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얼 PARK Earl

박얼은 홍익대학교에서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인터랙션 디자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새로운 매체를 위한 디자인을 해오다가 근본적으로 뉴미디어를 구성하는 재료와 기술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기계에 대해 느끼는 개인적 친밀감을 바탕으로 인간과 기계간의 다양한 관계를 탐구하고 있으며, ‘기계적’, 그리고 ‘인간적’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관습적 한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경계를 확장하며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는 개념과의 연결을 시도한다. 그의 작품에서 기계는 다른 미디어를 창출하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주체로서 자리한다.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 각인, 180×180×10cm, 로봇 2종(카메라, 센서, 전자부품 및 리튬 폴리머 배터리 포함), 나무, 2017

# Q&A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시대의 다양한 기술을 활용하여 기계를 만들고, 그 기계를 통해 인간의 특질들을 모방하거나 이율배반적인 개념들을 연결해 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작품은 주로 키네틱(Kinetic)이나 로보틱(Robotic) 요소가 많이 드러난다. 구체적인 작업으로는 관람객의 심장 소리를 실시간으로 들려주는 로봇 <콩닥군>(2011)이나 인간의 신경증과 같은 비합리적 행동을 합리적 알고리듬으로 모사하는 로봇인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2017) 시리즈, 인간다운 걷기 행위를 기계적 메커니즘으로 구현한 <The Walking Man> 시리즈, 구도자의 모습으로 고려대장경을 새기는 로봇 <PITAKA>(2015), 그리고 레이저들이 만들어 내는 움직이는 삼각형의 조합과 사운드를 통해 새로운 감각을 체험하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Try Triangle>(2018) 등이 있다.
오래 전 일이지만 대학교 졸업 작품을 만들 때 시간의 레이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해보고자 시도한 적이 있었다. 관객의 모습을 시간 순으로 디스플레이에 겹쳐서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 당시 투명 디스플레이가 없었기 때문에 구현하기 쉽지 않았다. 방법을 찾다가 결국 컴퓨터 모니터를 몇 개를 뜯고 분해하고 고치고 하길 반복해보니, 투명도가 어느 정도는 확보되는 디스플레이어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일종의 하드웨어 해킹이었는데 필요에 의해 그 과정을 넘어 전자 회로를 찾아보게 되고, 기존의 제품으로는 안돼서 PCB회로기판도 만들어보며, 3D 모델링도 배우고 각기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들도 사용하게 됐다. 이상하게도 하고 싶은 작업마다 필요한 재료나 기술이 다르니, 매번 기술을 배우면서 일종의 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비슷한 프로세스를 거치게 되는 것 같다. 마냥 즐겁기만 한 프로세스는 아니나 아직까진 즐기고 있다.

