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가치로서 ‘지속가능한 발전’의 문화화 그리고 문화예술교육

보편적 가치로서 ‘지속가능한 발전’의 문화화
그리고 문화예술교육

김상원(인하대학교 교수)

우리 문화 및 예술과 관련된 법에서 ‘문화’와 ‘예술’의 개념은 ‘문화예술’이란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표현은 「문화기본법」, 「지역문화진흥법」, 「예술인복지법」,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등 문화와 관련된 법에 수없이 사용되고 있다. 「문화예술진흥법」에서는 그 정의를 “문학, 미술(응용미술을 포함한다),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 국악, 사진, 건축, 어문, 출판 및 만화를 말한다.”라고 기술한다. 이러한 ‘문화예술’의 법적인 정의는 사전적 의미의 ‘예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나, 왜 이러한 복합어 표현을 법조문에 명시했는지 그 근거를 확인하기 어렵다. 아마도 ‘문화기획’ 또는 ‘예술기획’과 관련된 대상과 행위자의 활동영역의 중복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론해보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필자는 본 기고에서 ‘문화’와 ‘예술’의 개념을 분리해서 사용하고자 한다. 어떤 개념을 정의할 때 자체의 속성을 기술하거나, 범주화를 사용한다. 범주화의 경우, 유사한 또는 동일한 성질의 것을 하나의 범주로 간주하는 방식이지만, 그보다 앞서 선택할 수 있는 범주 구분은 의미대립쌍, 즉 반대말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볼 때, ‘문화(Culture)’의 대립개념은 ‘자연(Nature)’이다. 이때 ‘자연’은 언뜻 산, 강, 바다와 같은 풍경으로 해석되곤 하지만, 본래 의미는 산, 강, 바다와 같은, 다시 말해 인간에 의하지 않은 채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스스로 지닌 본연의 성질대로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 또는 상태로 생각할 수 있다.

‘지속가능성’ 개념은 독일의 산림경제학자인 한스 카를(Hans Carl)이 1713년에 산림경영과 관련한 언급에서 그 시초를 찾아볼 수 있다. 이 개념은 1952년에 일반 경제학에 수용되었고, 1980년에 환경연구단체의 보고서에서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란 개념으로 등장하게 된다. 오늘날의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은 1987년에 개최된 유엔의 브룬트란트 보고서(Brundland report)에 채택되면서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지닌 인류의 목표 개념으로 제시된 바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면서 지구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17개의 실천 목표(빈곤퇴치, 기아퇴치, 건강한 삶, 평생학습 기회 제공, 성평등, 물과 위생의 이용과 관리, 지속가능한 에너지, 일자리, 지속가능한 산업, 불평등 감소,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 기후변화의 대응행동, 해양자원의 보존, 평화, 이행수단의 강화)를 정하고 있다.

이러한 17개의 실천 목표는 개인의 실천과 더불어 지역과 국가 그리고 세계가 동의하고 실천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행을 위한 강력한 제도를 구축하고 상호 교류를 통한 한계극복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 지역, 국가 간 차이가 있으며, 그 목표에 다가가기가 녹록하지 않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기 위한 이론적 논의 역시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세 가지 가치(생태적 가치, 사회적 가치, 경제적 가치)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논의된 바 있다. 이 세 가지 가치가 전제될 때 지속가능한 발전이 담보될 수 있다는 모델은 소위 ‘세 개의 기둥이론(Three pillars theory)’이라고 한다.

세 개의 기둥 이론(Three pillars theory)‘세 개의 기둥 이론’은 독일 올덴부르크 대학의 베른트 하인스(Bernd Heins) 교수가 1994년에 자신이 제시한 모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유사한 개념이 이미 1987년 브룬트란트 보고서에서 다루어진 바 있고, 이 보고서에서 다루어진 지속가능성에 대한 세 개의 모델을 1994년 독일연방의회의 연구위원회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모델은 1996년에 독일 화학산업 협회(Verband der Chemischen Industrie, VIC)에서 최초로 도입되었기에, ‘세 개의 기둥 이론’의 정확한 기원을 정확히 밝히기 어려운 상태이다. (참조: https://de.wikipedia.org/wiki/Drei-S%C3%A4ulen-Modell_(Nachhaltigkeit))

