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이종구, 그의 작품 세계와 인터뷰 <붉은 뺨을 가진 화가의 이콘>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 ver 3. 이종구
붉은 뺨을 가진 화가의 이콘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의 시작을 여는 기획전시로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이 12월 20일부터 2020년 5월 6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들 중 인천 연고를 가진 중견작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로 참여 작가 각자의 작품 세계관을 살펴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3월부터 5월까지 매월 2명씩 참여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글을 만나본다.

이종구, <세월-편지>, Acrylic on paper, 97×130cm, 2018

붉은 뺨을 가진 화가의 이콘

바다는 추웠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온 도시를 깡그리 얼려버렸다. 한참이나 남쪽에서 북쪽으로 다시 서쪽으로 길잡이를 하며 이종구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가는 길의 바람은 시려웠다. 손과 발이, 코끝이. 5년 전 그 해 우리를 짐승의 시간과 대면케 한 단원고 2학년 324명 아이들의 얼굴을 만나러 가는 길의 심경이란 그저 바다 속은 따뜻하기를 염불처럼 외는 것뿐이었다.

얼굴은 이종구 작가 화업의 본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1984년 시작한 <오지리 사람들> 연작의 첫 작품은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서 평생을 땅에 파묻혀 사는 아버지와 숙부, 동생과 장씨, 안씨 등 마을 사람들의 얼굴은 근대 이후 복고와 향수의 대상으로만 취급해 온 농민들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에서 이종구 작가가 일으킨 미술사적 성취였다.
특히 캔버스가 아닌 부대종이에 그려진 농민의 얼굴은 그들의 일생을 증언하는 강력한 오브제로 기능하였다. 화가의 미학이 아닌 농촌의 현실을 환기시키기 위해 선택한 부대종이처럼 그는 1990년《오지리 사람들》전시를 현실과 유리된 화이트큐브가 아닌 가을 운동회가 열리는 축제날 오지초등학교에서 개최한다.
이후에도 그는 2003년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반전평화전시《주인을 찾습니다》전, 구제역 파동으로 희생된 돼지들을 위한 진혼 퍼포먼스(2005), 2006년 평택 대추리 현장미술의 <내 땅에서 농사짓고 싶다> 마을벽화 작업 등에 참여를 하며 한국사회가 그어 놓은 미술의 속물적 한계를 지워나간다. 또, 그가 주요 발기인으로 활동한 1982년 서울 ‘임술년:구만팔천구백구십이’ 와 1985년 인천 ‘지평’의 창립은 모두 리얼리즘 정신을 기반으로 세계가 처한 모순을 미술의 힘으로 돌파하려한 시도들이었다. 그가 2005년 수상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은 비단 민중미술운동만이 아닌 한국현대미술 씬에서 유폐된 리얼리즘과 실천하는 화가로서 작가에 대한 당연한 위치 지움이었다.

이종구, <봄이 왔다 1>, Acrylic on a canvas, 194×130cm, 2018
이종구, <농부>, Oil on rice bag, 95×58cm, 1985
이종구, <오지리 장씨>, Oil on rice bag paper, 110×70cm, 1990
이종구, <대추리의 기억-캠프험프리스>, Acrylic on paper, 97×130cm, 2018

그런 이종구 작가에게 세월호 아이들의 얼굴은 부활이었다. 이제껏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내던 그에게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아이들의 얼굴을 그리라는 임무는 그가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이자 신탁이었다.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바다 속의 아이들이 우리를 추운 광장으로 나오게 했고, 끝내 봄이 올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사진이나 다른 매체가 아닌 그림으로 부활시키고 싶었어요. 저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니까요.”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베로니카의 베일이나 아브가르 왕이 걸린 불치의 병을 치료해 준 예수가 땀을 닦은 아마포는 이콘(Icon)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두 가지 기원설 모두 이콘, 그리고 이미지가 신앙의 대상이 되기까지 가장 낮은 곳에서 세계를 구원하려한 이의 희생과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종구, <학교 가자, 4반-세월><학교 가자, 7반-세월>(1반~10중), Acrylic on a paper, 65×91cm, 2017

