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살롱문화
살롱(Salon)은 프랑스어로 ‘방’을 뜻합니다. 17~18세기, 지성과 예술을 겸비한 이들이 ‘지적 대화’와 ‘사교 욕망’을 동시에 충족하던 공간이죠. 이러한 ‘살롱문화’가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재발견되고 있습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인문학 강좌, 독서토론, 글쓰기, 피아노 연주, 연극 워크숍 등을 함께 하며 교류합니다. 수백 년 전 프랑스의 살롱이 신분과 계층을 막론한 이해의 장이었듯, 현대판 살롱 역시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습니다. 나이와 성별, 직업을 막론하고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죠.
역사적으로 살롱문화는 ‘사교의 장’, ‘대화의 장’, ‘지적 토론의 장’, ‘계층 간 이해의 장’ 등 근대를 변화시킨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17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한 살롱은 여성 주도의 문학 공간이었는데요, 가벼운 술을 곁들인 식사와 함께 문학 서적을 읽고 토론하곤 했습니다. 초기의 살롱이 문학에 중점을 두었다면 한 세기가 지난 뒤부터는 새로운 사상을 창출하고 전파하는 전령사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문화는 20세기까지 이어져 영화의 새 물결을 만든 프랑스의 ‘누벨바그’를 탄생시키기도 하죠. ‘68혁명’의 기틀이 여기서 나왔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18세기 프랑스의 시민 출신인 조프랭 부인이 운영했던 살롱.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 출입했던 ‘담론의 장’이었다.
출처 : 서울신문
한국판 살롱문화의 시작으로는 독서모임 기반 커뮤니티 ‘트레바리’를 꼽을 수 있습니다. 2015년 회원 80명으로 시작해 4년 만에 유료 회원이 약 5600명까지 늘었습니다. 대중에게 알려진 이가 호스트가 돼 이야기 주제를 던지면 이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 뒤 오프라인 공간에서 토론합니다. 멤버들은 한 달에 한 번 책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독후감을 늦게 내거나, 아예 내지 않으면 참여를 제한받는 등 규정도 엄격합니다.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취향관’은 유료 회원제 사교 클럽을 표방합니다.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참가비를 내면 취향관의 멤버가 될 수 있죠. 1980년에 지어진 2층 양옥집을 개조한 도심 속 아지트에서 정해진 기간에 ‘영화 비평’, ‘지나간 시간에 보내는 편지 쓰기’, ‘시를 읽고 연상되는 사진 찍기’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기게 됩니다.
‘묻고토론한다’의 ‘문토’ 또한 소셜 살롱을 지향합니다. 문토가 여타의 모임과 다른 점은 “좋아하는 것이 명확하며, 주제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리더가 함께한다는 겁니다. “현대 미술 모임에서는 미술 전문지 에디터가 리더로 참가해 동시대 현대 미술의 지금을 살펴보고 미술관에서 작품을 함께 관람”하는 방식입니다. 요리·미식, 경제·경영, 음악, 글쓰기, 드링킹(Drinking) 등 문토에서 즐길 수 있는 범위는 꽤 넓습니다.
‘버핏서울’은 살롱문화에 운동을 결합하고, ‘다노’는 다이어트와 커뮤니티에 살롱을 적절히 섞었습니다.
취향관의 ‘콜라주 포스터 만들기’(좌)와 ‘생략하며 그리기’(우) 활동 모습
출처 : 서울경제
문토의 다양한 커뮤니티 모임
출처 : 데일리팝
살롱은 취향 공동체의 다른 이름입니다. 취미가 여가를 소비하는 ‘거리’를 일컫는다면, 취향은 좋아하는 무언가로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만나게 합니다. 살롱문화에서는 가족이나 이웃, 직장에서 맺은 관계와 달리, 적극적이고 자의적인 연대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속박하지 않고 언제든 쿨하게 돌아설 수 있는 느슨한 교감을 나누는 거죠. 유민영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겸 에이케이스 대표는 “느슨한 네트워크는 힘이 세다”고 말합니다. “특수한 경험의 축적이 새로운 분류 기준”이며, “특별한 커뮤니티가 자산”이 된 겁니다.
살롱은 ‘광장’과 ‘밀실’ 사이에 존재합니다. 광장이 완전 개방된 공간이고, 밀실이 배타적 속성을 지닌 폐쇄적 공간이라면, ‘살롱’은 취향이라는 필터로 한 번 걸러진 이들을 위한 ‘반(半) 개방성’의 공간입니다. 객관적인 정보와 지식은 인터넷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기만의 스토리와 주관적인 경험이 더 값지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살롱에 모입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같은 경험, 다른 생각’을 알고, 자기만의 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이들이 추구하는 지점입니다.
출처: 노컷뉴스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IT에 능숙하고 교육 수준이 높습니다. 하지만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세대’라는 특징도 갖고 있죠. ‘평생직장’이 사라진 요즘, 소속감을 맛보기 어려워진 이들은 살롱문화를 통해 ‘울타리 쳐진’ 느낌을 받는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합니다. 탑클래스의 김민희 기자는 “그들은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떨 때 기쁘고 어떨 때 감동을 하는지 등 마음의 소리 청취에 강하다.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은 곧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취향 공동체인 살롱문화의 주축이 밀레니엄 세대라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언급했습니다.
