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시스템에 질문을 던지다, 작가 오원배의 작품 세계와 인터뷰 <몸짓들이 허용하는 자의적 질문들>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 ver 1. 오원배
‘몸짓들이 허용하는 자의적 질문들’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의 시작을 여는 기획전시로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이 12월 20일부터 2020년 5월 6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들 중 인천 연고를 가진 중견작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로 참여 작가 각자의 작품 세계관을 살펴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3월부터 5월까지 매월 2명씩 참여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글을 만나본다.


몸짓들이 허용하는 자의적 질문들
오원배는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의 실존과 소외, 현대사회의 시스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작품세계를 확장해 온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인간, 혹은 인간의 신체는 오원배의 초기 작업에서부터 등장한다. 1970년대에 가면을 쓴 형상에 이어, 1980년대 동물성이 강조된 몸부림치는 살덩이로서의 신체가 등장한 이후로, 때로는 투명인간으로, 때로는 기계 신체로, 때로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형상으로, 때로는 집단적 제스처를 취하는 무리들로 등장했다. 그가 재현한 인간 형상들을 하나의 연대기로 나열만 해도 그의 작품세계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다. 인체를 등장시켜 그는 사회의 구조적 상황과 여기서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탐구하고자 했다. 일상적으로 폭력과 죽음을 마주해야 했던 젊은 시절부터 사회적 부조리를 형상화하고자 했던 회화적 임무는 수 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화력(畵歷 혹은 畵力)을 인간의 실존적 가치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회화적 임무라는 설명으로 갈무리하기에는 그가 재현한 인간의 초상과 시대적 징후들은 상당한 폭과 변화를 가진다. 최근 작업에서 새로운 변화로 보이는 부분, 그래서 자의적 질문을 생성하는 것은 신체의 ‘몸짓들’이다.

오원배_ 무제, printing ink, pigment on canvas, 270×690cm, 2019

몸짓들
그의 최근 작업에서 인체 형상들은 각자 개별적인 동작들을 취하고 있다. 신체를 꺾고 뒤틀고 구부리는 역동적인 동작을 취하고 있다. 무엇을 하는 동작일까를 상상해 본다. 춤을 추는 순간을 포착한 걸까, 신체의 한계를 보여주는 수행의 동작일까. 준비동작일까, 절정에 달한 동작일까, 마무리동작일까. 편한 상태로 있을 때의 동작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안간힘을 쓰면서 몸을 지탱하고 있거나, 많은 에너지를 머금은 상태의 순간들이다. 혹은 운동 에너지로 전환하기 직전의 긴장감이 어른거리기도 한다. 이전의 동물성이 강조된 살덩어리 신체와도, 기계적 신체와도 좀 달라 보이는 것은 이처럼 운동 에너지를 발산하며 개별 신체들이 행하는 몸짓들에 기인한다. 커뮤니케이션 학자에게 몸짓은 비언어적 소통언어로서 의미체계를 가진다고 한다. 몸짓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일상에서 고개와 허리를 숙이는 동작은 상대방에게 인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일상의 소통체계에서 의미해석이 가능한 기능적인 몸짓이다. 하지만 기능성을 벗어난 이 순수 몸짓들의 의미는 그 해석에 다가갈 수 없다. 설사 그 의미를 알 수 있다고 해도 그 의미만으로 몸짓들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결국 몸짓들의 의미 해석에 다가가는 것은 불가하거나 부족하다. 작품의 생성 단계에서 행위 주체의 몸짓으로 다가가면 그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모델은 작업실에서 자유로운 포즈를 취하고 쉴새없이 이를 사진으로 찍는다. 작가는 그 중에서 만족할 만한 컷을 골라 작업에 활용한다. 모델의 순수 몸짓은 자유로운 행위인가, 강요된 노역인가. 그림으로 돌아와, 이 몸짓들은 자유로운 상태인가, 구속되어 뒤틀어진 포즈인가. 어떤 것을 표출하기 위한 능동적 행위인가, 어떤 것에 대한 수동적 반응일까. 자율과 구속, 능동과 수동의 모호한 중층성은 그의 전작들의 인체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인간과 기계, 인간과 동물의 형상에서 해방과 통제, 긍정과 부정을 가로지르며 존재의 이중성을 보여줬던 바다. 몸짓들이 담긴 사진을 선별하고 그 몸짓들을 화면에 담는 과정에서 모호한 중층성의 자장은 여전히 미치고 있다.

오원배_ 무제, printing ink, pigment on canvas, 308×387cm, 2019

병치와 접속들
몸짓들은 다른 몸짓들과, 혹은 다른 요소들과 병치된다. 다른 요소들이란 사물들, 식물들, 형태들, 구조들로 이야기될 수 있는 비인간 존재들이다. 그의 기왕의 작업들에서 신체 형상들과 함께 등장한 것은 공간적 배경이었다.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환경이 현대사회의 암울한 공간의 징후로 등장하고, 그러한 징후는 인간이 처한 공간과 상황에 대해 해석하려는 충동으로 우리를 빠뜨렸다. 인체의 형상 및 움직임이 공간과 인과관계를 경유하여 해석의 상황으로 이끌어 가려고 했다면, 이번 작업에서 인간과 함께 등장하는 사물들과 구조들의 나열은 단편적이고 임의적 연결로 보이며 그에 대한 자의적 상상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이와 같은 병치 구조에 대해 작가는 “하나로만 이야기하기 모호한 상황인지라 여운을 갖게 하는 하나의 기제로 활용”한다고 말한다. 그의 언급은 복잡하고 다변화된 세상과 가치판단이 어려워진 시대에 대한 논평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한 조형적 대응방식을 포함하고 있다. 그의 병치의 구조는 희박해 보이는 관계들의 무관심한 나열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단절과 무관심은 때로 왠지 모르게 새로운 연결과 접속의 지향으로 보인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여운일까. 몸짓들의 의미 해독이 불가함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커뮤니케이션에 비유하자면, 몸짓들과 그것의 병치는 무선접속장치의 전파가 있는 접속 가능성의 영역에서 모종의 연결과 네트워크를 기다리는 자동적 신호의 목록이 아니었을까 질문하고 싶다.

글/ 이정은 (미술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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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배(b.1953~, 인천출생)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변형, 상징화 함으로써 인간의 실존과 소외, 현대사회의 시스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 왔다. 인간이 구축해온 사회, 현실을 구성하는 복잡 미묘한 관계에 관심을 보이며,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초상과 그 시대적 징후들은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진다. 오원배는 동국대학교와 동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파리국립미술학교 미술학 전공 석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동국대 명예교수, 우현상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작품의 주요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소마미술관, 금호미술관, oci 미술관, 후쿠오카 미술관, 인천문화재단, 파리국립미술학교, 프랑스 문화성, 동국대학교, 서울대미술관, 원광대학교 등이 있다.

*이정은은 미술이론을 공부하였고, 전시 및 프로젝트 기획과 비평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시의 여가문화 및 문화정책에 대한 연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로맨스가 필요해》(2013), 《달빛심포지엄》(2017), 《아워 피크닉_레퍼런스》(2019) 등의 전시 및 프로젝트를 기획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