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어떤 ‘모순적’인 이야기: 『아티스트』(마영신, 송송책방)

만화 함께 읽기
만화에는 재미와 감동이 있습니다. 만화에는 이 시대가 생각해야 할 가치, 우리 사회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만화 함께 읽기’에서는 ‘문화예술을 소재로 한 만화’나 ‘문화 현장의 쟁점을 다룬 만화’를 소개합니다. 바쁜 일상이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 만화를 읽으며 삶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예술가들의 어떤 ‘모순적’인 이야기『아티스트』(마영신, 송송책방)

최기현(인천문화재단)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이 인기다. 삶의 막다른 지경에 처한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456억 원의 상금을 받기 위해 게임에 도전한다.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기에 반드시 상금을 차지하여 가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가 서비스하는 83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흥행 중이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죽어야 한다. 동료와 끝까지 함께 할 것만 같은 ‘정의로운’ 주인공들도 자신이 탈락할 위기에 처하자 동료를 속이고 혼자만 살아남는다. 오징어게임의 주최자도 ‘정의롭고 공정한 기회’를 표방하지만, 참여자의 편법에 눈을 감거나 참여자가 능력을 발휘하려고 하면 그 기회를 박탈한다. 참여자나 주최자 할 것 없이 모순적인 행동을 보인다. 사람은 원래부터 모순적인 존재였을까, 아니면 상황이 사람을 모순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마영신, 『아티스트』 총 2권(송송책방, 2019)

만화 『아티스트』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다. 음악가 천종섭, 화가 곽경수, 소설가 신득녕은 무명의 가난한 예술가이다.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며 자신들의 상황을 한탄한다. 다른 누군가의 성공을 부러워하며 ‘예전에는 나보다 못했던 놈’이라고 폄하한다. 대중의 인기를 얻은 뮤지션은 어설픈 실력으로 유세 떤다고 판단하거나, 대중적으로 성공한 예술은 그 예술적 세계가 깊지 않다고 단정한다. “우리 셋은 누가 잘 되면 무시하지 말고 서로 진심으로 위하면서 살자”고 다짐하지만 셋 중에 누군가가 잘되면 배가 아프고 그 성공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유치하면서도 모순적이다.

이 만화의 가장 큰 매력은 등장인물의 내면 심리와 욕망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음악가 종섭은 득녕의 도움으로 우연한 기회에 스타작가가 되지만 득녕에게 도움받은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이 잘 나서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가 경수는 꼰대 기질에다가 ‘내로남불’형의 인물이다. 대학교 시간강사인 그는 권력에 아부하고 질투심과 명예욕 끝판왕이다. 득녕은 자신의 문학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돈이나 명예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문학상 후보가 된 후에는 ‘문학상을 거부’하겠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그냥 하는 소리’였다고 말을 바꾸는 캐릭터다. 세 인물 모두 마음속으로는 예술을 통해 명예를 얻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예술적 성취도 이루고 싶은데 아닌 척 포장한다. 자신에게는 능력이 있지만, 그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남 탓이나 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아티스트』 중 한 장면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을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 ego)’로 구분했다. ‘이드’는 인간의 본성이나 리비도, 충동 등이다. 인간의 욕구는 이드에서 비롯된다. ‘초자아’는 양심과 이상적 열망, 도덕적 교훈과 사회적 금기 등이다. 일종의 마음속 재판관이다.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둘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이드나 초자아 어느 한쪽으로 휩쓸리지 않도록 밀고 당기기를 한다.

이드와 초자아의 대립은 원래 인간이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내 맘 같아서는 명예와 권력, 돈을 전부 가지고 싶은데, 사회적 금기나 도덕적 교훈 등 이상을 지향하는 초자아 때문에 내 맘대로 갖지 못한다. 내면에서 이드와 초자아의 치열한 싸움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드에 휩싸이면 욕망이 밖으로 발현된다. 그 형태는 잠재되어 있지만 오징어게임처럼 상황에 따라 자신의 욕망에 의해 모순적인 행동이 나온다.

마영신 작가는 예술가들의 모순적인 면모를 볼 때마다 틈틈이 메모한 것을 토대로 『아티스트』를 그렸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아티스트』에 등장하는 종섭, 경수, 득녕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이다. 예술가로서의 초자아 판타지를 꿈꾸면서 동시에 이드에 따라 행동한다. 우연한 기회에 명예나 권력이 주어졌을 때는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고 한다. 이들이 특이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독자는『아티스트』를 읽으면서 어쩌면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했던 자신의 모순적인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아티스트』의 후속편으로, 찌질한 곽경수를 재조명한 『아티스트, 곽경수의 길』(송송책방, 2020)도 볼 만하다. 특히 주인공 곽경수가 만화에서 개최한 개인전은 만화 출간과 함께 <곽경수 개인전>(파주 아트스페이스휴, 2020.5.22.~6.25.)으로 현실에서 개최된 바 있다. 곽경수가 만화 속에서 작업한 그림 10점 등이 전시되었고, 뮤지션 김오키의 공연, 소설가 박민규의 소개글도 현실에서 재현되었다. 만화 속 전시회가 현실에서 구현된 재미있는 이벤트였다.

유치하고도 모순적인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마영신 작가의 『아티스트』를 한번 읽어보시길.

최기현(崔基鉉, Daniel Choi)

인천문화재단 전략기획팀 과장. 만화평론가. 문화예술과 만화에 담긴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웹툰이나 공연, 전시를 추천해주신다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DANIEL7@ifa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