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만나면 사랑에 빠질까_전시장과 공연장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 대한 글입니다. 공간 활용에 대하여 명확한 판단을 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이 글을 통해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근대적인 도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굳이 한 단어로 꼽으라 한다면 아마 ‘생산’이 아닐까 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현재까지 계속해서 도시는 가장 선진적인 산업을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곳입니다. 자본주의가 자리잡은 이래, 도시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정수로 여겨집니다. 데이비드 하비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잉여 생산이 대공황을 불러온 과거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고정된 생산과 소비 시설을 만들어내는 ‘2차 순환’을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 ‘2차 순환’의 결과물에 ‘건조 환경’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도시는 건조 환경의 가장 주된 예입니다.

끊임없이 돈을 투자해서 돈이 되는 것을 만들고 또 그것을 돈을 지불하고 소비하는 공간이 도시라면, 도시는 참으로 삭막하고 여유 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일정 부분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도시 밖보다 도시의 삶에서 더 나은 여유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도시에서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도시에서의 예술 또한 대단히 양면적입니다. 예술은 이미 앞서 말한 ‘가장 선진적인 산업’ 중 하나입니다. K-pop은 세계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일신하는 역할을 하고, 게임산업은 문화산업 수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일전에도 창조 도시와 관련된 논의를 소개해 드린 바 있는 것처럼, ‘문화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도시를 구성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며, 그 가치가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오늘날 도시의 사람들에게 예술은 도시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도시의 삶 속에서 굳이 노력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종류의 예술을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도시 공간의 무수한 매스 미디어들을 통해, 거의 모든 도시 사람들은 예술에 대해 자신의 취향을 가지게 됩니다. 도시민들이 도시 정부에 자신의 취향을 충족하는 더 많은 예술의 장을 제공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도 일상적인 일입니다.

 

<그림 1> 문화산업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모바일 생태계와 결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좌)와 애플TV+(우)(출처: IT동아(좌), Apple 홈페이지(우))

전문적인 것과 대중적인 것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날 예술의 우열을 가리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분명 예술을 소비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로 읽힙니다. 여기에 예술도 하나의 ‘산업’이라는 관점이 더해지면 ‘수요자 중심’의 예술시장이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나 공공이 예술의 장을 공급하는 문제로 이야기의 중심을 옮기면 이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시대의 모든 현상에서 이제는 인터넷 기반의 서비스와 SNS나 유튜브 등의 플랫폼 서비스를 빼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예술 관련 산업에서 이는 더욱 도드라집니다. 통신기업 중심이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이제 디즈니 등 콘텐츠 기업이 직접 뛰어드는 대규모 시장으로 발달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트위치 등 동영상 플랫폼은 점차 라이브 방송의 기능을 강화하면서 전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콘텐츠를 향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들 플랫폼 차원이 다른 접근성으로 인해, 많은 문화 예술이 여기로 흡수됩니다. 오래된 드라마가, 회화와 조각들이, 클래식 음악 전공자들이 DVD와 미술관, 공연장에서 벗어나 더 일상적인 모습으로 사람들과 접촉합니다. 대중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더 다양한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플랫폼은 전적으로 개별 사용자의 선택에 의존합니다. 많은 사람의 선택을 받는 콘텐츠와 크리에이터가 있는 반면, 수백 배, 수천 배의 선택받지 못하는 콘텐츠와 크리에이터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예술에 적자생존과 경제논리를 적용하면, 점차 예술은 다양성을 잃게 됩니다. 공공의 역할에서 다른 접근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예술의 체험이 교육의 일부분으로 인식되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의 체험학습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분야의 예술을 직접 관람하고, 체험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중에도 인천은 오랜 시간 문화의 불모지 취급을 받았을 정도로 문화시설 자체가 부족했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무수한 노력으로 공공 도서관 시스템이 확립되고, 지방자치단체 중에 가장 활성화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문화재단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으며, 최신 시설의 콘서트홀인 아트센터 인천을 갖추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중문화시설은 영화관이 대다수이며, 민간의 기증으로 갖추어진 송암 미술관을 제외하면 300만 인구의 광역시에 걸맞지 않게 시립미술관이 없는 도시이며, 민간이 운영하는 공연시설이나 미술관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부족한 도시입니다. 아트센터 인천을 제외하면 여전히 많은 공연시설은 다목적 강당에 가까워 무대, 음향 등에서 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들이 많습니다. 아시안게임 개최 이후 대규모 공연이 가능한 체육관을 통해서 대중문화 공연이나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 촬영 등이 이루어지지만, 여전히 전문예술분야는 많은 부분에서 서울의 전시공연 시설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림 2> 울산이 시립 미술관 착공을 시작하면서, 인천은 아직 유일하게 시립미술관이 없는 도시입니다.
인천 시립미술관이 자리할 뮤지엄파크 조감도(좌)와 2001년 신축 이전한 서울시립미술관(우).
(출처: 매일경제(좌), 서울시립미술관(우))

문화적 소양은 배워서 만들어지기보다는 어린 나이부터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쌓이게 된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전시 공연에 익숙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문화를 익숙하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또한 청소년기 문화예술에 대한 경험은 이후 진로 결정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교육과정에서 다양한 예술 체험을 유도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진로 결정에 큰 영향을 주는 청소년 시기의 공교육은 입시 중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스스로의 관심과 선택이 아닌 교육과정의 일부로 접하는 예술이 깊은 영향을 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수요가 적거나 수익성이 떨어져서 민간에서 많이 제공하지 못하는 전시시설과 공연시설, 특히 전문예술에 대한 맞춤 공연시설은 공공이 다양하게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대규모의 치적사업으로서의 전시공연시설이 아니라, 마치 작은 도서관 네트워크처럼 일상에 밀접한 전시공연시설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도 이런 시설은 건설비용과 운영비용이 많이 들고, 수요는 적고 처음에는 양질의 전시 공연을 채우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민 삶의 아주 가까운 곳에 일상처럼 이런 공간들이 있을 때 시민들의 예술과 미에 대한 이해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됩니다. 좋은 전시장과 공연장은 인천 외부의 훌륭한 예술가들을 인천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아이돌과 유튜버 이외에도 다른 예술을 통한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온라인으로 사기 시작하자 대형 서점들은 매장을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을 읽는 곳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일상의 가까운 곳에서 책을 접하는 기회를 늘림으로써 사람들이 더 많은 책을 원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결국 더 많이 접할수록 더 많은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시대는 공공영역에서도 흑자를 내야 하는 시대이지만, 어떤 부분은 당장의 손해를 감수할 때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글 /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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