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조금씩 만들어가는 도시는 없는가
–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을 앞두고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 대한 글입니다. 공간 활용에 대하여 명확한 판단을 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이 글을 통해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1845년 엥겔스가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라는 책을 펴냈을 때, 전세계 산업화의 최정점에 있던 영국의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그야말로 참혹한 상태였습니다. 노동자들은 창문이 없어 채광도, 통풍도 안되는 집에서 제대로 된 가구도 갖추지 못하고 비좁게 뭉쳐서 잠만 자고 공장에서 열여섯 시간을 일했습니다. 집에서는 단 8시간 잠만 자니 3가정이 한 집을 3교대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거리는 좁은데다가 항상 분뇨와 쓰레기가 쌓여 있었습니다. 도시가 생산에만 몰두하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돌보지 않을 때 도시는 어둡고, 더럽고, 서로를 경계하고 다투는 곳이 되었습니다.

1900년대 이후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 시민들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옴스테드는 도시 안에 자연과 같은 공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도시 공원이 필요한 이유는 먼저 자연과 같은 공간에서 도시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고, 녹지가 도시의 허파 역할을 한다는 기능적인 요소 또한 강조되었습니다. 사실 옴스테드와 같은 사람들이 의도한 진짜 효과가 따로 있습니다. 이들은 열악한 도시 여건 속에서 발생하는 범죄, 다툼과 같은 도시 문제를 ‘보기 좋은 자연’을 통해서 해결하려 했던 것입니다. 잘 가꾸어진 자연은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교화한다는 것입니다. 이 효과와 더불어 공원을 휴식과 여가를 통한 재생산의 장소로 삼아 노동자들이 더 건강한 몸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옴스테드는 이런 관점에서 맨하탄에 거대한 공원을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센트럴 파크가 그것입니다. 이후 르 코르뷔제가 빛나는 도시를 계획하면서 도시에 고층빌딩을 세우는 대신 빈 공간을 녹지로 구성하려는 것이나, 높은 가로수를 심은 산책로인 프롬나드와 같은 공간을 만드는 것은 같은 맥락 안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현재에도 공원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도시 공원은 여전히 도시민들에게 가장 가까운 자연이고, 일상적인 휴식처이자 놀이공간이고, 잘 자란 녹음은 산소를 뿜어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100여 년 전에는 이런 공간이 통치술의 하나로 도시민에게 주어졌다면, 오늘날에는 도시민들 스스로 도시공원의 필요성을 느끼고, 계획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공원을 요구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전국 지자체들은 올해 내내 이 공원을 만드는 문제로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1999년에 도시공원 예정지로 지정된 토지를 장기간 실제 공원으로 개발하지 못하는 경우, 소유주의 재산권을 위해서 도시공원 예정지 지정을 해제하여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국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통해서 ‘장기간’이라는 시간을 20년으로 정했습니다. 20년간 개발되지 못한 도시공원은 예정지 지정을 해제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도시공원 일몰제’라 합니다. 그래서 내년 7월, 아직까지 실제로 지방자치단체가 매입해서 공원 조성이 되지 않은 예정지는 도시공원 예정지 지정에서 해제됩니다. 문제는 생각보다 이런 땅이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전국에 이런 땅은 무려 396.3km2나 됩니다. 전국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인천의 40%에 가까운 면적의 공원이 사라지게 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아직 정식으로 조성된 공원이 아니다보니 대체로 이런 곳들은 주로 도시의 작은 산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도시들이 유럽이나 미국의 도시에 비해서 갖는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이 작은 산들입니다. 어느 도시든 중간중간에 작은 산들이 있고 도시를 감싸는 큰 산들이 있어서,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같은 대규모 녹지를 조성하지 않아도 한국의 도시에서는 일상적으로 자연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중 상당수가 도시공원 예정지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고, 또 이들 중 많은 부분이 내년에 공원 예정지에서 해제될 예정입니다. 물론 당장 공원 예정지에서 해제된다 하더라도,  당장산이 없어지고 개발이 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유지인 곳들은 주인이 원하는 쓰임새를 위해 시민들이 들어갈 수 없을 것이고, 국공유지인 곳들은 소유 기관이 원하는 사업을 위해서 개발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시민들은 미래의 공원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서울의 경우는 이런 문제가 무척 심각합니다. 내년 7월 해제되는 도시공원 예정지의 20% 정도가 서울시에 있습니다. 면적이 무려 72.3km2인데, 이정도면 부평구와 계양구를 합친 면적과 엇비슷합니다. 옛 북구만큼의 공원이 서울에서 통째로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규모가 실감이 나실 것 같습니다. 서울은 이 도시공원 예정지를 다시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해서 기존의 공원 역할을 지속하게 하려 합니다만, 시간이 정해진 기존의 규제와 비슷한 규제를 다시 시행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의 목소리 또한 많습니다. 많은 지자체에서는 도시공원을 개발하기 위해서 5만㎡의 도시공원 예정지를 민간이 매입해서 공원으로 조성하면 면적 중 30%는 개발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민간공원조성 특례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성이 적어 민간 참여가 없는 경우도 있고, 환경문제나 경관훼손 등의 이유로 추진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국공유지와 사유지를 매입하여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겠지만, 많은 지자체가 비용 문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내년 7월 일몰제가 적용되는 도시공원 예정지가 최근 부쩍 부각되는 것은 이 시기가 당장 내년도 예산을 마련하여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인천은 도시공원 일몰제에서 조금 자유로운 편입니다. 우선 내년에 일몰될 가능성이 있는 공원 면적이 약 7.5km2로, 비교적 적은 편입니다. 그래도 동구 전체의 면적보다는 많습니다만, 서울의 1/10 수준에 불과합니다. 인천시는 이 중 80%를 매입하여 공원으로 조성하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속적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는 예산을 마련하고, 부족한 재정은 지방채 발행을 통해서 충당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공원 조성 계획 비율과 예산 투입을 계획하고 있는 지자체가 많지 않습니다. 인천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인천시는 인천대공원, 소래습지와 같은 큰 공원들을 비롯하여 소규모 공원들과 어린이 공원 등의 장기미집행공원에 대해서 공원 조성을 완료하는 로드맵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그림 1> 지난 2월 인천시가 발표한 장기미집행공원 대응 로드맵(위)과
장기미집행공원 공원조성 첫 사례인 서구 현무체육공원 준공식(아래).
