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도 일터도 아닌, 그 어딘가. – 제3의 장소, 카페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 대한 글입니다. 공간 활용에 대하여 명확한 판단을 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이 글을 통해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얼마 전 제 눈에 띈 주요 일간지 기사가 하나 있습니다. 판교를 시작으로 신도시 단독주택용지(제1종 일반주거지역)의 주택 건축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덧붙이자면, 판교의 단독주택용지에는 공동체 도시 형성을 위해 각 주택에 담장을 쌓지 못하고, 고작해야 1.2m 이하의 나무를 심는 것만이 가능하도록 지구단위계획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입주민들은 담장을 만들지 못하는 것을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건물을 채우고 도로 쪽으로는 큰 창을 내지 않으며, 대신 내부에 중정을 배치하는 일종의 ‘요새’가 늘어선 동네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지구단위계획을 입안한 계획가들은 길을 따라 늘어선 담장을 없애고자 했겠지만, 오히려 일반적인 담장보다 훨씬 높은 3층짜리 장벽이 길가를 막아서는 동네가 된 것입니다. 기사에서는 이런 주택들이 판교뿐 아니라 최근 조성되는 신도시의 단독주택용지에 널리 퍼지고 있으며, 일각에서 “자폐주택”이라는 비판까지 받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의 거주 환경의 기본 형태는 이미 아파트, 빌라 등 층층이 쌓인 공동주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단독주택을 선택하는 것, 더구나 노년층의 귀향이 아닌 중년층의 단독주택 선택은 일종의 도피입니다. 층간 소음으로부터의 도피, 주차난으로부터의 도피, 불가피한 이웃과의 접촉으로부터의 도피.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단독주택을 위해 토지를 구매하는 것은 우리 가족이 대지 지분의 일부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내 땅 안으로, 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담을 없애는 것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고, 결과적으로 집을 담 삼아 도로로부터 등을 돌려 앉는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최근 중정형 단독주택 트렌드를 보여주는 주택들.
담장은 없지만 담장보다 몇 배는 높은, 창문 작은 건물이 대지 끝까지 메우고 있습니다.
단독주택을 지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공동체인지, 온전한 그들의 삶인지 계획가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출처: VMSPACE(좌), 한국일보(우))

오래 전 저는 송도의 쇼핑몰들이 공공 가로에서 등을 돌리고, 길마저 자신들 안으로 포섭해버린 것을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택에도 같은 가치를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오늘날 다양한 영역에서의 공동체가 다시 강조되고 있지만, 가정과 주택은 어떤 부분에서는 지금보다 더 프라이버시가 존중되어야 하는 개인의 영역입니다. 비록 게이티드 커뮤니티와 같은 문제가 지적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현대의 공동체성은 더 이상 옆집과 담을 마주해서,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같이 공놀이를 해서, 이사 오면서 떡을 돌려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만들어지고, 유튜브에서 증폭되고 있습니다. 점점 사회가 파편화되고 있다는 염려 속에서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매개 삼아 공동체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공동체는 SNS와 스마트폰 안에 잠복해 있지만, 세상에 드러나야 할 때 과거보다 더 강력하게 존재를 드러냅니다. 수년 전 광화문에서, 강남역에서 그러했고, 최근 대학가에서도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 ‘근접성 없는 공동체’가 우리 삶에서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할수록 점차 지역공동체 속에서의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집니다. 일찌감치 출근해서 늦게까지 일하며, 맞벌이가 일상화된 도시의 삶에서 퇴근 후에, 혹은 주말이 되어야 면대면의 기회를 기대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는 내가 인터넷을 통해 직접 선택한 공동체에 비해서 덜 중요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점점 우리 삶에서 지역공동체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삶 속에서 우리 동네, 우리 지역의 이슈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더 많은 매체, 더 많은 네트워크에 접속하면서 국가 차원의 이슈나 세계적인 갈등엔 익숙하지만, 정작 우리 동네 안에서 어떤 이슈가 생겨나는지는 잘 모릅니다. 또 나 스스로도 별다른 이슈를 제기하지 못하게 됩니다. 도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지방자치가 더 성숙하기를 기대하며, 지역 정치의 필요성에 공감합니다. 유럽 사회에서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거리낌 없이 감수하며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서 주민들이 끊임없는 의논을 통해 접점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훌륭한 모델로 여깁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 우리 도시 속에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그런 시스템의 기반을 기대할 수 없게 합니다. 기나긴 업무 시간이 지나면 집으로 들어가기 바쁘고, 여가 시간이 동호회나 SNS 활동으로 소비되는 동안 지역 사회의 이슈는 우리 삶으로 들어올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그 결과 동네는 나의 의사나 관심과 상관없이 변하고, 나는 동네에 더욱 애정을 잃는 악순환이 지속됩니다.

