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2019 노벨문학상

지난해 노벨문학상 선정 종신위원의 남편이 성(性) 추문에 휩싸이고, 내부 부정회계 갈등이 불거지면서 수상자 공표를 한 해 미룬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월 10일 두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했습니다.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57)와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77)가 그 주인공입니다.

2018년 맨부커상 수상에 이어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카르추크는 1962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바르샤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습니다. 현재 폴란드에서 가장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신화와 전설, 외전(外典), 비망록 등 다양한 장르를 차용해 인간의 실존적 고독, 소통 부재, 이율배반적인 욕망 등을 섬세한 시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먼저 주목할 만한 작품은 『태고의 시간들』(1996)입니다. ‘태고’라는 이름을 가진 가상공간을 배경으로 20세기의 야만적 현실을 마주한 주민들의 삶을 84편의 짧은 장편(掌篇)으로 기록했습니다. 1‧2차 세계대전, 전후 폴란드 국경선의 변동, 냉전체제와 사회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건들이 신화와 어우러져 장엄한 우화를 완성합니다. 이 작품은 폴란드에서 40세 이전 젊은 문인들에게 주는 코시치엘스키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공통분모로 100여 편의 글을 씨실과 날실로 엮은 『방랑자들』(2007)은 2007년 폴란드 최고 문학상인 니케 문학상에 이어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에 빛나는 작품입니다. 『죽은 자들의 뼈에 쟁기를 끌어라』(2009)도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체코와 폴란드 국경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추리소설로, 에코 페미니즘 성향이 도드라집니다. 작가는 동식물을 인간과 동등한 생태계의 일원으로 인식하며 자연 파괴와 동물 사냥을 일삼는 인간의 잔인성에 준엄한 경고를 보냅니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문화인류학과 철학에 조예가 깊고, 특히 칼 융의 사상과 불교 철학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설이야말로 국경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심오한 소통과 공감의 수단”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네요.

올가 토카르추크
출처:뉴시스

페터 한트케는 1942년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라츠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4학년 재학 중에 쓴 소설 『말벌들』로 등단했습니다. 1960년대 말 독일 문학의 주류였던 참여문학에 반대하고(그해 미국에서 개최된 ‘47그룹’ 회합에 참석해 당시 서독 문단을 이끌었던 47그룹의 참여문학에 맹렬한 공격을 퍼붓기도 했다) 언어내재적 방식에 주목해온 작가입니다.

한트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그가 24세에 집필한 희곡『관객모독』입니다. 1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서너 사람이 아무렇게나 입고 나와 관객에게 말을 걸며 잡담을 늘어놓는 형식을 취합니다. 1960년대에 지배적이던 교훈적 연극에 반기를 든 것으로 연극 자체에 집중하면서 배우와 관객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했습니다.

골키퍼 출신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1970)에는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며 납득하기 힘든 언행을 일삼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독일어로 쓰인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1972년에 빔 벤더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습니다. 오랜 우울증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소망없는 불행』(1972)도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한 여성이 억압적 굴레에서 벗어나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을 그렸으며 한트케는 이 작품을 영화로도 제작했습니다.

근작인 『야고보서』(2014)는 역사 소설가로서의 역량을 입증한 작품입니다. 18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 시대에 메시아를 자처하며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를 통합하려 했던 유대인 ‘야쿱 프랑크’와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을 추적합니다. 부제는 ‘일곱 국경과 다섯 언어, 그리고 세 개의 보편 종교와 수많은 작은 종교들을 넘나드는 위대한 여정’이네요.

페터 한트케는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1967년 게르하르트 하웁트만 상, 1972년 페터 로제거 문학상, 1973년 실러 상 및 뷔히너 상, 1978년 조르주 사둘 상, 1979년 카프카 상, 1985년 잘츠부르크 문학상 및 프란츠 나블 상, 1987년 오스트리아 국가상 및 브레멘 문학상, 1995년 실러 기념상, 2001년 블라우어 살롱 상, 2004년 시그리드 운세트 상, 2006년 하인리히 하이네 상 등 많은 상을 석권한 바 있습니다.

