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동네 책방을 열고 가꿔가는 소소한 이야기 – 동네책방 ‘산책’ 대표 홍지연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앞으로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 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날 예정이다. 첫 연재이므로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형식을 다듬어갈 예정이다.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동네 책방을 열고 가꿔가는 소소한 이야기
– 동네책방 ‘산책’ 대표 홍지연
서점은 국어사전에서 책을 갖추어 놓고 팔거나 사는 가게로 정의된다. 서점과 비슷한 말로는 서관, 서림, 책방 등이 있다. 클릭 한 번으로 집 앞까지 책이 배송되는 요즘, 서점은 사전 의미 그대로 ‘사고-파는’ 역할에만 충실해져 가고 있다.
인천 계양구 계산동 경인교대 인근 주택가에 자리한 서점 ‘책방 산책’은 책도 있지만, 문화가 있고, 사람이 있고, 휴식이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가 책과 사람을 만나는 동네 문화 놀이터다. 새벽 1시까지 동네 주민들이 모여서 책을 읽고, 혼자 읽기 버거운 고전을 함께 읽거나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열어 문화의 목마름을 해소하는 공간이다.
인천 토박이 홍지연(46) 대표가 단독주택 1층을 개조해 만든 책방 산책은 2016년 11월 문을 연 동네 책방이다. 동네 책방은 대규모 프랜차이즈 서점이나 참고서 판매 중심의 중소형 서점과 구분되는 개념이다. 지역 사회를 근간으로 책 문화를 만들어가는 작은 서점을 말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작은 서점이란 규모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작게, 낮게, 천천히 가려는 삶의 가치를 담은 개념”이라고 홍 대표는 설명했다.
헌책방 거리가 있는 동구 배다리에서 자란 홍지연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누가 꿈을 물으면 “마흔이 되면 헌책방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년시절부터 책과 가까이 지냈던 덕에 대학생 때는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도 했고, 직장에 다닐 때도 책을 끼고 살았다고 한다. 결혼과 출산, 육아, 퇴직으로 이어지는 흔한 ‘경단녀(경력단절여성의 줄임말)’의 삶을 살아가던 홍 대표는 진짜 마흔이 넘어서자 꿈을 이루기 위해 움직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까맣게 꿈을 잊고 있었는데 계산동으로 이사와 공동 육아를 하고, 어린이·청소년 관련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독서 모임을 하면서 꿈이 되살아 나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책방을 운영하기 위해 여기 저기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홍 대표가 책방을 열기 위해 공공기관의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했고, 가족여행 삼아 부산의 보수동 헌책방 거리 등 다른 지역의 서점을 다니면서 준비했다. 그런데 정작 다른 동네 책방 주인들이 이런 홍 대표를 말렸다. ‘꿈과 현실은 다르다고.’
홍 대표는 청소년 전문 서점을 열고 싶었다. 어린이·청소년 책이 주류를 이뤘으나 학부모들을 위한 책도 들여 놓고 하다 보니 소설과 비문학 등도 서가를 채우기 시작했고,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문을 열고 1년 반 동안은 너무 힘들었죠. 문을 닫으려고 했을 정도니까요. 사람들이 이렇게 책을 안 읽는지 몰랐어요. 책방 산책이라는 이름도 원래는 서가를 거닐면서 조용히 산책하는 모습을 상상해 지은 이름인데 어린이들이 오면서 북적북적 해지고, 이게 책방인지 놀이터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였어요.”
홍 대표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생각을 바꿨다. 책방에 손님이 맞추는 게 아니라 책방이 손님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동네 책방의 취지와도 맞는 것이었다. 과연 이 동네에서 책방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로 했다. 온라인 주문에 익숙해 오랫동안 서점을 떠났던 사람들에게 왜 서점이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것이 먼저였다.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서점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는데 현실을 보니까 요즘 아이들은 택배 아저씨들이 책을 만들어서 오는 줄 알더라고요. 도서관에도 책은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역할을 해야 좋을지 몰라 1년 6개월 동안은 상당히 많이 고전했어요.”
