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사 철거 3년, 무엇이 달라졌는가
애경사 철거 3년, 무엇이 달라졌는가
배 성 수(인천광역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
2017년 6월 2일 오전, 지은 지 얼추 80년 가까이 된 애경사 건물이 완전히 철거되었다. 1911년 일본인 사업가 오오타 슌타[太田駿太]가 송월동 철로 변에 설립한 애경사는 일제강점기 양초와 비누 생산으로 유명했던 공장이었다. 광복 후 적산기업이 되어 한국인 이득우가 잠시 관리를 맡았다가, 6.25전쟁 직후인 1954년 채몽인이 인수하여 애경유지공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1960년대 초 애경유지 채몽인 사장은 비누 생산시설을 서울 구로동으로 이전하면서 송월동 공장을 매각했다. 그 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지만 1930년대 지어진 붉은 벽돌 공장 건물은 외형을 유지한 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애경사 철거가 인천 지역사회에 미친 반향은 작지 않았다. 철거를 단행한 주체가 근대문화유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관할 구청이었고, 철거 목적이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 조성 때문이라는 점에서 시민단체와 학계는 크게 반발했고, 언론은 연일 이 내용을 보도했다. 그제서야 인천시는 근대건축물의 보존과 활용 방안 논의를 위해 민관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인천시가 구성하겠다던 민관전문가협의회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성되지 않은 상황이다. 또, 그와는 별도로 2015년 제정된 「인천광역시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조례」에 근거하여 근대 건축자산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하고, 2018년 5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총 2억 7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기초조사를 실시했다. 인천연구원과 인하대 산학협력단이 공동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모두 492개의 건축물이 건축 자산으로 선정되었고, 인천시는 앞으로 492개 건축 자산에 대한 세부조사를 실시하고 보존 및 활용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인천시의 이러한 계획은 장소성과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인천 근현대 건축 자산의 실태를 파악하고 향후 무분별한 철거를 막아 보자는 의도에서 수립된 것이다. 그럼에도 애경사 철거 이후 지난 3년 동안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 철거는 거듭되어 왔다. 2018년 민주화운동의 성지였던 답동 카톨릭 회관 철거를 시작으로 목선의 배 못을 만들던 만석동 신일철공소,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상징이던 부평동 미쯔비씨 공장 사택 등 역사적 의미를 담보하고 있던 건축물이 해마다 무너져 내렸다. 최근에는 송림동, 신흥동 지역에서 원도심 도시정비 사업을 명목으로 근현대 인천 사람의 생활 터전이었던 공간 자체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청천동과 율목동 등에서도 재개발 사업이 예정되어 있어 이와 같은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근현대 건축자산 전수조사’가 마무리된 작년 11월 이후에도 역사성을 갖는 근현대 건축물이 계속해서 철거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 근현대 인천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신흥동 정미공장 건물 중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오쿠다 정미소 건물이 철거되었다. 근현대 건축자산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민간 소유의 건물이라 철거를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이 인천시의 입장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노숙자들의 갱생시설로 지어진 내동의 직업소개소 및 공동숙박소도 지난 4월 철거되었다. 이 건물은 ‘근현대 건축자산 전수조사’에서 아예 누락된 것이었다. 철거 소식이 민간에 의해 전해졌고, 관할 구청은 철거 이후에야 상황을 인지할 정도로 관심 밖에 있었다. 결국 애경사 철거가 근대유산 보존에 대해 지역사회의 큰 관심을 불러왔고 인천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에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셈이다.
2년 가까이 추진된 근현대 건축자산 전수조사는 인천시가 애경사 철거와 같은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수립한 대책이다. 그럼에도 민간 소유 또는 재개발 사업지구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철거를 막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3억 원 가까이 되는 예산을 들여 추진한 건축자산 전수조사가 근현대 건축물 철거에 아무런 보호 장치도 되지 못할 뿐더러 조사 자체도 부실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반복되는 근현대 건축물 철거에 견주어 볼 때 인천시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긴 했으나, 제대로 고치지 못해 계속해서 소를 잃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라도 원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살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낡고 불편한 건물을 헐고, 번듯하고 멋진 새 건물을 짓는 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낡은 건물이 새로 지은 건물보다 훨씬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인천시가 2년간 공들여 추진한 전수조사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전수조사에 이은 심층조사도 계속 되어야 할 것이며, 근현대 건축물을 소유하고 있는 시민이 헐고 새로 짓는 것보다 고쳐 쓰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욱 가치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시늉만 하다 다시 소를 잃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철거 전 애경사 건물 ⓒ유동현 |
2017년 6월 철거되고 있는 애경사 ⓒ민운기 |
2020년 4월 신흥동 오쿠다정미소 철거 현장 ⓒ조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