1989년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미국 사회에서 가정과 직장 이외에 평등하고 일상적인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는 수단으로 ‘제3의 장소’를 제안합니다. ‘제3의 장소’는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기 위한 자발적 공간이고, 사회적 위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격식 없는 공간이며, ‘비공식적인 공공생활’을 위한 장소입니다. 올든버그는 제3의 장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소로 주로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 사람들이 사랑방처럼 모이는 술집을 예로 듭니다. 그래서 제3의 장소는 일견 가정과 직장으로부터의 해방구로 인식되곤 합니다.

하지만 올든버그가 주장하는 제3의 장소의 진짜 의미는 동네 사람들이 사회적 계층 관계를 벗어나 평등하게 만날 수 있는 장소이며, 지역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장소이며, 그로 인해 지역 정치가 생성되고 발전하는 장소입니다. 제3의 장소를 단순히 가정과 직장 사이의 해방구로 이해하면 이미 한국 사회에서는 넘쳐나는 먹자골목과 음주문화로 충족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장소를 다시 이해하고 나면, 제3의 장소는 지역공동체 재생의 도구이자, ‘기초 의회 무용론’을 제기하는 일상적 시각과 제도와의 괴리를 줄이는 접점이 됩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커피 프랜차이즈인 스타벅스는 여전히 진동벨 대신 직원이 목소리로 손님을 부르는 방식을 고수합니다.
음료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조금이라도 접점을 갖게 하려는 창립자의 고집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프랜차이즈 카페는 점점 더 비장소적인 성격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출처: 한겨레(좌), 조선비즈(우))

우리 사회에서 제3의 장소의 가능성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은 카페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오늘날 카페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선 더 빠른 회전과 더 많은 F&B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확대하려는 대규모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습니다. 이런 곳들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장소이지만, 이곳에서는 운영자와 이용자 간의 친교를 만들기 어렵고 동네마다 다른 경험을 얻기도 불가능합니다. 이 공간들은 제3의 장소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비장소’-마르크 오제의-에 가깝습니다.

또 한 부류는 가장 트렌드에 민감한 SNS에 최적화된 카페들입니다. 이들은 더 예쁘고 사진에 잘 나오는 메뉴를 개발해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좌석을 둘러싼 네 방향은 모두 다른 느낌의 포토월이고, 여기서 찍은 사진들은 SNS로 공유됩니다. 이런 공간은 도시의 여느 상업 공간들처럼 스펙터클로 기능합니다.

마지막 부류는 일부 주택가로 스며든 작은 카페들입니다. 동네의 소규모 갤러리나 책방, 수공예품 가게가 카페를 겸업하는 경우도 이런 부류에 속합니다. 이런 공간들은 언제든 도시의 스펙터클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3의 장소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들입니다. 동네 카페들은 낮은 매출과 높은 임대료 사이에서 생존을 고민하는 전장이기도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매일의 한 부분을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소입니다. ‘원데이 클래스’나 독서 모임 등을 만드는 카페들은 최근의 ‘근접성 없는 공동체’의 일부를 다시 지역에 착근하도록 손을 잡아 이끕니다. 이런 장소들은 사람들이 취향에 따라 선택했던 네트워크와 공동체가 우리 지역 안에도 존재함을 다시 깨닫게 합니다. 이런 접점이 더 잦아지고 많아질 때, 비로소 우리는 아주 조금씩 지역의 이슈를 발견하고 나의 관점이 생겨나며, 주변과 인식을 공유하고, 지역사회를 바꾸어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느리고 지난한 과정이고 결과를 담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저 더 많은 이야기를 지역 안에서 나눌 수 있다는 것 하나로 공동체는 조금씩 갖추어지고, 우리 동네의 정치도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레이 올든버그, 2019, 제3의 장소, 김보영 역, 풀빛
마르크 오제, 2017, 비장소, 이상길·이윤영 역, 아카넷
이종범, 2017, 서울보다 멀고 제주보다 가까운 인천의 카페들, 스펙타클 프로젝트
“담장 없애랬더니 집 요새화…판교의 ‘중정형’ 단독주택”, 중앙일보, 2019.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