‘그림1’은 세 개의 기둥 이론의 초기 모델이고,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진화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왼쪽부터 2번째까지는 가치의 우선순위가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두 번째 모델은 ‘약한 지속가능한 발전(Week sustainable development)’ 모델이고, 세 번째 모델은 가치의 우선순위가 제시되어 있어, 이를 ‘강한 지속가능한 발전(Strong sustainable Development)’ 모델이라고 부른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세 가지 기둥 모델이 1998년부터 널리 사용되었고, 유엔을 비롯한 각국은 이 중에서 ‘강한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수용하고 실천했지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실천목표는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못하거나, 형식적으로 이행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계는 ‘강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우선순위만으로는 그 실천목표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자이면서 활동가인 존 혹스(Jon Hawkes)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네 번째 기둥인 ‘문화’를 제안하였고, ‘문화’는 인권, 문화적 다양성, 지속가능성, 참여 민주주의 및 평화를 위한 조건 조성에 전념하는 세계의 도시와 지방정부에 의해 2004년에 승인된 ‘문화를 위한 의제 21(Agenda 21 for culture)’에 포함되었다.

2015년 70차 유엔총회는 ‘문화를 위한 의제 21’을 보완하고,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시민권, 문화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높이고, 달성 가능한 그리고 측정 가능한 행위와 약속을 지원할 수 있는 글로벌 프레임워크를 제공하기 위해 「우리는 문화가 포함된 미래」라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성명서에는 시민과 함께 그리고 시민을 위한 정책을 실행하고 발전시킬 때 지방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역문화 정책의 강화를 제안하고 있으며, 지역발전모델의 기초 단위로서의 문화통합을 제안하고 있다.

독일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그림4’에 제시된 네 번째 기둥인 ‘문화’를 모두를 위한 보편적 가치를 문화화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 간주하며, 이를 ‘문화교육’으로 표방하고 있다. 독일정부와 문화협의회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육(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 ESD)’이란 맥락에서 환경교육을 자원의 책임 있는 사용과 이를 문화화시키기 위한 문화교육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교육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시민 토론을 자극하고, 이를 통해 변화를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독일 지방정부는 지역문화조정사무소(Koordinationsbüro Kulturregion)를 두고 공공 및 민간 문화종사자와 지역의 문화담당자(기관) 사이의 소통(Kommunikation), 협력(Kooperation), 조정(Koordination) 그리고 합의도출(Konsensfindung)을 지원하고 있다.

독일의 문화정책은 1970년대 격변과 성장의 국면을 겪으면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사회정책이라고 선언하면서, ‘모두를 위한 그리고 모두에 의한 문화(Kultur für alle und von allen)’를 지향가치로 제시했다. 이제 문화정책은 사회정책이다. 왜냐하면, 문화정책은 사회에 대한 분석을 전제로 수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3년에 발표한 「예술을 위한 예술인가(Art for Art’s Sake)?」란 연구보고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술의 기능과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어려서 예술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다양한 직업영역에서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는 것에 주목하고, 예술교육은 예술가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의미 있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의 기능과 역할에 주목하는 사례는 영미권에서 적용되고 있는 펠드만(Burke Feldman)의 「원칙에 기반한 예술교육(Discipline-based arts education, DBAE)」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예술교육의 목적은 예술가와 예술비평가와 같이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으로, 예술교육이 “젊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 언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이해하는 능력, ‘문명화된 삶’이 계속될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심오한 만족감을 부여”하는데 이바지한다고 보고, 예술교육의 도구화를 강조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이미 40여 년 전에 시작했고, 우리나라도 ‘문화예술교육’이란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는 ‘예술교육’은 ‘예술을 위한 예술교육’이 아니라, 사회정책으로서의 문화정책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모든 사람에 의한 문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문화교육이 필요하며, 이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예술적 개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술적 개입에 기반을 둔 문화교육은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보편적 가치를 문화화시키는 데 기여하며, 이는 체화된 문화자본으로서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

김상원(金常元, Sangwon Kim)

독일 아헨대학교 철학박사.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교수, 인하대 문화예술교육원 원장, 인하대 대학원 문화경영학과 학과장, 인하대 대학원 도시계획학과 및 도시재생학과 교수(겸직, 참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