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따라 걷다 – 인천둘레길

우리는 일생 동안 수많은 길을 걷는다. 걷는다고 표현했지만 길이란 단순히 걸어서만 이동하는 곳은 아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도로도 있고 기찻길도 있다. 또한 바다와 하늘에도 보이지 않을 뿐이지 배와 비행기가 다니는 수많은 길이 있다. 우리의 삶은 길을 벗어나서는 생각하기 힘들다.

우리는 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접한다. 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확인하고 그들의 행동과 생각을 알아 간다. 또한 다른 이들과 접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소통과 교류를 하기도 하지만 다투고 분열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길에는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고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역사도 있고, 문화도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길은 문명의 소통을 상징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에는 고대 로마가 문명의 중심지였음을 나타내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동서 문명 간의 교류사에서 실크로드라는 길이 차지한 역할은 굳이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

대한민국 제3의 도시 인천에도 많은 길이 있다. 그 길들은 도시 한복판에도, 바닷가에도, 산속에도, 먼 외딴 섬에도 있다. 또한 인천은 한국이 세계와 통하는 항구와 공항이 있어 바닷길과 하늘길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러한 인천의 다양한 길 중 역사와 문화, 자연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인천둘레길’이다.

인천둘레길은 평소에 걷기나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일 것이다. 물론 많은 일반 시민들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둘레길이라는 명칭을 모르더라도 평소에 걸어봤던 길일 수 있다.

인천둘레길은 S자 녹지축으로 일컬어지는 인천의 녹지 공간을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지키고 많은 시민들이 그곳을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0년부터 조성되었다. 인천의제21실천협의회(현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산이나 하천 주변의 아름답고 걷기 좋은 길을 이어나갔다.

인천둘레길 코스
출처: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안내책자

인천둘레길은 계양산(제1코스)부터 시작하여 천마산, 원적산, 만월산, 인천대공원, 장수천, 소래습지, 문학산, 청량산 등을 거쳐, 송도국제도시, 남서쪽 해안길, 중구와 동구의 구도심까지 이어지는 14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강화도 마니산과 옹진군 장봉도에도 각기 15, 16코스가 지정되어 있다. 인천둘레길은 기본적으로 인천의 소중한 환경과 생태를 경험해 보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공부해보면 그곳에는 다양한 역사와 문화의 이야깃거리들이 쌓여 있다. 그러한 이야깃거리들은 인천의 둘레길을 걷는 즐거움을 더 크게 만들어 준다.

1코스부터 9코스는 주로 산을 지나거나 하천 주변을 따라가는 길이다. 계양산성의 유구한 역사와 이규보의 삶이 스며있는 계양산(1코스), 과거 민중들의 한과 아기장수 설화가 깃든 천마산(2코스), 인천의 역사가 시작된 미추홀의 중심지 문학산(8코스) 등을 경험할 수 있다.

8코스와 9코스가 이어지는 삼호현

계양산의 이규보 시비(詩碑)

둘레길에서는 산을 걷는 즐거움과 함께 도시의 발달과 변천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인천의 구도심을 걷는 11~14코스가 바로 그곳이다. 산지 코스를 지나 인천의 구도심인 중구와 동구 지역의 11~14코스에 들어서면 더욱더 많은 인천의 추억들이 전한다. 구도심의 복잡한 골목길과 달동네를 지나며 도시 서민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11코스, 중구 근대 개항장과 자유공원, 차이나타운을 지나는 12코스, 전쟁의 아픈 기억이 있지만 지금은 문화와 여가의 공간이 된 월미도를 돌아보는 13코스, 북성포구·만석부두·화수부두 등 인천의 옛 부두를 지나는 14코스까지…이 네 개의 코스에는 근현대 인천 도시의 발전 모습과 그에 얽힌 수많은 추억들이 담겨 있다.인천둘레길에는 자연과 생태, 역사와 인간, 문화가 함께 녹아있다. 인천둘레길에 얽힌 다양한 역사와 문화의 이야기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공부해보자. 그렇게 공부하고 난 뒤에는 둘레길을 걷는 즐거움이 더욱 커질 것이다.

월미산(13코스)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북성포구(14코스)의 모습

글 · 사진 /  안홍민(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