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담당자로 지역 안에서 지역 바라보기

현장 담당자로 지역 안에서 지역 바라보기

김새놀(연수문화원)

어린 시절 겨울이면 가족들과 썰매를 타러 가던 송도유원지가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차가 거의 없어 어머니가 운전 연습을 하던 해안도로는 송도신도시로 가는 길목이 되었다. 세월의 흐름에 많은 것들이 변화하였지만 연수구가 생길 때부터 성장하고 경험해왔던 문화적 향수를 바탕으로 그럴싸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거기에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문화예술’로 이를 풀어내고 싶다는 열망이 간절해졌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연수문화원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고, 나를 위한 자리라고 생각했다. 6개월의 경력밖에 없던 사회 초년생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습지만, 연수구에 관해 묻노라면 A부터 Z까지 꿰고 있는 이 지역 부심 하나로 6년째 그럴싸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연수문화원 생활문화팀에 근무하면서 생활문화와 문화예술교육 관련 사업을 기획․운영하고 있기에 관내 곳곳을 찾아갔고, 다양한 지역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열정과는 달리 ‘문화재단’도 ‘문화예술단체’도 아닌 ‘문화원’에서 문화사업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애매한 지점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지방문화원은 전국 230개 지역에 설립되어 있을 정도로 꽤 큰 조직이지만, 향토 및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고유 목적이 분명하여 최신 트렌드나 이슈를 반영한 시도에는 한계점이 분명 존재하였다. 게다가 문화사업은 어느 정도 연속성과 중장기적인 계획이 중요하고 그 중심엔 재원이 확보되어야 한다. 하지만 재정자립도가 현저히 낮은 문화원에서는 사업 예산 확보의 어려움이 있었다. 이 얘기는 즉, 적은 예산으로 최대치의 사업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고, 이 몫은 자연스레 사업 담당자들의 책임감이자 부담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녹록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문화원이 던질 수 있는 승부수는 바로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연수문화원은 지역 안에서 20년을 마주하며 물리적 변화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변화까지도 담아내고자 하였다. 문턱이 낮은 문화원에 다양한 평생학습 강좌들이 개설되다 보니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문화원에서 근무하며 제일 놀라웠던 것은 주민분들이 직접 과일을 깎고 옥수수를 삶아와 사무실에 주기도 하시며, 본인의 일상을 얘기해주고 또 직원들의 안부를 되묻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매우 소박한 일일지 모르지만,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주고받고 SNS로만 감성을 논하던 나에게 문화적 향수를 다시 마주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강좌나 프로그램 참가자가 아닌 지역주민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자연스레 사업에 녹여낼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

2020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꼬마작곡가> (사진: 연수문화원)

문화원에서 가장 애정하고 보람된 일을 꼽자면 바로 ‘문화예술교육’ 사업이다. 문화예술을 체험하고 경험하는 일, 그 과정이 사람과 지역사회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곳에서 가능한 문화예술교육이 뭐가 있을까?’ 늘 고민하였다. 문화원의 접근성과 지역 안에서의 이점을 바탕으로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을 바라보고 싶었다.

2016년도부터 선정되어 운영하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꼬마작곡가 프로그램>’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주도의 사업으로 음악을 배운 적이 없는 아이들도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현재까지 200여 명의 곡이 만들어졌으며, 이제는 지역 안에서도 꽤 입소문이 나 많은 참가자들이 기다리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동안 만들어진 결과물들을 관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여 지속해서 연주될 기회를 마련하며,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올해부터는 그 의미와 가치를 담아 <인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사업으로 프로그램을 이어나가고 있다. 또한 인력을 확보함으로써 전문성을 담은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는 <인천 현장역량강화사업>을 통하여 전문 인력이 부족한 문화원에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와의 협력 운영으로 진행되는 <인천 생애전환문화예술학교>는 50~64세 신중년을 대상으로 개설된 예술 프로그램을 통하여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고자 만들어진 사업인데, 올해는 ‘트롯’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지역주민들의 눈높이를 맞추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020 인천 문화예술교육사 현장 역량강화사업 <트롯은 인생을 싣고> (사진: 연수문화원)

문화원에서 이렇게 문화예술교육이 잘 자리 잡은 데에는 함께하는 예술강사와 긴밀한 소통과 나눔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행정 담당자라는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강사가 마주하는 ‘현장’을 함께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 참가자들의 달라지는 모습을 발견하고 고민과 생각을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기능 중심의 어떠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해를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목적’이 아닌 ‘과정’에 주목하고 ‘잘하는 것’이 아닌 ‘좋아하는 것’을 경험하게 하였던 이러한 기록들이 지역 안에서 문화원이 문화예술교육을 ‘잘’할 수 있게 된 힘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역문화에 대한 경험은 인구의 수나 건물의 높이가 아닌 연수 지역 곳곳에 대한 애착과 일상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행정 담당자가 아닌 현장 담당자로서 지역주민과 예술가들을 만나며 나의 도시 ‘연수’를 위한 그럴싸한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싶다.

김새놀(金새놀, Kim Sae Nol)

서울연극협회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연수문화원 생활문화팀장으로 재직중이다. 생활문화동호회 지원사업과 문화예술교육 사업 등을 담당하고 있으며 늘 새로운 변화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