TV와 신문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에 믿음이 높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는 SNS 등의 플랫폼에서 신뢰할 만한 이들을 찾습니다. 그들을 팔로우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죠. 모바일을 통해 정보의 대부분을 습득하는 이들에게 SNS 플랫폼은 훌륭한 마케팅 창구입니다. 이 세대는 자신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영혼의 양식이 되고 성장에 밑거름이 되는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겁니다.
출처 : 노컷뉴스
이른바 ‘룸살롱’이나 ‘헤어살롱’을 연상케 하던 살롱이 본연의 의미와 역할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자체도 살롱의 유행에 힘을 보태고 있는데요, 대구의 혁신 신약 전문가들의 학술토론 모임은 ‘혁신신약살롱’, 성북정보도서관 2층은 ‘성북살롱’, 완주군 팝업 스페이스는 ‘누에살롱’, 경주시 관광두레사업은 ‘관광두레살롱’입니다. 파주시는 5060을 위한 문화공간을 ‘꽃보다 문화살롱’으로 명명했습니다. BMW의 자동차 관련 프로그램 이름은 ‘오토살롱’이네요.
지난 7월, 인천시가 개관한 ‘개항살롱’은 개항장 도시재생 사업 관련, 주민과 관광객, 전문가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중구 자유공원서로 37번길에 자리 잡은 개항살롱은 2층 주택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주민커뮤니티 공간과 세미나실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누들플랫폼 건립사업, 제물포구락부 재활용 사업 등 개항창조도시 재생사업 정보를 얻을 수 있죠. 더불어 개항장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LG전자는 살롱문화를 도입하며 조직 혁신에 나섰습니다. 지난 6월 서울 양재동 서초 연구개발 캠퍼스 1층에 ‘살롱 드 서초’를 열었는데요, 연구원들이 소속이나 직급에 상관없이 자기의 생각과 지식을 나누고 문화 활동을 즐기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할 계획입니다. ‘살롱 드 서초’는 광장을 모티브로 설계해, 계단형 좌석에 의자와 테이블을 배치하고 대형 사이니지 디스플레이도 설치했습니다. 임직원들은 이곳에서 LG 테드, 문화공연, 기술 세미나 등의 활동을 할 수 있죠.
서울 양재동 서초R&D캠퍼스 1층 ‘살롱 드 서초’에서 한 직원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출처 : 한국일보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이 운영하는 신사복 브랜드 ‘캠브리지 멤버스’는 강남 플래그십 매장을 ‘살롱 캠브리지’로 재단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살롱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존으로 구성했죠. 디자인, 패션, 건축 등을 다루고 있는 서적은 물론 LP로 올드 팝도 즐길 수 있습니다. 살롱문화에 빠질 수 없는 차와 커피를 마시는 공간도 마련돼 있습니다. 고객이 지불하고 싶은 만큼 결제하여 모은 커피 수익금은 NGO 단체에 기부됩니다. 관계자는 “패션을 즐기는 남성 고객들에게 이 시대의 살롱문화를 제안하면서 40년을 함께 해온 고객들에게는 향수를, 그 가치를 지켜나갈 새로운 고객들에게는 뉴트로의 진수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네요.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
출처 : 이데일리
한국의 살롱문화가 2~30대를 주축으로 확산하고 있다면 고령사회인 일본은 노년층이 중심입니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일본의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592만여 명이었습니다. 이 숫자가 2025년에는 700만 명, 2035년에는 762만 명이 될 것으로 추산됩니다. 4가구 중 1곳은 노인 혼자 사는 ‘1인 고령 가족’이 될 거란 얘기죠.
‘시니어 살롱’은 노인 인구가 많은 지방에서 활발하게 이뤄집니다. 가까이 사는 5∼10여 가구가 모여 살롱을 열고, 취미나 관심사를 공유한다는 점은 한국의 살롱문화와 비슷합니다. 이들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봉사활동을 다니기도 하죠. 홀로 사는 노인 집에 일손이 필요하면 살롱 단위로 도움을 주는 모습은 한국의 품앗이, 경로당 문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일본은 10여 년 전부터 고령사회에 대비하는 노후 문화를 연구해 왔는데 그중 하나가 한국의 경로당이었습니다. 일본은 이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했습니다.
시니어 살롱은 노인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도 도움을 줍니다. 주기적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신체활동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죠. 살롱에 모이는 것은 일종의 사회 참여로, 외출복을 입고 매무새를 가다듬는 것이 치매 예방에 긍정적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고독사를 방지하는 대안이 될 수도 있죠.
글 /
이재은(뉴스큐레이션)
*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복세편살] ‘새로운 관계’가 뜬다, 21세기 ‘살롱문화’ 르네상스
서울경제, 2019. 7.28 (바로가기▶)
2. 퇴근 후 ‘살롱’으로 가는 밀레니얼
노컷뉴스, 2019.8.11 (바로가기▶)
3. 취향으로 소통한다…살롱문화에 열광
데일리팝, 2019.7.26. (바로가기▶)
4. 밀레니얼 세대의 아지트 살롱에 가실래요?
노컷뉴스, 2019.8.7 (바로가기▶)
5. 현대판 살롱의 열 가지 속성-때아닌 살롱 부활, 왜?
탑클래스, 2019년 5월호 (바로가기▶)
6. ‘노인 천국’ 日, 시니어 살롱으로 고독사 예방
세계일보, 2018.11.24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