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엠 카메라 희망여행 프로젝트 2019 리뷰
<길 위에 잠시 멈춰서다>
그동안 아차도에서 진행한 <섬의 노래>와 송림동 <메아리 라디오극장>로 인연을 맺어온 인천문화재단에서 7월 어느 날 <아이엠 카메라 희망여행> 프로젝트의 기획을 맡아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아이엠 카메라’ 프로젝트는 올림푸스 코리아가 2015년부터 진행해온 사회공헌프로그램으로 암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과 환우들을 정서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사진예술교육프로그램이다. 인천문화재단이 올림푸스 코리아와 함께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올해로 3년 차라고 한다.
10월부터 11월까지 성인암 환우들과 함께 2박 3일 예술워크숍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로 전시를 선보인다는 계획을 듣고 할 수 있겠다고 대답했지만, 막상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짧은 일정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무엇보다 유학 시절에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이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암과 암에 걸린 환자들의 치료과정 및 사회적 환경에 대해 잊고 있었던 나는 병에 대한 여러 정보를 검색하면서 아픈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앞섰던 유학 시절을 떠올리며 아픔은 주변의 인내와 배려 없이 이겨내기 어렵다는 점을 되새겼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따뜻함이 작업에서도 묻어나는 작가로 구성하여 길다래, 김순임, 박형렬, 백정기, 조재영, 오민정 작가가 합류하게 되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짜기에 앞서 우리는 병원에서 올림푸스가 진행한 사진수업에 참관하였다. 참여자들의 밝고 진지한 모습을 보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암 환자라는 고정된 시선을 가지고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이 서로에게 불편하겠다는 것을 알았다. 최대한 차별 없는 시선으로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획의 방향을 잡았다. 기획서의 일부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힘든 순간을 경험한다. 이런 멈춤의 순간 복잡하게 얽힌 생각의 실타래를 잠시 내려놓고 주변을 바라본다. ‘멈춤’ 앞에서 관성처럼 나아가려는 생각들은 작가들과 낯선 장소로의 여행을 통해 다르게 바라보기를 시도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주위를 둘러보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마주하며 잠시 멈춰야만 보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기획의 틀을 잡고 ‘길 위에 잠시 멈춰서다’라는 주제와 ‘기억, 순간, 희망’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진행을 하였다. 작가들은 저마다 주제에 맞는 워크숍 프로그램을 준비하기로 했다.
작가팀은 인천문화재단과 올림푸스 코리아, 외주 운영팀과 함께 몇 번의 기획회의를 거쳐 2박 3일간 구체적인 예술 워크숍 일정과 전시일정을 잡고 필요한 물품들을 체크하였다. 워크숍 둘째 날로 예정된 강화도 투어에 앞서 답사를 다녀오기로 하였으나, 때마침 돼지열병으로 강화도에 있는 모든 돼지를 살처분하고 출입차량의 소독이 이루어지고 섬 전체의 축제며 행사들이 취소되고 있었다. 장소변경을 생각하던 내게 급하게 재단에서 연락이 왔고 다음 날 있을 답사장소를 무의도와 소무의도로 변경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몇 번 와봤지만, 워크숍 장소로 적당할지 확신이 없었다. 답사하며 이동하는 길이가 길어지자 참여자분들의 몸 상태를 수시로 체크하면서 이동거리를 조정하기로 하고 모두 만족하는 표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워크숍 첫날, 20명이 조금 넘는 참가자들이 도착했고 오리엔테이션이 끝나자 예술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작년 워크숍은 참여자들이 모두 체험하지 못해 아쉬웠다는 말에 올해는 작가 2명씩 팀을 이루었고 한 팀이 한 개의 워크숍을 진행하는 동안 다른 두 팀이 진행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이런 구성으로 참여자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각 워크숍은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었다.
첫째 날, 조재영, 오민정 작가의 <나와 너 사물로 연결되다>라는 주제의 워크숍은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을 의미하는 작업이다. 참여자들이 각자의 사연이 담긴 사진 한 장을 선택하고 그 이미지를 그려서 워크숍 마지막 날 실크스크린으로 박스에 찍고, 다시 맘에 드는 서로의 이미지를 교환해서 찍는 형식이었다. 참여자들이 단순히 판화를 찍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미지 위에 덧칠하며 세세하게 그려나가는 열정에 다들 놀라워했다.
