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감수성을 탐구하다: 『인천이라는 지도를 들고』(양진채, 2021)

인천의 감수성을 탐구하다『인천이라는 지도를 들고』(양진채, 2021)

선우은실

『인천이라는 지도를 들고』(양진채, 2021)는 인천을 다룬 소설들을 소개하는 형식의 산문집이다. 중구, 서구, 송도, 송림동, 소래포구, 차이나타운 등 지역사는 물론이고, 협궤열차, 공장 일대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등 한 시대를 상징하는 (지금은 사라진) 문물이나 사건을 다룬다. 이렇듯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인천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중심으로 근현대라는 시간성을 두루 다루고 있어 인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인천+문학+사(史)의 개론서로 추천할 만하다. 또한, 매 편의 산문에서 인천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묻어나 있기에 장소에 대한 애착 또는 애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책에 대해 무어라 소개하면 좋을까 고민한 끝에 인천 지역사 전반에 대해 말하는 대신 한 명의 독자로서 내게 인천이 어떤 도시인지 이야기해보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작가가 애정을 가지고 인천에 대한 소설들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의 기획을 고려하면 이러한 후기야말로 이 책에 대한 그리고 인천에 대한 리뷰가 되리라 생각한다.

인천에 별 관심이 없거나 인천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도 더러 있는 사이에서 나는 인천을 조금 각별하게 느낀다. 이 각별함은 애착과는 조금 다르다. 유년기에 잠깐 인천에 머무른 사실이 있기는 해도 그렇게 애정을 가질만한 기억은 없었고, 이사를 간 이후 인천에 자주 걸음 할 일이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천에 대한 각별함은 오히려 인천 바깥에서 인천에 드나들면서 서서히 생겨났다. 특히 인천으로 이어지는 시대 변화의 한 상징이라 할 수 있을 수인선 개통은 인천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끔 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인천 인근 경기도 지역에서 인천 소재의 대학으로 통학했던 나는 재학 중 수인선이 개통되면서 나름대로 수인선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단순히 학교만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 인천의 여러 곳에 대한 접근성도 좋아지면서 문화 활동의 영역이 넓어진 것도 수혜 중 하나였다. 송도 신도시에 위치한 프리미엄 아웃렛이나 동춘역 스퀘어원 등을 비교적 가까운 거리의 쇼핑 장소로 선택할 수 있었고, 근대문학관과 자유공원, 차이나타운, 신포시장, 공업 바다가 보이는 동인천 인근도 언제든 갈 수 있었다. 수인선을 타고 신(新) 인천과 구(舊) 인천을 오가면서 한 도시 안에 구축되어 있는 현대/근대의 감수성 격차에 매력을 느끼게 된 셈이다.
이 감수성의 격차야말로 내가 인천에 가지는 각별함의 정체일 텐데, 이는 궁극적으로 수인선의 역사성 자체와도 무관하지 않다. 내가 오늘날 수인선 이용객이라는 사실은 『인천이라는 지도를 들고』에서 언급되는 과거 수인선 ‘협궤열차’와의 감수성의 이원성을 발생시킨다. 이른바 ‘과거인 동시에 현재’라는 서로 다른 시간의 포개짐이다. 협궤열차와 관련된 구절을 읽을 때 그것은 그저 옛것처럼 느껴지지만, 포스트-협궤열차(현대판 협궤열차 정도로 번역해볼 수 있을까?)라 할 수 있을 수인선을 타고 2021년의 나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한다. 오늘날의 수인선 자체가 과거 협궤열차로 상징되는 도시의 근대성을 강력하게 소환한다. 그렇다면 내가 매혹되는 감수성의 격차란 근대와 현대를 잇는, 경험해 본 적 없는 과거의 현재적 구현에서 발생되는 셈이다.
이는 최근 몇 년간 급격하게 부상한 이 시대 청년들의 하나의 문화적 감수성으로서의 ‘뉴트로’(newtro. new와 retro의 합성어로 신복고新復古라 번역된다)의 감수성과도 다소간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이른바 IMF 키즈(IMF에 유년~청소년기를 보낸 세대) 및 그 이후 경제 불황 시대에 태어난 이들에게 부유한 시절의 감각은 없다. 멀게는 1900년대 초 근대화, 가깝게는 80~90년대의 경제 호황기 시절 도시화는 ‘호황’에 대한 구체적 감각을 가져볼 새 없었던 청년 세대에게 뉴트로로 재현됨으로써 그야말로 가져본 적 없는 낭만을 향유케 한다. 물론 오늘날의 뉴트로는 서울 중심주의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는 않아서 단순한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세련된 과거로의 복귀’고, 그런 점에서 개항기 항구 도시보다는 송도 신도시와 같은 ‘신’ 감각을 더 좇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사이에서 더 먼 과거를 품고 있는 개항기 항구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중요한 점은 인천이 지닌 도시성이 이러한 세대 감수성을 설명케 하는 하나의 참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에서 조금 멀어졌지만 이런 식의 확장이 ‘인천’에 대해 소통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인천이라는 지도를 들고』를 읽고 여러 독자들이 인천에 대한 자신의 감수성을 떠올려 볼 수 있다면 인천에 대한 지역 정보를 제공받는 것 이상으로 값진 독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이 여러 독자에게 각각의 개인이 지닌 인천의 도시성을 탐문케 하고 인천에 대한 감수성을 그러모으는 한 장의 ‘지도’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선우은실(鮮于銀實, Sunwoo Eunsil)

인하대학교에서 한국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서사 구조로 논문을 썼다.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문학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