때마침 비슷한 방식으로 서점을 운영하는 책방 지기들이 모여 만든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가 구성됐다. 홍 대표도 여기에 참여해 이런 저런 사정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인천지역에서도 별도의 모임을 만들어 동네 책장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홍 대표는 책을 매개로 하는 다양한 모임을 열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동네에 거주하는 역사 선생님을 초청해 연 강의다. 국정 교과서 이슈를 시작으로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나눴고, 학생과 학부모 반응이 나름 괜찮았다. 다음은 고전에 대한 열망은 있으나 혼자서는 도저히 완독하기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고전 낭독클럽을 열었다. 출판사와 협업해 ‘열하일기’를 10주 가량 낭독했는데 20여 명이나 참여했다.
“열하일기를 낭독하는 날 하필 천정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던 적이 있었는데 한 명이라도 오면 행사를 열자는 생각이었지만, 참석자들이 옷이 흠뻑 젖은 채로 와서 앉지도 못하고 서서 읽었던 기억이 나요. 우리 동네는 맞벌이 부부가 많아서 주로 야간까지 문을 열고, 주말에도 행사를 했어요.”
책방 산책의 최대 히트작은 ‘심야 책방’ 프로그램이다. 여름 밤 무더위에 잠도 오지 않고, 집집 마다 에어컨을 틀어놓을 필요 없이 서점에서 책을 읽을 자리를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집에서 책을 가져와도 되고, 서점에서 책을 사서 읽어도 되는 방식이다. 원래 밤 11시까지 열려고 했는데 참가자들이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 아이들만 먼저 집으로 들여보내고, 새벽 1시까지 운영시간을 연장하기도 했다.
“사실 작가와의 만남도 좋지만, 스스로 책을 읽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아이들이 엄마랑 아빠랑 같이 책을 읽는 재미도 느끼고, 서로 이 책을 왜 선정했는지와 읽고 나서 느낀 소감 등을 나누는 소통의 자리가 되기도 했어요.”
책방 산책은 올해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지만, 예기치 않은 코로나19 사태로 운영에 차질을 빚었다. 온라인 프로그램 등 다양한 대안을 마련 중이지만, 어려움이 예상된다. 동네 문화공간으로 자리했지만, 서점 본연의 기능인 책 판매가 없이는 운영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재고 도서 등의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는 도서정가제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동네 책방의 경쟁력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현금 할인 10%와 마일리지 적립 5%까지만 허용하고 있는데 할인율이 높아지면 온라인·대형 서점과의 할인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진다.
“책이 덤핑과 할인으로 각인돼버리고, ‘적정가’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게 되면 우리 같은 동네 책방은 고사할지도 몰라요. 이미 온라인 서점의 무료배송이 사실상 할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후퇴하게 되는 셈이에요. 책은 옷과 신발 보다 종류가 많아요. 박리다매로 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서점 뿐 아니라 출판업계도 타격이 클 거에요.”
홍지연씨의 목표는 책방산책 2호점을 내는 것이다. 지금은 주택가에 있지만, 인근의 경인교대 학생들을 위한 작은 서점을 내고 싶다고 한다. 코로나19로 비어 있는 캠퍼스에 다시 새내기들이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지금 책방은 주민들의 놀이터로 남겨두고, 교대 앞으로 가서 청년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청년들이 책을 읽고 꿈을 키우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는 동네 책방 운영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기존의 독자를 나눠 갖는 게 아니라 독자를 확장해 나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운영한다면 동네 책방의 역할도 크다고 생각해요. 저도 경험 했듯이 동네 책방을 운영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만류가 심할 테지만, 꼭 혼자가 아니어도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오프라인 서점에는 온라인 서점이 AI로 취향을 분석해서 책을 추천하는 것과 달리 책과의 만남이 있습니다. 책을 읽지 않아도 들춰보는 것부터가 시작이니까요.”
책방 산책은 인천 계양구 계산동 향교로 5번길 23에 있다. 인천지하철 1호선 경인교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린다. 동네책방이 궁금하신 분들의 방문을 권한다.
1) <경인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