둘째 날은 서로 다른 병원에서 온 참여자들이 워크숍 장소가 인천이라는 점을 기대하여 바다에 갔고 그곳에서 짧은 여행을 보냈다. 어린 시절 모래놀이를 하던 기억을 회상하며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어 보는 박형렬, 백정기 작가의 <신화이미지> 워크숍과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통해 새로운 감각으로 만나는 사물들을 채집하고 기록하는 김순임 작가의 <I MEET WITH>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길다래 작가와 나는 여행의 소리를 녹음하고 바다를 향해 마음의 소리를 외치는 <소리의 바다>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참여자들은 바닷가 모래에 손자국을 남기며 조개를 모아 누군가의 얼굴모양을 만들거나 삶이라는 글씨를 모래 위에 남기기도 하며 동심으로 돌아간 듯 즐거운 표정으로 가을의 한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나개 해수욕장과는 다르게 소무의도의 해변은 작고 아담한 동해의 작은 바닷가 마을 같은 분위기였다. 해변 앞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작은 돌들 위로 잔잔한 파도가 구르고 있었다. 해변의 풍경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는 참여자들의 모습과 파도 가까이 설치된 마이크에 삼삼오오 다가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외치는 모습에서 잠시나마 아픈 생각을 훌훌 털어버리기를 바랬다.
셋째 날은 실크스크린 마무리와 여행의 소리를 통해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글을 써보는 <소리나누기>를 진행하였다. 워크숍 일정의 마지막 날, 누군가의 소리를 녹음해서 편집하고 함께 듣는다는 것이 예민한 부분이라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길다래 작가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참여자들의 공감을 얻고, 하나둘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노래를 부르고 좋아하는 시를 읽으며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는 시간이 되었다.
2박 3일의 일정이 마무리되고 한편의 인상적인 영화를 보고 나온 것 같은 몰입감과 피로함으로 결과물 전시에 대한 초기의 생각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았다. 처음에는 워크숍의 결과물이 작은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모뉴먼트(monument)처럼 설치되길 원했지만, 전시장소가 바뀌면서 어쩔 수 없이 설치 계획도 바뀌게 되었다. 되도록 작가들의 손을 많이 거치기보다 참여자들이 만든 그대로의 작품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방법을 고민했다. 작가들과 설치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처음 기획에서 의도했던 부분들을 가져갈 수 있었다. 함께하는 의미를 담아 작품들은 전시장에 쌓이고 매달리고 걸렸다.
3주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며칠 동안 작품을 설치했던 작가들은 정작 참여자들이 많이 안 오시면 어쩌지 하면서 걱정했지만, 전시 오프닝에 <2019 아이엠 카메라 희망여행> 참가자의 반가운 얼굴 대부분을 볼 수 있었다. 참여자들은 작품은 둘러보며 지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올림푸스 코리아와 작가들 사이를 오가며 열심히 도움을 준 인천문화재단 신효진 담당자님과 계획 단계에서 전시까지 성심껏 참여하여 좋은 작업으로 이끌어준 작가들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도 밝은 표정으로 함께 해준 참여자들에게 더 큰 감사를 전한다.
글 · 사진
고 영 택
KO Young-taeg (E-mail : medienkunst@hanmail.net)
고영택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과 공동체 내 개인의 존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영상과 설치작업으로 제시한다. 공동체가 사회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의미화 되고, 공동의 목소리와 개인의 목소리는 어떻게 중첩되고 분리되는지, 개인의 가치와 욕망, 삶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상실되는지를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추계예술대학교와 독일 자르 조형예술학교 뉴미디어과를 졸업하고 2008년 서울시립미술관 ‘SeMA신진작가전시지원’ 선정을 시작으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하였다. 2012년 고양창작스튜디오. 2013년 경기창작센터와 2014년 인천아트플랫폼 . 2015년 독일ZK/U 레지던시에 입주하여 활동하였으며 현재는 인천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