콩닥군, 50x60x80cm, 인터렉티브 설치, 전자부품, 센서, 모터, 접촉식 마이크, 서브우퍼 유닛, 폴리카보네이트, 알루미늄, 2011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몇 년 전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며칠간 냄새를 맡지 못한 경험이 있다. 말 그대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엔 신기하다가, 다시 냄새를 못 맡게 되는 것 아닌가 두려운 감정을 느끼다가, 서서히 감정이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존재라는 것에 대해서도, 공포라는 감정의 근원적 이유에 대해서도, 인간성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한참을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기관과 인지작용을 통해 뇌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성하고 구축한다. 다른 생명체들이 각기가 가진 신체와 감각기관을 통해 살아가는 유형이나 생활양식이 정해지는 것처럼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화된 ‘튜링 기계(Turing Machine)’인 것은 아닌가, 기계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은 과연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 각인, 180×180×10cm, 로봇 2종(카메라, 센서, 전자부품 및 리튬 폴리머 배터리 포함), 나무, 2017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은 단순한 논리회로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를 통해 너무나 인간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신경증’과 같은 비합리적인 행동을 모방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 중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움직이는 테이블과 자신이 생각하는 영역 밖으로는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알고리듬의 트랩에 갇힌 강박증을 가진 로봇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각인>은 여러 로봇으로 구성된 작업으로 특정한 집착 대상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애착, 집착증을 가진 로봇의 행동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기계는 ‘관찰’의 대상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관객은 생물을 관찰하듯 기계의 행동을 관찰하게 되며, 그 과정 자체로 인간과 기계는 새로운 상호관계 속에 설정된다. 최근 인간 두뇌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표면적으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인간 행동에도 두뇌 신경학적으로 그 나름의 논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많은 연구들이 있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 가지고 있던 질문들이 함축되어 있는 작업이기도 하고, 앞으로 계속될 작업이기도 해서 선택하게 됐다.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 자유로부터의 도피, 90×90×110cm, 인터렉티브 설치, 로봇 1종(센서, 전자부품, PCB 및 리튬폴리머 배터리), 나무, 철, 알루미늄, 네오디뮴 자석, 2017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A. 작업의 영감은 작품마다 다르지만 여러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가 불현듯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새로운 정보들과 결합되는 것 같다. 일상에서 지나가면서 보이는 기계들의 움직임이나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새로운 물질이나 재료들을 많이 찾아보는 편이고, 다큐멘터리, 뇌과학이나 신경과학, 인지심리학 등의 정보에도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한 예로 <Try, Triangle>은 천장 모서리를 바라보며 멍하게 집중하며 생각하고 있다가 기계 구조나 방식까지 한 번에 생각이 난 작업이고, 레이저를 거울에 반사시켜 만든 움직이는 삼각형들의 조합과 입체음향 사운드를 경험하는 키네틱-오디오 설치작업으로 발전되었다. 이 작업은 ‘기계’와 ‘명상’이라는 상호 배타적인 두 개념을 연결하고, 두 개념이 유기적으로 융합되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시도이다. 관람자는 그저 공간 안에 서서 바라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공간 안에서 떠 있거나 자신이 움직이거나 다른 곳으로 빨려드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주로 동작해야 하는 작품들이 많다 보니 구상한 작업을 기술적으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실현되지 못하는 작업도 많이 있고,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작업은 펀딩을 받거나 가능한 시점까지 미뤄지곤 한다.

Try Triangle, 6×6×6m, 7채널 사운드시스템, 키네틱-사운드 설치, 9개의 3축 액추에이터 모듈, 레이저, 전반사거울, 헤이즈머신, 2018 (박얼, 사자김, 배정식)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우리는 인간과 기계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 가는 특별한 시기를 경험하고 있다. 기계들은 더 쉽게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나 인간을 도와주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실용적인 부분이나 정서적인 면에서도 유기적 관계를 형성해가고 있다. 또한, 인간의 진화과정 중 포스트 휴먼으로서 인간의 신체 또한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계와 만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기계와 상호작용할 일이 더 많아지는 시대에 인간 중심적 사고 속에서 인간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이자, 인간을 비춰보는 거울로써 기계의 가능성을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

The Walking Man, 1.2×0.65×2m, 키네틱 설치, 철 프레임, 알루미늄, 황동, 기어, 벨트, 모터, 풍선, 2016
The Walking Man II, 1.1×1.1×2m, 키네틱 설치, 철 프레임, 알루미늄, 황동, 벨트, 기어, 모터, 2018

Q.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백남준 작가는 그 시대 사용할 수 있는 온갖 매체(TV, 캠코더, 레이저, 인공위성)를 사용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늘어날수록, 그 기술 안에서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폭은 넓어진다. 앞으로 어떤 사용할 수 있는 기술적 재료들이 나올지는 알 수는 없지만 언제나 즐겁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몇 년간은 앞으로 머릿속에 있는 여러 작업을 현실에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을 것 같고, 뻔한 얘기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만의 색깔이 묻어있는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PITAKA, 6×6×6m, 뉴미디어설치, 로봇 팔, 아크릴 플레이트, 알루미늄, 철 프레임, LED, 카메라, 제어소프트웨어, 2015 (트랜스미디어랩: 김태윤, 박얼, 윤지현, 양숙현)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작가정보 : www.heartpowd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