주변의 많은 공원 예정지들이 사실은 일몰제를 앞두고 있었고, 최근에 들어서 공원 조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출처: (위)아주경제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아래)인천광역시 서구 네이버 블로그(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따라 도시공원 조성에 20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지자체들이 올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동안 무수한 도시개발이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토지 확보는 60-70년대처럼 토지를 강제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 보상의 절차를 통해야 했습니다. 도시공원 예정지로 지정된 토지를 사들여 공원으로 조성하는 일이나, 신도시를 개발할 때 도시 안에 공원을 조성하는 일이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무수한 신도시에 잘 계획된 공원들을 조성하면서도, 도시민들이 이미 사용할 수도 있었던 도시공원 예정지 중에는 매입과 조성 절차 없이 그냥 놓아둔 땅이 이렇게나 많았던 것입니다. 201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문제가 이슈가 된 것은 도시는 장기간의 계획에 따라 천천히 개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전히 단기간에 대규모로 개발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더 익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시에서 공원이 반드시 필요한 곳이라면, 그래서 신도시 곳곳에 공원을 당연히 조성하고 있다면, 지난 20년간 점진적인 예산 투자를 통해 도시공원 예정지들이 일몰을 맞이하기 전에 공원으로 조성되고 있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자체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급한 일이 아니라서, 눈에 띄지 않아서 미루어졌던 공원개발 대신 대규모 도시개발은 도시를 살리는 치적사업으로 비춰졌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편이 4년마다 재평가 받는 지자체장들에게는 시간과 비용과 인력을 들여 도시공원 예정지를 개발하는 것보다 더 유리했을 것입니다. 이런 오래된 습관들 때문에 인천에서도 언제 사람들이 살게 될지 아직도 짐작키 어려운 영종하늘도시의 단독주택용지 옆 공원이나, 미단시티 한가운데의 광장이 지자체가 도시공원 예정지들을 사들여 공원으로 조성하기 전에 먼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20년의 여유 시간이 있었던 전국의 도시공원 예정지들은 당장 내년에 얼마나 사라질지 짐작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림 2> 독일 함부르크의 도시재생 프로젝트인 하펜시티의 마스터플랜(좌)과
랜드마크인 엘프필하모니 콘서트홀(우).
하펜시티는 도시가 빠르게 완성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출처: (좌)Hafencity Hamburg(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우)조선비즈(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최근 함부르크의 낙후한 항구를 재생하는 하펜시티 프로젝트가 어느 일간지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이는 인천 경제자유구역 면적의 불과 2%에 해당하는 지역을 무려 30년에 걸쳐 재생하는 도시재생사업입니다. 이렇게 천천히 도시를 만드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도, 도시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도시에 다양성을 만들고, 더 섬세하게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지속적으로 계획에 반영하며 더 많은 시민들이 만족하고 사랑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전략입니다. 1920년대 건축된 슈투트가르트의 중앙역을 재건축하고 철도를 지하화 하는 ‘슈투트가르트 21’ 프로젝트는 1990년대 후반 계획되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문화재와 환경을 보호하려는 시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시 정부는 그 목소리를 묵살하지 않고 오랜 설명회와 공청회, 의견수렴을 반복하며 천천히 되도록 많은 시민들이 원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처음에 계획했던 예산의 50% 만큼이 더 들어가게 되었고, 최소 2024년까지 완공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만 도시는 이렇게 천천히 오래 도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가며 만들어져야 합니다. 특히나 ‘아래로부터’, ‘주민 스스로의’ 도시계획을 점차 강조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글 /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에벤에저 하워드(2006). 내일의 전원도시. 한울아카데미
엥겔스(2014).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라티오.
피터 홀(2009). 내일의 도시. 한울아카데미
[다시 쓰다, 도시 3.0] ①함부르크는 더 이상 항구가 아니다. 조선비즈. 2019.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