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예술가 최리나

최리나는 한국과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사운드 설치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런던의 영국왕립예술대학에서 조각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경기대학교에서 환경조각 학사학위를 받았다. 최리나의 작업은 한 사회 안에서 각기 다른 개인이 자신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으로부터 출발한다. 작가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강요나 헤게모니(hegemony)에 대한 거부감이 각자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드러내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주로 인터뷰나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그 목소리를 변형하여 스피커 위에 진동으로 남긴다. 청각적 요소를 제거한 목소리는 역동적인 진동으로 시각화되어 개개인의 사적이면서 소소한 이야기들을 전한다.

《Emergent Vision》, Safehouse, 런던, 영국, 2020
불협화음 오케스트라, 우퍼 스피커, 변형된 목소리, 물, 페트리 접시, 가변설치, 2020

# Q&A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나는 소리를 사용하는 작가다. 주변 사람들,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과 나눈 대화 또는 작은 독백을 부탁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녹음한다. 녹음된 소리는 옥타브만 남도록 변형되고, 우퍼 스피커를 통해 진동으로 변환된다. 청각적 요소를 제거하여 역동적인 진동으로 시각화된 목소리를 통해 개개인의 사적인 소소한 이야기를 전한다. 나의 실험은 한 사회 안에서 각기 다른 개인이 자신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관한 궁금증으로부터 출발했다. 나는 우리가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사회적 강요나 헤게모니가 각자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드러내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다. 개성은 특별함이 아닌 다름이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주목하지 않는, 하지만 미시적으로는 아주 중요한 개개인의 사소한 이야기들에 주목하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년 전부터 나는 사운드라는 매체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영국에서 유학을 시작할 당시, 그동안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운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스피커나 사운드에 관한 지식이 없었던 나는 교내 테크니션을 찾아가기도 하고, 인터넷 동영상들을 참고하며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무지의 상태에서 지식을 쌓아간다는 것은 몹시 즐거운 일이었다. 여전히 소리와 음향기계에 대해 배우고 있다.

화상통화를 통한 인터뷰
‘What is your most recent personal event?’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졸업 전시를 위해 만들었던 <불협화음 오케스트라(The Cacophonic Orchestra)>를 대표작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 작업은 디지털 버전과 실제 설치 버전이 있다. 2020년 졸업 전시를 몇 달 앞두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졌다. 원래는 오케스트라 병렬 구조로 스피커를 설치할 계획이었는데, 모든 수업과 전시 또한 온라인으로 변경되었다. 3월부터 기약 없이 시작된 런던의 봉쇄상황에서, 모든 것을 실제 설치가 아니라 디지털 형식으로 바꿔야 했다. 디지털 버전에서 각기 다른 음악 악기들을 표현하는 15개의 스피커들은 각자 따로 영상으로 촬영되었고, 한 화면 안에서 오케스트라의 구조로 배치되었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해야했던 작품인데, 실제로 만나는 것이 어려워져 영상통화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목소리를 녹음했다. “최근에 있었던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나 큰 걱정거리에 대해 말해줘.”라고 질문했고, 사실 모두가 집에 머물러야 하는 똑같은 상황이라 비슷한 답변을 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악몽, 짝사랑, 애인이나 친구 고민 등 15명 모두 다른 대답을 했다. 이것이 바로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었다. 같은 상황, 사회 환경 속에서 모두가 똑같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두가 다른 인생을 산다는 것. 그리고 개성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게, 우리의 일상에 녹아있다는 것 말이다.
녹음된 인터뷰를 옥타브만 남게 변형했고, 스피커 위에서 진동만 남게 만들었다. 작은 접시에 담긴 물을 통해 진동을 볼 수 있는데, 물 위에 생성되는 패턴도 목소리의 크기, 억양, 박자 또는 음색에 따라 모두 다르게 나타난 점이 흥미로웠다. 설치된 스피커 오케스트라는 멀리서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하나씩 들여다보면 각자 다른 이야기와 소리를 갖고 있다. 목소리를 악보로 제작하기도 했는데, 악보의 생김새, 음표의 구성도 모두 다르고 독특했다. 봉쇄가 풀린 이후, 실제 전시장에 15개의 스피커와 악보를 전시할 수 있었다. 전시 장소가 오래된 빅토리아 형식의 버려진 집이었는데, 진동 때문에 건물이 흔들렸다. 같은 제작방식과 배경을 가진 작업이지만, 각기 다른 형식을 통해 선보인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변화한 상황에서 새로운 도전을 통해 만든 작업이었기에 의미가 있었던, 그 과정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다 뚜렷하게 찾을 수 있었던 작업이었다.

