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해양문화가 필요하다

인천에 해양문화가 필요하다

권기영

해양 패권 경쟁의 시대해양을 지배하는 세력이 진정으로 세계 질서를 주도한다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항해 시대’로부터 시작된 근대 유럽의 해양 패권 경쟁은 곧 세계 패권과 직결되었고, 이는 21세기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격화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 역시 크게 보면 21세기판 해양 패권 경쟁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2010년 G2 국가로 부상한 중국은 곧바로 ‘해양’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12년 후진타오 주석은 ‘해양강국’을 새로운 국가전략 목표로 설정했고, 2013년 시진핑 주석이 제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에서 ‘일로(One road)’는 바로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즉 새로운 바닷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미‧중 갈등의 본질은 냉전 시기 미국이 구축했던 해양 봉쇄망을 어떻게든 뚫고 나오려는 중국의 대외전략과 대중국 해양 봉쇄망을 더욱 강고히 함으로써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세계전략이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문제는 현재 동아시아 지역이 이러한 해양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놓여있다는 것이고, 그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작금의 해양 패권 경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인천의 미래 가치는 바다에 있다2017년 문재인 정부는 국가 발전 전략으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환황해 경제벨트’는 수도권, 개성공단, 평양, 남포, 신의주를 하나로 연결하는 서해안 산업ㆍ물류ㆍ교통 벨트를 만들고, 여기에 중국의 도시들을 연결하는 환황해 물류망을 구축하자는 구상이며, ‘접경지역 평화벨트’는 한강 하구부터 DMZ를 가로지르는 접경지역을 생태ㆍ환경ㆍ평화ㆍ관광 벨트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환황해 경제벨트와 접경지역 평화벨트의 교차점이자 핵심 거점이 바로 인천이다. 말하자면 황해를 중심으로 남한ㆍ북한ㆍ중국을 아우르는 경제 공동체 및 평화생명 공동체를 지향하는 동북아시아 미래 비전의 중심에 인천이 자리하고 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출처: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출처: 인천뉴스, 2018.1.4.)

또한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은 향후 아세안(ASEAN) 국가들과의 협력에 중점을 둔 이른바 ‘신남방 정책’도 발표했다. 흥미로운 점은 ‘신남방 정책’의 대상 국가에는 아세안 10개국과 함께 인도가 포함되어 있고, 이 노선은 바로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의 핵심 노선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은 21세기 새로운 세계 패권 경쟁의 핵심지역으로 부상하고 있고, 따라서 이 지역에서의 해양 경쟁력 강화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이러한 대내외적 환경 변화 속에서 인천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21세기 해양 패권 경쟁에 뛰어든 중국에 대한 대응, 남북 평화와 상생 번영, 아세안 및 인도와의 협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인천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역할을 새롭게 부여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해양도시’ 인천에 주어진 숙명이자 과제라고 생각한다.

해양 중심 사고로의 전환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그러나 그동안 바다를 적극적으로 사고하지 않았다. 해양 정책을 총괄하는 해양수산부도 정권의 변화에 따라 부침을 거듭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은 우리나라 해양 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해로 기억될 만하다. 2020년 2월 18일 「해양교육 및 해양문화의 활성화에 관한 법률(해양교육문화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같은 날 「해양치유자원법」도 통과되었다. 이 외에도 「섬 발전 촉진법」, 「해양공간계획법」, 「해양폐기물관리법」 등 해양과 관련된 일련의 법률이 제정ㆍ개정되었으며, 대부분 올해부터 시행된다. 무엇보다 「해양교육문화법」은 국가의 해양역량이 사회발전 및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를 위해서 해양에 대한 국민의 인식개선과 인재양성, 그리고 해양문화 창달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거꾸로 보는 세계지도(출처: 해양수산부)

그리고 국회와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들도 신속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2020년 7월 경북 울진에는 ‘국립해양과학관’이 개관했고, 상주시는 2022년까지 140억 원을 투입해 ‘청소년 해양교육원’ 건립을 확정했다. 경상북도는 경주에서 <해양문화포럼>을 개최하고 ‘환동해를 해양 문화ㆍ교육의 메카’로 만들자고 제안했으며, 포항시는 ‘환동해 중심 해양문화관광도시’를 표방하고 나섰다. 사천시는 한려해상국립공원과 ‘해양생태체험교육센터’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도 맺었다. 완도군은 ‘해양치유산업 전략과제 보고회’를 개최하고, 11월에는 (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과 향후 해양바이오산업과 연계한 남북교류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물론 부산은 언제나 그렇듯 해양수도를 자처한다.

바다를 등진 해양도시, 인천그런데 이쯤 되면 우리나라 제2의 항구도시 인천의 행보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인천은 해양도시로서의 전략적 가치 혹은 지정학적 중요성뿐만 아니라 섬, 갯벌, 해수욕장, 해양생태계보호구역, 습지보호지역, 국가지질공원 등 풍부한 해양자연자원과 다채로운 해양문화자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도시의 규모, 인구, 경제력과 함께 수도권이라는 거대 시장에의 접근성, 무엇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공항과 항만을 보유하고 있는 인천의 인프라는 타지역과 비교할 수 없는 강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해양의 시대를 맞아 인천의 잠재력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인천은 정부, 시민, 학계, 문화예술계를 불문하고 ‘바다’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동안 인천의 바다에 대한 관심은 주로 항만ㆍ물류 분야에 집중되었고, 도시 개발은 대체로 ‘바다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도시의 미래 비전을 설계할 때도 ‘바다’는 중심 키워드가 아니었다. 더구나 「해양교육문화법」의 시행에도 인천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심지어 필자가 대학교에서 만난 학생들도 ‘바다’는 자신들의 삶과 경험에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 않고, 또 향후 진로나 취업을 생각하면서도 ‘바다’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인천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해양도시가 바다를 외면하고 있다.
진정한 해양강국은 해양의 경제적ㆍ군사적 강국만이 아니라 전면적이고 종합적인 ‘해양문화’의 강국이어야 한다. 해양도시 역시 마찬가지다. ‘해양문화’는 해양도시를 실현하기 위한 기초이자 토대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목표라는 점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인천의 해양문화’ 만들기에 인천의 문화예술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인천이야말로 진정으로 ‘해양문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권기영(權基永, Kwon Ki young)

ㅇ 현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ㅇ 현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지역문화연구소 소장
ㅇ 한국콘텐츠진흥원 중국사무소장 역임(2001~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