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대지의 작가 박인우, 그의 작품 세계와 인터뷰 <사고의 현대 한국 그리고 보따리>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 ver 1. 박인우
‘사고의 현대 한국 그리고 보따리’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의 시작을 여는 기획전시로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이 12월 20일부터 2020년 5월 6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들 중 인천 연고를 가진 중견작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로 참여 작가 각자의 작품 세계관을 살펴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3월부터 5월까지 매월 2명씩 참여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글을 만나본다.


사고의 현대 한국 그리고 보따리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에 출품하는 박인우 작가의 작업들은 회화의 직관을 따르면서 일련의 플로우를 가지고 있다. 그 흐름은 작가의 개인적인 내적 고백인 동시에 한국현대사의 일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매체와 표현기법은 정통 회화(유화)의 화법을 따르되, 작가의 직관을 살려 작업에 따라 흐름과 강약조절을 달리 한다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번 출품작의 경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작가의 자아를 통렬하리만치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전사>(2006)와 <나의 초상>(2007)이다. <전사>는 작가의 모습을 아프리카 부족 추장으로 표현한 자화상이다. 작가에게 2000년대 중반은 한국사회가 규율과 원칙이 무너진 혼란스러운 시대로 기억된다. 특히 가정과 사회에서 전통적인 ‘아버지’의 역할이 무너진 시대였다. 작가는 우리가 흔히 ‘야만적’이고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아프리카 부족의 추장이 오히려 한국사회보다 더 낫다는 개인적 사유에 착안하여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에 투영하였다. 여기서 작가의 얼굴은 강렬한 남성상을 표방하면서, 사회의 부조리와 인생의 통렬함에 질겁한 개인적인 심리상태를 온 표정으로 반영하고 있다.
<나의 초상>은 장남과 가장의 중압감에 지친 작가의 개인사가 진하게 묻어나는 작업이다. 작가의 유년시절은 육 남매의 장남으로, 때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감을 강요받았던 기억이 지배적이다. 방파제에 온 몸이 묶인 채로 목만 내놓고 견디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관객에게도 질식할 것 같은 중압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박인우_ 전사, 53×45.5cm, oil on canvas, 2006
박인우_ 나의초상, 162×97cm, oil on canvas, 2007

박인우 작가의 두 번째 작업 키워드는 ‘어머니’이다. 본 전시에서는 이와 관련한 두 점의 작업이 출품되었다. <어머니0925>(2009)와 <어머니 Forever>(2015)가 그것이다. 두 작업에서 도드라지는 알레고리는 ‘보따리’이다. 작가는 어머니가 가족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희생하는, 이른바 ‘전통적인 한국형 어머니상’의 온상이었다고 회상한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한 보따리에 구메구메 담겨 있는 것들은 크게 값진 물건이 아니다. 다만 작가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것들, 어머니가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보따리에는 육 남매를 키우고 생계까지 책임지느라고 고생한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절절한 시각으로 담겨 있다. 2009년도에 완성한 작업의 경우 보따리 뒤편에는 암호 같은 낙서와 드로잉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작가와 어머니가 나누었던 대화와 기억들을 작업에 새겨놓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작가의 심리가 담겨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먹먹한 기분을 들게 한다. 한편 <어머니 Forever>(2015)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수목장을 지냈던 날에 대한 작가의 기억이다. 여기에도 보따리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사용하던 의자 등의 소품이 일종의 분신으로 등장하며, 하늘로 올라가는 어머니의 영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적 증언이 담겨 있다.

박인우_ 어머니 0925, 181.8×227.3cm, oil on canvas, 2009

세 번째는 <나-있소> 시리즈로, 이 작업에는 작가뿐만 아니라 작가의 부모와 육 남매의 가족사 스토리까지 포괄하고 있다. “나 있소”는 가족 중심적인 전통 한국 사회에서 때로 자아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희생했던 구성원이 폭발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신호탄이자, 일종의 선언이다. 이것은 특히 한국사회에서 가장과 장남, 즉 ‘전통적인 남성상’이 강요받았던 중압감과, 그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온전히 전가했던 한국 사회에 대한 일갈이기도 하다. 즉, <나-있소>는 작가의 아버지의 외침이자 작가 자신의 선언이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기존의 사고방식과 표현방식에서 벗어나 자아와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의지를 내용과 형식 둘 다의 방식으로 취하고 있다.

박인우_ 나-있소 1325/ 나-있소1328/ 나-있소1332
117×91cm, acrylic on canvas, 2013

이번 전시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은 인천 지역에 연고를 둔 중견작가를 발굴하여 재조명한다는 남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박인우 작가에게 인천은 유년시절 공간기억을 구성하는 총체이다. 당시 인천은 해외 문물이 가장 먼저 거치는 항구도시이자 뱃사람들과 인력시장의 야생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공간으로 작가는 회상한다. 현재는 상상할 수도 없는 바다가 보이는 인천의 풍경과, 자유공원의 불온한 자유와, 항구의 야생적인 에너지가 꿈틀대던 공간은 작가의 의식 공간에 뿌리 내려 강렬하고 남성적인 작품 표현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글/ 조숙현 (독립 큐레이터)

박인우 작가 인터뷰 작가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박인우(b.1957~, 인천출생)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과 대지’이다.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지와 자연, 그 일부로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며, 이러한 내적 고민 안에서 한 인간으로서 작가 자신에 대한 서사를 작품에 투영시킨다. 이러한 작업 방식의 흐름은 작가 개인의 내적 고백인 동시에 한국의 시대적 현실과 변화사를 담아낸다. 박인우는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가천대학교 예술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있다. 작가는 1984년 인사동 관훈미술관에서 에스(S)파 동인전에 참가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한국미협, ORIGIN 회화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숙현은 연세대학교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졸업하고 미술전문지 『퍼블릭아트』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하였다. 현재 전시기획자 및 미술비평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대미술전문출판사 아트북프레스를 운영하고 있다. 기획한 전시는 《X- 사랑》(2019, 통의동 보안여관), 《강원국제비엔날레: 악의 사전》(2018, 강원문화재단)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2015, 스타일북스), 『서울 인디 예술 공간』(2016, 스타일북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