인터뷰한 목소리로 만들어진 악보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A. 정체성과 개성에 대한 관심과 탐구는 한국 사회의 단체주의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유행은 급속도로 퍼지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가 따라간다. 예를 들어 계절에 따라 유행하는 옷을 모두가 입고, 유행이 지나가면 그 옷은 입기가 민망해진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하면 나도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 심리랄까. 도저히 자기만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어려운 사회처럼 보였다. 정체성을 표현하면 단체 속에서 이상한 사람이 되거나 틀린 사람이 되는 경우들을 보면서 나만의 개성과 정체성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직 어떤 답을 내린 것은 아니고, 똑같음 속에서 사소하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찾고 있다.
영국에서 사물 기호증(Object Sexuality), 쉽게 말해 사람이 아니라 사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예를 들어 파리의 에펠탑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자신의 성을 에펠로 바꾼 여성이 있었고, 현대에 와서는 AI 로봇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린 시절의 애착 대상과 성인이 된 이후 물건에 대한 애착에 관하여 연구했다. 이것이 페티쉬(Fetish)인지 점점 더 개인주의로 변해가는 현대사회의 모습인지 궁금했다. 사물 기호증이라는 주제로 글은 썼지만, 아직 작업을 해보진 못했다. 리스본에 있는 레지던시에 머물 때 모자에 애착을 가진 소녀의 이야기를 지어내 비디오를 만든 적이 있는데, 더 나아가 사물에 대한 어른들의 사랑도 꼭 한번 다뤄보고 싶다.

《Emergent Vision》, Safehouse, 런던, 영국, 2020
불협화음 오케스트라, 우퍼 스피커, 변형된 목소리, 물, 페트리 접시, 가변설치, 2020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관객과의 소통은 나의 작업에 아주 중요한 요소다. 관객들이 완성된 미술작품을 관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그리고 거시적으로 봤을 때는 아주 사소한 점에 불과하지만, 사실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자신만의 이야기들을 나의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mergent Vision》, Safehouse, 런던, 영국, 2020
불협화음 오케스트라, 우퍼 스피커, 변형된 목소리, 물, 페트리 접시, 가변설치, 2020

Q.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인천아트플랫폼에서 <노이즈 실험실>(2021)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인천 시민들과 워크숍을 통해 주변의 소리를 탐구하고 만들어내어 녹음할 예정이다. 녹음된 소리들은 영상 작업의 배경음이나 효과음으로 쓰인다. 일반 관객들이 사운드라는 매체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와 더불어 인천 지역에서 여러 형태로 전해지고 있는 ‘아기장수 설화’로 영상 작업을 진행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영웅의 출현을 기다렸지만 막상 평범하지 않은 비범한 존재의 등장에 겁을 먹거나 특이하다는 이유로 몰살시킨다. 아기장수 이야기를 현대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우리는 ‘다름’을 무서워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튀어 보이는 것을 꺼리고 우리와 달라 보이는 사람을 반가워하지 않거나 더 심하게는 차별한다. ‘다름’은 인종일 수도, 성정체성일 수도, 취향일 수도 있다.
나는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 머물며 스스로를 새로운 환경에 노출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 현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로서 사회와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 모두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고, 모두가 직접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혼자 작업하기보다는 다른 예술가, 기술자들과 협업하고 시민들과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해보고 싶다.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 발전하고 변화하는 작가가 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

《Emergent Vision》, Safehouse, 런던, 영국, 2020
불협화음 오케스트라, 우퍼 스피커, 변형된 목소리, 물, 페트리 접시, 가변설치, 2020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작가정보 : www.linaaa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