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천국이었던 동인천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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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궁금했다. 학창시절 수많은 영화를 봤던 애관극장,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극장인 애관에 대한 다큐 영상이 왜 한 편도 없을까. (애관은 1895년 협률사로 출발해 1911년 축항사, 1924년 애관으로 개칭된 121년 된 극장이다.) 인천영상위에 계신 아는 분께 연락을 드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나처럼 애관에 관심을 갖고 촬영하려고 했던 감독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런데 왜 영상물이 없을까?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애관 측에서 촬영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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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즉시 애관극장에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전화통화도 안 되었고 소개서를 들고 찾아도 갔지만 만나주지도 않았다. 거의 포기할 뻔 했지만, 인천에 내려갈 때마다 한 번씩 찾아갔다. (아버님이 신흥동에 사신다.) 6개월쯤 찾아갔을 때 극장 운영을 맡고 계신 이사님께서 내 정성이 갸륵(?)했는지 촬영 허락을 해주셨다. 그날은 정말이지 뛸 듯이 기뻤다. 이미 영화의 반은 완성한 느낌이었다. 그 후 어느덧 1년 가까이 촬영을 하고 있다.

“분명 한때 인천의 최고 스타플레이어였던 극장들은 은퇴경기도 제대로 치르지도 못하고 무대 뒤로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굿모닝인천 유동현 편집장님의 말씀 중 몇 단어를 바꾼 말이다. 인천의 중심지였던 동인천 지역에는 애관을 비롯해 미림극장, 키네마, 동방극장, 인영극장, 인천극장, 문화극장, 인형극장, 오성극장, 현대극장, 자유극장, 장안극장, 도원극장, 시민관, 세계극장, 용사회관, 동인천극장, 항도극장, 아카데미 등등 한때 19개의 극장이 있었다. 당시 인천의 인구 수를 생각한다면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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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익동에서 태어났고 서울로 이사 가기 전까지 송현동에서 오래 살았다. 가장 많이 간 극장은 현대극장이었다. 동시개봉관이라 두 편을 싼 값에 볼 수 있었다. 영화 포스터 붙이는 아저씨를 기다리면 재수 좋게 할인권을 얻을 수도 있었다. 내가 다닌 광성고 밑에는 자유극장이 있었고, 이곳 역시 삼류 동시개봉관이었는데 항상 성인물 한 편과 다른 영화 한 편을 틀었다. 이름 그대로 우리에게 ‘자유’를 선사한 극장이었다. 오성극장은 특이하게도 양키시장 위에 세워진 극장이었다. 2층 계단으로 올라가면 조그만 분수대 같은 게 있었고 사람 말을 따라하는 구관조가 인상적이었다. 자료를 찾다가 인천시청 기록관에서 오성극장 내부 사진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지금 오성극장은 텅 비어있고 재난위험시설 D등급을 받고 언제 헐릴지 모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인형극장은 나중에 UIP직배 영화관이 되었는데 영화인들이 UIP 직배에 반대하여 서울 직배극장에 뱀을 풀어놓았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애관은 당시 최고의 극장이었다. 1980년대에 인천 최초의 70mm 영사기와 THX 음향시스템을 갖춘 극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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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 007 시리즈, ‘터미네이터’ 등등 영화를 보고나면 친구들과 한참동안 영화에 대해 수다를 떨곤 했다. 동인천 지역 극장들은 내게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분명 시네마천국이었다. 그때 본 영화들이 나를 감독의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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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 뵈었다. 최불암 선생님 선친인 최철은 인천 최초의 영화제작자로서 ‘수우(愁雨)’ (1948년작. 감독 안종화. 주연 김소영, 전택이)를 인천에서 제작하셨는데 ‘수우’ 시사회를 앞두고 갑자기 돌아가셨다. 8살 최불암은 최철의 영정사진을 들고 가족과 함께 동방극장 시사회에 참석했다. 그 후 최불암의 어머니 이명숙 여사는 동방극장 지하에서 ‘등대’라는 음악다방을 운영하셨다. 이 모든 이야기를 최불암 선생님 인터뷰를 하면서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미림극장에서 폐관 때까지 35년간 영사기사를 하신 조점용 선생님, 인천에서 촬영한 ‘사랑’ (1957년작. 감독 이강천. 주연 김진규, 허장강)의 촬영조수였던 정의배 선생님, 39년간 극장 간판을 그린 김정길 선생님 등을 만나면서 그분들의 말씀을 소중하게 기록하고 있다. 한 분을 만나면 그분이 다른 분을 소개해 주셔서 나도 미처 알지 못했던 경험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극장은 단지 외형적인 건축물이 아니라 결국 사람의 이야기인 것이다.

06다큐 작업은 끝을 모른 채 출항하는 위태로운 항해와도 같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내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1년 후면 영화를 완성하여 출연했던 모든 분들을 모시고 애관극장에서 시사회를 갖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윤기형 / CF 및 다큐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