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생태계를 지켜나가기 위한 한 작가의 멈추지 않는 꿈틀거림, 백인태 개인전 <고라니>
[출처] 인천문화큐 아이큐 홈페이지
10월 10일부터 10월 31일까지 인천 아카이브까페 빙고 옆의 갤러리 옹노에서 진행되고 있는 백인태 작가의 개인전 <고라니>를 관람했다. 2019년 인천문화재단 인천형예술인지원사업 공모에서 인천예술인 생애주기 맞춤형지원 중진예술가로 선정된 백인태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그간 발표하지 못한 작업 회화, 텍스트, 그림책과 10년간의 작업물을 모은 작품집 <고라니>를 동시에 출간할 예정이다. 백인태 작가만의 색깔이 느껴지는 짧은 에피소드 식 이야기와 시, 드로잉이 주를 이루는 작품들로 꾸며진 전시에는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냉소적이고 염세주의적인 생각들이 관객들에게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을 전하고 있다.
[출처] 직접촬영
‘보호받아야 하지만 퇴치 대상이 된 고라니, 나의 생태계는 나 스스로 지켜나간다.’
이번 개인전의 제목이자 작품집의 제목인 <고라니>.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의문스러웠는데, 전시장에 걸려 있던 이번 개인전을 위한 고경표 독립큐레이터의 글을 통해 그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세계적으로는 멸종 위기 동물로서 보호받아야 할 고라니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유해조수로 분류되어 보호는 커녕 퇴치의 대상으로써 취급당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고라니를 지킬 수 있는 것은 고라니 자기 자신밖에 없을 터. 작가 역시 다양한 예술 활동이 이뤄져야 하는 오늘날의 세상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젊은이들처럼 그의 예술 활동을 자유롭게 펼치기에는 여러 가지 제한점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술 활동만으로는 녹록지 않아 생계를 위해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예술세계가 아직 진행 중임을 입증하기 위해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시장 2층의 나무 바닥에서 발견한 ‘꿈틀대지 않으면 죽은 줄 알더라.’라는 그의 문구처럼, 다양한 형태의 꿈틀거림을 통해 백인태라는 작가의 예술세계가 살아 있음을 이번 전시를 관람하는 이들에게 외치고 있다.
[출처] 직접촬영
‘웃기다가 씁쓸하기도 하고, 가볍다가 무겁기도 하고, 자꾸 곱씹으면 무섭기도 슬프기도.’
다소 투박하고 거칠어 보이는 전시 공간(전시 공간과 작품의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에서 만난 백인태 작가의 작품들은 다양한 형태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다소 음울하거나 냉소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회화 작품들은 어둡고 무채색의 계열에 힘없이 늘어지거나 괴기스러운 그림의 형태들도 많았다. 한 가지 관람 팁을 전한다면 전시장 나무 벽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구멍 안을 꼭 살펴보도록 하자. 단순하게 뚫린 구멍이 아니라 그 안에는 백인태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냥 관람하기보다 작은 구멍 사이로 바라보는 회화 작품들은 왠지 작품에서 전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더 고조 시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 같다. 좀 더 직접적으로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짧은 텍스트는 전시장 벽과 바닥 곳곳에 작가가 낙서한 느낌으로 마주 할 수 있다. 웃기고 재치 넘치다가도 결말 부분에서는 세상의 어두운 단면을 여과 없이 마주한 것 같은 씁쓸함과 찝찝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볍게 쓴 짧은 문구들도 자꾸 곱씹으면 무섭거나 슬프기도 한데 툭툭 관객들에게 다가오는 작가의 작품을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어렵지 않았고 낯설지 않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들을 누구나 표현할 수 없는 방법과 결과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 또한 예술의 한 모습이 아닐까. 오늘도 각자 생태계를 고군분투하며 지키고 있을 고라니를 위해 그들의 내면에 담긴 세상을 향한 작은 투쟁을 한 예술가의 꿈틀거림으로 대신 전달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고라니를 만나러 가보길 추천해본다.
글·사진 /
김지인 시민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