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의 당연한 생각이 불러온 보안법 위반! 징역 6개월!!!
평범한 사람의 당연한 생각이 불러온 보안법 위반! 징역 6개월!!!
김락기(인천문화재단 정책협력실 차장)
1941년 시점에 현재의 중구 용동(龍洞)에 살던 오쾌근(吳快根)이란 사람이 있었다. 1916년 1월 10일생으로 1931년에 경성에서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학업을 마친 후 10대 중반부터 경성 의 제20사단 장교 숙소, 신의주 수비대, 평안북도 창성군 수비대 등 조선 주둔 일본군 부대에서 허드렛일을 했으며 조선증권거래소에서도 인부로 일했다고 한다.
20대 중반이 된 1940년 가을에 건강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부모가 계시는 인천 용운정(龍雲町)으로 와 쉬면서 여동생까지 4인이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는 일이 생긴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현재의 중구 경동(京洞)인 경정(京町) 196번지의 찻집 ‘파로네’였다. 1941년 3월 2일부터 이 찻집에서 일하게 된 오노 히로코(小野弘子), 아오야마 케이코(靑山桂子)란 가명을 쓰는 두 명의 조선 여성이 있었다. 이들이 조선인이지만 일본어가 능숙해서 일본어로 손님을 응대하는 것을 오쾌근이 불쾌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3월 5일이나 6일 오후 6시에 파로네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계속 일본어를 쓰는 종업원과 손님 여러 명 앞에서 ‘오늘날 조선을 애석하게 생각하지도 않는가! 조선인으로 조선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건방진 일이고 일본어를 쓰는 것은 유쾌하지 않으니 지금부터는 일본어를 절대로 쓰지 마라’는 취지로 소리쳤다고 한다. 한번이 아니라 4월 상순에도 여러 차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또 3월 14일 정오경에 인근 경정 168번에 있는 아사히 이발소[朝日理髮店]에 가서 그곳 종업원인 마쓰하라(松原)와 쯔키모토(月本)에게 ‘파로네 종업원은 조선사람인데도 일본어를 쓰니 불쾌하다. 오늘날과 같은 조선을 애석하게 생각하지도 않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선일체(內鮮一體)니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니 하는 약간은 추상적 구호에서 1940년 2월에 창씨개명(創氏改名)이라는 실질적 조치까지 도입하는 등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일본의 강압통치가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이니 어쩌면 해프닝일 수도 있는 오쾌근의 이런 언사를 그냥 넘어갈리 없었다. 찻집 파로네나 아사히 이발소 종업원, 또는 찻집 손님 중 누군가가 신고했을 것이다.
1941년 8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 결과 “정치에 관해 불온한 언동을 하며 치안을 방해한 자”라는 규정 속에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2년 2월 28일까지 꼬박 6개월을 서대문형무소에서 보냈다.
오쾌근은 특정한 사상과 입장에 기반한 항일의지를 가진 투사라기보다는, 또 많은 공부를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키워 온 지식인이라기보다, 식민지 조선에서 어쩌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던 평범한 청년이라 보는 게 옳다. 그런 평범한 청년의 입에서 조선사람에게 조선어를 쓰지 못하게 하는 일제의 정책에 대한 반발이 나온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하지 않을까?
1937년 중일전쟁(中日戰爭) 이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압적이고 지속적인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만주의 항일독립군은 소규모로 분산해 생존을 도모하는 게 우선이었다. 국내의 항일투사들은 지하로 깊숙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항일투사들에 대한 일제의 회유도 한층 고도화되어서 ‘시국대응 전조선 사상보국연맹’과 같은 전향자 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오쾌근과 같은 평범한 사람 입에서 왜 조선사람이 조선어를 못쓰는가라는 지극히 당연한 물음이 나온 것이다.
도저히 활발하게 일제에 맞서 싸울 수 없었던 1940년 초에 이런 작지만 의미있는 행동들이 은근한 조선의 저력을 보여줬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에 처해진 오쾌근은 일제가 갖는 두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게 한 인물이 아닐까 한다.
<이 글은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의 『인천역사통신』2020년 봄호(2020.03)에 실렸던 것을 옮긴 것입니다>
그림 1.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의 오쾌근 앞면 |
그림 2.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의 오쾌근 뒷면 |
그림 3. 오쾌근 재판기록(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