이종구 작가의 <세월호>연작은 우리시대 가장 비극적인 사건의 희생자이자 우리를 짐승의 시간에서 구원해준 어린 성자(聖者)들의 이콘이다. 그는 어린 성자들이 가라앉은 진도의 물길이 보이는 해남에서 고행하듯 그림을 그렸다. 이제는 좀 여유로워진 작업실과 집을 등지고 수백 명의 아이들의 얼굴이 종이에 드러나기만을 기원하며 면벽 수련하듯 밤낮으로 3개월 동안 그렸다. 그리고 그가 보지 못한 아이들의 얼굴은 마치 그가 바로 옆에서 보고 그린 것처럼 세계의 고통을 껴안은 그 천진한 모습을 자신들의 꿈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또, 작가는 바다 속에 가라앉은 324명 아이들의 꿈이 ‘16,894,280’개의 촛불이 되어 광장으로 내려와 우리가 겨울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봄을 열어젖힌 드라마를 거대한 빛의 서사시로 엮어내고 있다. 물론 <봄이 왔다> 연작에 등장하는 남북 정상의 맞잡은 손은 자신의 상상력이었지만 그것이 실재 현실로 와버린 순간 지나친 민족적 감상주의였다는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이종구, <광장-가족>Acrylic on a canvas, 130×244cm, 2017

붉은 뺨을 가진 짐승은 인간이다.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라는 니체의 언설이다. 중학시절 화가의 꿈을 키워 준 도시 인천에서 농촌출신 아이가 느꼈을 부끄러움, 매끈한 캔버스에 붓질을 놀리는 화가의 길에서 자꾸 눈에 밟히는 오지리 고향사람들의 척박한 현실, 그리고 아직도 인양되지 못한 세월호 아이들의 진실 앞에서 화가의 무력한 손재주라는 부끄러움은 이종구를 우리시대 성자들을 기록하는 이콘을 그리게 만들었다.

글/ 한재섭 (미술사)

이종구 작가 인터뷰 작가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이종구(b.1954-, 충남서산 출생)는 1980년대부터 급변하는 한국 농촌의 현실을 주제로 민중의 삶을 탐구해온 리얼리즘 작가이다. 그는 현실 참여적 활동들을 통해 농민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눔으로써 그들에게 내제된 분노와 저항, 그리고 희망을 표현해 왔다. 이후 우리의 국토 현실과 현장, 이라크 전쟁과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문제 등을 다루었으며, 최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초상화 연작, 이로 인해 시작된 광화문 촛불집회, 분단을 넘어 평화의 시대로 가는 민족 현실을 주제로 한다. 그는 미술의 사회적 기능에 초점을 두고 잘못된 권력과 정권에 대한 발언과 치열한 시대적 현실을 기록을 기록해 오고 있다.
이종구는 중앙대학교 회화과와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있다. 민중미술 동인인 ‘임술년’, 인천 미술인 그룹 ‘지평’의 발기인으로써 대표적인 민중미술 작가로 활동하였다. 인천공보관에서 진행된 <이종구 습작전>(1976)을 시작으로 20여 차례 개인전과 <민중미술 15년전>(국립현대미술관, 1994), <민중의 고동-한국미술의 리얼리즘 1945-2005>(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외, 일본, 2007), <코리안 랩소디>(리움미술관, 2011) 등 수많은 기획전에 초대되었다.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선정, 2010년 인천문화재단 우현예술상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 『땅의 정신 땅의 얼굴』(한길아트, 2004) 이 있다.

*한재섭은 인류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했고 전남대 문화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R 펠로우 방문연구자로 참여했고, 20세기 억압된 정치공간속에서 발현한 소문과 이미지의 정치학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