페터 한트케
출처:연합뉴스

페터 한트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 반발하는 무리도 있습니다. CNN과 로이터통신 등은 10월 11일(현지시간) 수상 철회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친세르비아 성향 가정에서 태어난 한트케는 ‘발칸의 도살자’로 불렸던 전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 대통령 밀로셰비치(1941~2006)를 옹호해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밀로셰비치는 1990년대 유고 내전 당시 세르비아 민족주의와 소패권주의를 내세워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 등 발칸 곳곳에서 인종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알바니아계를 상대로 ‘인종 청소’를 벌이는 등 20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300만 명을 난민으로 전락하게 만들었습니다.

밀로셰비치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던 한트케는 밀로셰비치가 전범 재판을 기다리다가 구금 중 숨을 거두자 그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기도 했습니다. 대량학살을 주도한 범죄자를 옹호했다는 논란이 일자 한트케는 “밀로셰비치는 영웅이 아닌 비극적 인간이다. 나는 작가일 뿐 재판관이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이로 인해 더 큰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학살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한림원의 결정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거셉니다. 생존자들은 “부끄러운 일이다”며 한림원 측에 노벨문학상 선정 취소를 촉구했고 유고 내전 피해자 측인 코소보의 블로라 치타쿠 주미대사는 트위터를 통해 “훌륭한 작가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노벨위원회는 하필 인종적 증오와 폭력의 옹호자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며 “증오를 토해내는 이들을 옹호하거나, 정상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코소보에서 출생한 젠트 카카즈 알바니아 외무장관도 “인종청소를 부인하는 인물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다니 끔찍하다”며 “2019년에 우리가 목격하는 이 일은 얼마나 비열하고 부끄러운 행태인가”라고 비판했습니다.

코소보에서 학살된 알바니아인 장례식
출처:연합뉴스

무등일보에 ‘노벨문학상 논란 착잡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은 조덕진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국장은 글머리를 “인류가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인가”로 시작했습니다. 그는 “문학 인사들의 심각한 친일 행적과 해방 후 남한 사회에서 이들이 사회적 권력을 독식해온 것을 지켜본 우리로서는 남 일 같지 않다”며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엔 이들의 친일 행각을 꺼낼 수도 없었다. 독재정권의 레파토리가 ‘정치는 정치고 문학은 문학’”이라고 강조했습니다.

“21세기, 세계 최고의 독립적이고 존경받는 재단이 같은 단어와 뉘앙스를 들고나온 건 세기의 불행이다. (중략) ‘정치상이 아니’라는 노벨위원회의 설명은 인류에게 불행하다. 비정치적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정치적이어서다. 인류나 생명에 대한 존중이 어떠하든, 기교만 빼어나면 된다는 메시지를 줄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매츠 말름 스웨덴 한림원 상임비서는 “수상자는 문학적, 미적 기준으로 선정됐다”며 “정치적인 고려사항과 문학적 우수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은 한림원의 권한이 아니다”라고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해명했습니다. 한림원 일원인 안데르스 올손도 “이는 정치적인 상이 아니고 문학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네요.

서점에 진열된 올가 토카르추크와 페터 한트케의 작품들. 수상 전 1주일에 한 권씩 팔리던 책이 수상 이후 나흘 동안 828권, 607권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각각 118배와 87배 증가했습니다. 구매하는 연령은 40대가 35.8%, 38.3%로 1위를 차지했고, 남녀성별은 4대 6 정도로 여성 독자의 비중이 조금 높았습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글 / 이재은(뉴스큐레이션)

*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동시에 발표된 2018‧2019 노벨문학상…인간의 실존 탐색한 토카르추크, 선정 1년만에 수상
백세시대, 2019.10.1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전범 옹호자’ 노벨문학상 논란…“수치” vs “정치상 아냐”
연합뉴스, 2019.10.12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3. <윤성은의 문화읽기> 노벨문학상 수상자 논란‥대표작에 관심
EBS뉴스, 2019.10.1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4. 문학상 어디까지 알고 있니? 노벨상밖에 모르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
북DB, 2019.10.1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5. 노벨문학상 논란 착잡하다
무등일보, 2019.10.1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6. 올 노벨문학상, 폴란드 토카르축·오스트리아 소설가 한트케 수상
뉴시스, 2019.10.1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