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달라도 음악으로 소통하는 ‘기타랑’의 Kiara 회원을 만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금요일 저녁 7시, 주안 시민지하상가에 위치한 아트애비뉴27을 찾았다. 이 동아리에 외국인 회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궁금증 한 보따리를 등에 메고 말이다. 바로 기타 동아리 ‘기타랑’의 회원 키아라(Kiara)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곳에는 앳된 얼굴에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는 키아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를 돕기 위해 키아라를 가르치는 기타 선생님도 자리를 함께했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인터뷰를 위해 조용한 교실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아라~ 기타 들고 다른 곳으로 가자.” 기타 선생님이 한국어로 말을 건네자, 키아라는 자연스럽게 기타를 들고 선생님과 우리를 따라나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안녕하세요. 아라입니다.”

한국에 온 지 1년 반이 된 미국인 키아라는 현재 인천 남부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키아라의 한국 이름은 김아라(이하 아라)이다. 키아라와 비슷한 발음을 가진 김아라로 한국 이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 我(아)에, 열매 蓏(라) 한자로 쓰인 이름인 아라는 “I bear fruits”(결실을 맺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2009년도에 친구가 보여준 샤이니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처음 한국 K-pop에 빠졌다는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서 글로벌 문화를 공부했다고 한다.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안녕하세요”, “김아라입니다”, “영어 선생님이에요”, “이거 핸드폰이에요”, “몰라요”, “알아요”, “괜찮아요”라고 간단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아라는 혼자서 교재를 가지고 한글 공부를 했다고 한다.

 

“외국인 아라, ‘기타랑’ 문을 두드리다”

2019년 4월 아라는 직장 동료인 친구들의 소개로 처음으로 기타 동아리 ‘기타랑’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아라는 ‘기타랑’ 문을 열고 들어온 첫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아직 한국어에 서툴지만, 친구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보디랭귀지도 써가면서 회원들과의 소통을 이어갔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만국 공용어인 음악으로 소통하는 사이 아닌가. 그렇다면 기타랑 회원들도 그랬을까? 기타랑 선생님은 아라가 처음 동아리에 들어온 날에 당황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영어로 수업을 진행해야 하나’하고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언젠가 싶을 정도로 지금은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아라에게 말을 건넨다. 아라 역시 눈치껏 제법 알아듣고 반응한다.

“너무나도 다른 우리, 배려가 시작되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비단 아라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떠나서 아라와 기타 동아리 회원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단 20대인 아라와 40대 중반의 기타 동아리 회원들 사이에는 약 20년이 넘는 나이 차이가 존재한다. 아라를 위해 팝송을 선곡하기도 했지만, 20대인 아라가 알기에는 너무 오래된 팝송이었다. 게다가 아라는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채식주의자였다.
이들에게는 서로 다른 차이를 좁혀가는 여정들이 있었다. 아라가 첫 뒤풀이에 참석한 날은 모두 안되는 영어를 사용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뒤풀이가 끝나고는 너도나도 아라의 귀가를 걱정하며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아라를 위한 배려가 시작됐다. 한국 문화를 잘 몰랐던 아라는 처음에는 회원들의 친절이 의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의미에서 문화 충격이었다고 전한다. 또한 회원들은 매번 뒤풀이를 하러 갈 때마다 채식주의자 아라를 위해 음식에 고기가 들어가는지 앞장서서 확인에 나선다. 그리고는 가게 사장님께 고기를 빼달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최근에 아라의 친구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는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아라와 친구를 위해 노래방에 데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기타랑’에는 아라를 위한 세심한 배려들이 습관처럼 스며들기 시작했다.

“잊지 못할 한국 문화, 뒤풀이 문화”

“한국 생활을 뒤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일 것 같아요?”라는 질문에 아라는 자신 있게 “뒤풀이 문화”라고 대답했다. 뒤풀이 문화를 영어로 번역을 하면 뭐가 될까? after party?? reception?? 정도일까? 하지만 둘 다 한국 특유의 뒤풀이 문화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아라는 말한다. 처음 뒤풀이에 참석하던 날, 서로의 잔이 비웠는지를 보고 서로 챙겨주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아라는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조심스러웠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제는 “뷰티풀”, “판타스틱!”이라고 외치며 뒤풀이 문화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활동을 시작한 지 약 4년이 된 기타 동아리 ‘기타랑’은 매주 금요일에 뒤풀이를 꼭 한다. 아라는 매주 참석하지 못해도 적어도 2주에 한 번씩 뒤풀이에 참석한다고 한다. 기타 실력에 상관없이 동아리 회원들이 모이는 뒤풀이에는 매번 약 20명가량의 회원들이 참석해 노래도 부르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그야말로 흥겹게 논다. 흥이 많은 아라도 뒤풀이에서 선뜻 ‘Let it go(렛잇고)’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기도 했다. 선생님의 표현에 따르면, 아라의 뒤풀이 퍼포먼스는 마치 한편의 뮤지컬을 연상케 했다며 뒤풀이의 생생함을 더했다.

“기타랑 덕분에 이제는 누구와도 공감할 수 있어요”

“기타랑 모임을 시작한 이후 가장 큰 삶의 변화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아라는 주저 없이 말했다. “뭔가 공통된 것이 있으면 누구와도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이요.” 거리를 지나다 종종 자신의 어깨를 부딪치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문화 충격을 받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이 모임에 있었으면 어땠을까’하고 이제는 그들의 다른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아라에게서만 그치지 않았다. 변화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다. 아라의 기타 선생님은 아라를 대하는 회원들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인끼리만 모임을 해온 터라 다른 언어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라를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하는 동아리 회원들을 보며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언어를 넘어서, 나이를 넘어서, 취향을 넘어서 회원들은 서로를 배려하는 방법을 실천해갔다.

언어는 소통을 이어주는 아주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기타랑’은 생활예술을 통해 언어가 채우지 못하는 많은 부분을 채워주고 이어주고 있었다. ‘2019 동아시아 생활문화축제’ 연합공연과 ‘기타랑’ 동아리에서 MT를 함께하며, 아라와 회원들은 끊임없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소통을 이어갔다. 내년 8월이면 아라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감사합니다.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위해 영어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미리 인사를 전했다. 비록 아라의 모든 말들이 그대로 전해지지는 않았더라도 감사의 마음만은 이미 모두에게 전해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인터뷰 내내 특유의 밝은 에너지를 전해주던 아라, 그리고 그런 아라를 복덩어리, 마스코트라고 부르며 따뜻한 눈길로 지켜보던 기타 선생님, 아라를 위한 배려의 방법을 고민하며, 다른 언어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실천하는 회원들… 이들은 오늘 또 기타를 연주하며 무엇을 주고받을까? 스며드는 빗소리보다 더 촉촉이 마음을 적시는 그들의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글·인터뷰 / 생활문화동아리 일일 시민기자 김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