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현실에서 문화예술(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
위기의 현실에서 문화예술(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
문계봉(시인, 인천문화재단 이사)
새해 벽두부터 신종바이러스의 전 방위적 공세로 온 나라가 미증유의 위기에 빠져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방역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가동하며 바이러스 구축(驅逐)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바이러스는 여전히 우리의 일상 깊은 곳까지 침투하여 온전한 삶을 뿌리부터 뒤흔들어놓고 있다. 그리고 12일 현재 세계보건기후인 WHO에서 ‘위험이 현실화되었음’을 알리는 팬데믹(pandemic)을 선언함으로써 이러한 바이러스 창궐은 지역적 위험을 넘어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이 되었음을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국내외 경기는 곤두박질치고 민생의 피폐는 심각한 상황이다. 또한 물리적, 신체적 위험만큼이나 심각하게 사람과 사람의 정서적 관계가 왜곡 변질되고 각종 유언비어가 바이러스 감염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국민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계속 하향 조정되다 결국에는 붕괴되기 일쑤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훼손된 관계와 무너진 삶의 시스템을 회복해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때에 인천의 상황을 특화시켜 언급하거나 문화와 예술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자칫 지역이기주의이거나 현실의 심각성을 망각한 이상주의적 발언으로 오해되기 십상이다. 눈앞에 위기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가족과 지인들이 감염의 숙주 혹은 근원으로 확인되어 격리되고 있는 지구적 위기 상황에서 문화와 예술을 이야기하는 것은 확실히 현실과는 동떨어진, 과도한 낙관주의적 스탠스라는 오해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지역과 문화, 그리고 예술에 대한 강조가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문화와 예술을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그것의 구축(驅逐)을 위한 노력을 방기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갑자기 마주한 이 ‘짐승의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화와 예술의 건강한 상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기 때문이다. 작금에 겪고 있는 초유의 바이러스 감염 사태에 있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물리적, 제도적 노력은 중단 없이 진행되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이지만, 문화와 예술은 결코 치레가 아니고 사람들의 삶 속에 다양한 형태로 녹아 있는 것이며, 따라서 위기와 고통에 빠진 국민들의 마음을 위무하는 유력한 동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문화와 예술의 역할 또한 고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의 문화예술, 좀 더 구체적으로 문화예술인들은 어떤 실천을 경주할 수 있을 것인가.
작금의 문화예술(인)은 무엇보다 먼저 불신과 불안함이 바이러스처럼 창궐한 현실에서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이 보여주고 있는 암울함은 이미 영화와 소설보다 훨씬 구체적이지 않은가. 또한 위기상황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일부 세력들의 정체를 비판, 폭로하고 상처 입은 이들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
바이러스는 조만간 구축될 것이다. 물론 무너진 삶의 물리적 시스템을 하나하나 복원하고 자연스런 일상으로 완전히 복귀하는 데에는 만만찮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 입은 정서적 상처와 훼손된 관계를 복원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힘은 바로 문화와 예술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따라서 고통의 분담과 상처의 물리적 극복을 위한 노력만큼이나 희망과 여러 층위의 연대를 예술적으로 구현해내는 것, 그것이 위기 속에서 취할 문화예술,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문화예술의 지원 단위이자 중간조직인 문화재단 역시 이 엄중한 시기에 자신의 임무와 역할, 문화와 예술을 고민하는 단위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냉정하게 되돌아보길 바란다. 이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이후 더욱 단단해진 심장으로 고통과 시련을 객관화하여 다시금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게 하는 힘도 바로 문화와 예술로부터 비롯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그 사회의 저력이자 자산이기 때문이다.
문계봉(文桂奉, Moon GyeBong)
시인, 전 인천작가회의 회장, 현 인천민예총 이사, 문화재단 선임이사
시집으로 『너무 늦은 연서』가 있음. freebird386@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