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예술가 김주리

김주리는 자연 요소의 물질적 속성이 상호 관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멸의 은유를 포착해 물질의 순환과 그 안에서 일시적으로 머무는 시간 경험을 조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모습 某濕 Wet Matter》(송은아트스페이스, 2020), 《일기(一期)생멸(生滅)》(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2017) 등의 개인전과 《Breaking Ground》(자와르 칼라 켄트라, 인도, 2018) 등 국내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0년 제10회 송은미술대상전 대상, 2012년 소버린 아시안 아트 프라이즈를 수상했으며,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미술관, 중국 허난 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모습 某濕 Wet Matter(젖은 흙, 혼합재료, 연필나무향, 505×208×240cm, 2020)

# Q&A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내게 물과 흙이라는 물질은 단순 재료가 아니라 매개체로서, 질료 자체가 가진 미학적 의미를 작업으로 형상화해왔다. 우연히 점토 덩어리가 물통에 담겨 해체되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이 순간의 경험은 내게 물질과 시간,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작업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가벼운 풍자나 냉소주의도 아니고, 사회 현실에 대한 관념주의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접근과도 차이가 있다. 단순한 동병상련, 연민과도 다르다.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렇다’는 것이다. 마치 사람은 흙으로 빚어져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머물러있지 않고 일시적이거나 변해가는 과정에서 작업의 메시지가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찰나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내는 좀 더 큰 단위의 시간을 탐색하고, 그것을 작업에 반영하고자 한다. 물질을 작업의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원초적인 원소가 가지는 힘과 그에 파생되는 상상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물과 흙, 빛, 소리, 불 등의 매체가 지닌 물질적인 메타포와 시간성을 탐구하는 일은 내게는 지속적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모습 某濕 Wet Matter2(젖은 흙, 혼합재료, 연필나무향, 505×208×240cm, 2020) 표면 질료의 디테일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개인전 《모습 某濕 Wet Matter》(송은아트스페이스, 2020)을 꼽을 수 있겠다. 전시 제목 “모습”은 겉으로 나타난 모양이라는 의미와 젖어있는 상태의 어떤 물질(某濕)을 가리킨다. 문제적 상황의 다층적인 의미를 포함한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다중적 오브제가 자아내는 감각을 통해 흙과 물이 지닌 생명의 감각을 체현할 수 있는 형태로 전시를 구성했다. 젖어있는 상태로 유지되는 ‘젖은 흙’은 중국 단동의 압록강 하구 습지 풍경을 모티브로 삼았다. 작품의 거대한 크기는 대상을 한 번에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는 이를 통해 빛과 색, 질감과 냄새, 소리, 온도, 무게감과 같은 부분적 감각을 활용하여 보이는 것 너머를 감지하는 시지각적 경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했다.

모습 某濕 Wet Matter1(젖은 흙, 혼합재료, 연필나무향, 610×160×680cm, 2020)

전작 <휘경; 揮景>(2011-2017) 시리즈에서는 흙으로 빚은 인체와 건축물에 물을 부어 형상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통해 구축과 훼손에 관한 사회적 맥락과 근원적인 질료의 순환을 이야기했고, <일기(一期)생멸(生滅)>(2017)을 통해 빛과 소리, 냄새, 습도 등의 공감각적인 체험이 가능한 인공 풍경을 조성하여 작업 영역의 확장을 꾀했다.

일기(一期)생멸(生滅)Ⅰ(대부도 흙, 물, 검은 잉크, 들쑥, 백묘국, LED, 목재, 파동기, 흙이 물과 만날 때의 사운드, 타이머, 가변크기, 2017) 일기생멸Ⅰ(계단부분)(흙, 물, 계단에 중력에 의해 흐르게 설치, 가변크기, 2017)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A. 낯선 곳을 여행할 때, 산책을 하거나 영화를 볼 때, 지인과 대화를 나눌 때와 같은 찰나의 경험과 환기의 순간이 그리고 장소와 환경으로부터 받는 에너지가 작업의 초기 단서가 되기도 한다. 2016년 프랑스의 지방 소도시를 여행하며 인상에 남았던 식물을 서울의 길거리에서도 우연히 보게 되었고, 조사 끝에 식물의 이름이 ‘백묘국’이라는 것과 햇빛을 받으면 잎의 색이 하얗게 질리며 생생해지는 반면, 습기가 많은 곳에서 죽어갈 때는 초록빛의 색으로 물든다는 아이러니한 특징을 알게 되었다. 백묘국은 <일기생멸>(2017) 작업에 중요 모티브가 되었다. 그 무렵 작업을 위해 머물던 대부도의 환경 역시 작업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2017년에는 영국과 인도에서 연이어 작업하면서 경험한 기후로 인한 열기, 불에 대한 단상 등은 오랫동안 생각해온 자연의 원소이자 물리적 대상인 ‘불’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직접 가마에 장작으로 불을 때본 경험은 흙과 물, 불과 땅에 대한 고민을 작업으로 연결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일기(一期)생멸(生滅)Ⅲ(대부도 흙, 물, 검은 잉크, 들쑥, 백묘국, LED, 파동기, 사운드, 타이머, 가변크기, 2017)
일기(一期)생멸(生滅)Ⅰ(덩쿨 부분, 2017) 재배중인 백묘국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나는 창작자이자 관람자 그리고 이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있는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작업이 어떤 메시지로 남을 수 있을지, 나와 내 주변 나아가 사회의 어떤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해오고 있다. 내 작업의 특성상 전시 공간과 작품의 긴밀성, 관객의 시선과 동선, 대상과 마주했을 때의 몸의 감각과 내재된 기억은 작품의 이해와 소통을 돕는 큰 요소들이다. 전시공간에 일시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을 감각하고 향유하는 관객의 경험이 있을 때 비로소 작업이 완성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동안 관객의 몸에 어떻게 감각되고 기억되는가는 작업의 방향을 결정지을 때 큰 부분을 차지한다. 작업의 주요 언어로 작동하는 자연의 미디어는 인간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원소로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분모가 된다.

Evanescent Landscape – Falcon Pottery(흙, 물, 244×108×53cm, 2017)
영국 세라믹 비엔날레 《Place and Practices》 전시 전경(스포드 공장, 스토크온트렌트, 영국, 2017)

Q.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최근에는 공간 설치 위주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품과 공간이 상호작용하며 생성되는 에너지는 공간의 특이성과 함께 극대화되기도 하고 공간적 제약이 따를 때도 많다. 이러한 공간 특정적인 작업은 전시 이후 발생되는 변형 또는 폐기에 대한 고민이 따른다. 무엇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반복의 순환과 좀 더 긴 시간 동안 유지되는 예술 작업과의 변별성에 관한 실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나는 스스로 긴 호흡을 갖고 작업에 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속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동력과 에너지를 잃지 않고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호흡의 강도와 깊이를 조절해가며 곡괭이 같은 작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Landscape-scene03 (디테일)(흙, 물, 360×360×55cm, 2015) 휘경;揮景-h07(흙, 물, 70×70×36cm, 2012)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글/사진: 김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