 설립된다는 소식에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고향에서 펼쳐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대표이사직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손동혁: 그동안 인천광역시 중구에서 다채로운 문화 활동과 개항장 관련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중에 어떤 활동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인천광역시 중구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나채훈: 아직 인천 중구하면 생각나는 대표 사업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천의 개항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중구만의 대표사업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예술인들이 중구에서 다양한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적 토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살만한 도시를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사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요.
손동혁: 지난 8월 27일에 ‘(재)인천중구문화재단 발기인대회 및 창립총회’가 개최됐습니다. 이제 문화재단 출범을 위한 행정적인 준비를 거쳐 사업의 방향을 구체화하고 직원을 충원하는 등 실질적인 준비를 해야 할 때로 보입니다. 초대 대표이사로서 인천중구문화재단 사업의 초기 방향에 관한 구상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채훈: 2021년 기준으로 전국에 117개의 기초자치단체 문화재단이 운영되고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보통 5년이나 10년이 넘으면 조직이 처음 의도한 것과 다르게 경직화되는 현상도 있고, 문화예술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답게 창의성이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몰되어 가는 경우가 많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초기에는 조직의 안정화에 힘쓰려고 합니다. 인천중구문화재단은 4개 팀으로 출발을 하는데요, 원래는 8개 팀 정도가 필요한 조직인데 예산 문제로 상당히 슬림화한 거죠. 적은 인원에 업무가 가중될 수 있지만, 오히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많이 듣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직원들이 조직이라는 틀 속에 자신을 가두려고 하지 말고 부족한 부분을 외부와의 소통으로 채워 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문성 하나를 꾸준히 키워나가는 것, 이것이 조직의 안정화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 중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개항문화의 재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1883년에 개항 이후 오늘날까지 얼마나 많은 성장과 발전이 있었습니까? 산업화도 이루었고 민주화도 이루었으니 문화화될 필요가 있어요. 개항을 통해 전달된 근대문화, 또 오늘날 인천의 출발점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문화라고 하는 것을 생산성이나 소비성보다 사람 사는 세상의 문화, 서로 존중하는 문화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의 참여와 소통을 통해 뜻을 크게 갖고 우리 문화재단의 출발에 의미를 두고 함께 노력해야지요.
손동혁: 인천광역시 중구는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을 갖고 있고, 한편으로는 인천항과 인천공항 등 세계로 열린 두 개의 문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천의 해양성과 국제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향후 이러한 상징성을 구체화하기 위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대표이사님의 혜안을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나채훈: 문화적인 부분에서만 말씀드리자면 저는 국제성은 가장 중구다운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에게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인드를 형성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인종적·종교적 편견에서 벗어나야 하죠. 개항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들은 부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승화시켜야죠. 평생교육의 장을 만들어서 인문학 강좌, 생활문화동아리 활동 지원으로 이어져야 하고, 그뿐만 아니라 시야를 넓히기 위한 추가적인 활동도 만들어야 할 거 같습니다. 또한, 해양자원은 선조들이 남겨준 유산인데 오락적인 요소의 이벤트로만 사용할 게 아니라 각종 교육과 경험을 하게 해줘야 할 것, 자연유산이 소중하고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해안가에서 많이들 발생했죠. 생산적인 면도 포함해서 괜찮은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제2의 종합문화예술회관 같은 것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금 내항 재개발의 문제가 있는데요, 그 공간을 좀 더 인문학적 시각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개항문화축제를 내항에서 제대로 했으면 해요. ‘제대로’의 핵심은 우리 주민들이 최소한 과반 이상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참여행사지요. 중구문화재단이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손동혁: 지난 2월 2020년 「해양교육 및 해양문화의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는데요, 지금 말씀하시는 해양과 교육, 문화 이런 부분들이 잘 포함된 법률이어서 살펴보다 보니 제도혁신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지금 중구를 보면 영종 지역에 더 많은 분들이 살고 계신 데 상대적으로 그곳이 연령층도 더 낮고요. 하지만 역사문화자원이나 시민들의 문화 환경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여기에 대해 어떤 구상을 하고 계시나요?
나채훈: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영종 지역의 특성은 새로 유입된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죠. 급속도로 한 도시의 인구가 팽창하게 되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폐기물 대책 하나만 해도 따라가기가 어렵죠. 이러한 일은 행정이 예측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요. 영종 지역에서 증가하는 젊은 가정에 대해 두 가지 정도를 얘기하고 싶어요. 중구문화재단은 문화기금을 조성하면서 후원금을 받았을 때 문화예술 인재육성기금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또한, 평생교육에 문화예술교육을 접목한 강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다양한 강좌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소수의 인원도 의미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지역주민들이 모여서 다양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문화 사랑방을 형성할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 중구민에게 다양한 인문교육도 필요하겠지만, 좀 더 ‘관계인구’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주지는 다르더라도 일자리가 중구에 있는 사람들, 그 관계인구를 우리가 ‘관계주민’으로 인식해야 해요. 오히려 온종일 다른 지역에서 일하다가 오는 사람보다 훨씬 중요한 주민일 수 있거든요. 이런 분들하고도 네트워크를 만들어 공방 체험과 같이, 역사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자세한 부분은 앞으로 중구문화재단 임직원들과 토의를 거쳐 구상을 다듬어보려고 해요.
손동혁: 인천에는 인천문화재단, 부평구문화재단, 인천서구문화재단, 연수문화재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2년 초 출범을 목표로 남동구문화재단도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화재단 간의 역할 분담과 협력방안에 관한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채훈: 아무래도 인천문화재단을 중심으로 각각의 기초재단들이 협심해야 할 텐데 대표이사의 임기가 잘 맞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가 있겠지요. 지방자치의 문제이기도 한데 임기제의 장점이나 정년제의 장점을 제대로 못 살리고 자꾸 단점만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되면 좋은 계획을 세워도 진행되기가 쉽지 않죠. 하나의 뼈대를 세우고 거기에 계속해서 살을 더해 가면 좋은데 이어지지 못하면 용두사미가 될 위험이 커요. 그래서 저는 일차적으로 인천 지역문화재단의 직원들이 모인 하나의 단체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임기제인 대표들은 뒤로 빠져서 앞으로 오랜 시간 일할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구상을 갖고 인천의 문화를 만들어가게 하는 거죠. 문화재단들이 연계 협력할 수 있도록 재단의 대표들은 지원을 하고요.
손동혁: 여러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나채훈: 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문화예술을 이해하는 데에 아직도 우리 사회는 문화의 양적 팽창과 질적 향상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아요. 복지문제도 그렇고요. 어떻게 보면 문화복지가 누군가에게는 생명수이기도 한데 별것 아닌 돈 낭비라는 인식이 있죠. 공항이나 단지 조성 등에 들어가는 돈은 상대적으로 어마어마하지만 그러한 돈을 투자하고도 제대로 성공한 일이 없었어요. 인천에서도 그렇게 터무니없이 사용된 재정 지출도 많고요. 그런데 문화예술에 쓰는 돈은 꼭 낭비하는 것처럼 말하며, 예술이나 문화가 만들어낸 콘텐츠를 생산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는 일까지 가볍게 여기는 건 문제가 많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부터 제대로 해주고 그랬으면 합니다. 앞으로 중구문화재단이 앞장서서 뭔가를 좀 할 수 있을 때 많이 격려해 주셨으면 하고요, 도와주시면 고맙겠어요.
인터뷰: 손동혁(인천문화재단 정책협력실장)
정 리: 박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