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민 CHUNG Heemin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소개
올해 한 해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창작활동을 펼쳐나갈 2019년도 10기 입주 예술가를 소개합니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는 공모로 선정된 국내외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창작 역량 강화를 위해 비평 및 연구 프로그램, 창·제작 발표지원 프로그램 등을 운영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시각과 공연분야에서 활동하는 10기 입주 예술가의 창작과정과 작업세계를 공개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정희민은 홍익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과 전문사 과정을 이수했다. 작가는 첫 개인전 《어제의 파랑》(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2016)을 시작으로, 게임이나 광고 이미지, 3D오브젝트 등과 같이 휘발성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이미지의 전략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작업의 소재로 삼아왔다. 회화를 매개삼아 물리적인 실체보다 이미지로 먼저 파악되는 세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실재를 감각하는가’, 또는 ‘정체성이라는 단어는 유효한가’ 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언어, 인지방식 등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또한 디바이스에 잠식된 현재의 세계에서 회화 혹은 물질이 가질 수 있는 의미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며 작업하고 있다. 아크릴의 물성을 실험해왔고, 한 화면 위에서 서로 다른 물질들이 만나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표현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UTC-7:00 JUN 오후 세시의 테이블》 전시 전경_금호미술관_2018

# Q&A
Q.
창작의 관심사와 내용, 제작 과정에 대하여
A. 나는 스크린 안팎으로 세계를 마주하며 느끼는 것을 그림에 담아낸다. 스크린 속의 세계는 완벽한 알고리듬(algorithm)으로 작동되는 세계로, 끊임없이 환영을 제공한다. 그것이 가진 질서 혹은 규율과 무질서한 현실의 대비로 생기는 일종의 착오들이 나의 작업의 시작점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보고, 보는 것이 신체의 많은 감각을 대체하며, 손가락 끝으로 사고하는 것이 익숙해진 세계에서 무엇이 실재인가를 구분해내는 일이 무의미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또한 스크린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현실의 시각을 압도하게 될 때도 있다. 나는 그런 ‘지금’의 공간 안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사물들을 관찰하며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특정한 감각이나 그에 적응하기 위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질적인 환영들이 뒤섞이는 공간을 물성 간의 차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Three Faces 3_Acrylic on Canvas_80×130cm_2018   Faces 1_Acrylic on Canvas_33×53cm_2018

최근에는 모델링 툴을 이용해서 공간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주로 한다. 전시를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모델링 툴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경험한 기묘한 몰입감이 지금 하는 작업들의 모티베이션(motivation)이 되었다. 검색을 통해 여러 사람들이 만든 가상의 사물들을 만져보고, 그것을 다시 가공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그것들은 사람들 각자가 인지하는 사물 혹은 대상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재현해낸 것들인데, 그렇게 결이 다른 모습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나는 작업은 먼저 모델링 툴과 그래픽 툴로 거의 완성에 가까운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을 어떻게 물리적으로 구현하는지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구현이 가능한 것인지 확인하는 과정 없이 스케치를 하는 것이 새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보통 에어브러시를 사용해 바탕이 되는 공간을 그리고, 그 위에 다시 페인팅 미디엄을 이용해 레이어(Layer)를 만들어낸다. 중간 중간에 브러시를 이용해 이질적인 레이어를 넣기도 한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프로세스는 거의 그래픽 툴의 이용방식과 흡사한데, 이미지와 물성을 사용하는 방식 자체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각의 가장 큰 부분이기도 하다. 평면이 가진 매체로서의 한계적인 조건들을 언어적으로 잘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다.

《Subscale》 전시 전경_갤러리 룩스_2018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이 이유는 무엇인가?
A.
가상의 정물들을 통해 정체감에 대해 이야기했던 두 번째 개인전, 《UTC-7:00 JUN 오후 세시의 테이블》(금호미술관, 2018)은 나에게 향후 어떤 조형 언어로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가 되었다. 이 전시는 ‘꿈’에 대한 이야기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을 배치한 가상의 테이블을 만들었고, 그중 나는 하나의 사물이 되어 공간 안을 떠다니며 본 장면들을 그림과 글로 그렸다. 이 사물들이 가진 덩어리감을 강조하기 위해 텍스처 없이 기본적인 구조와 명암, 그림자만을 활용해 형상을 그렸고 그 위에는 겔 미디엄과 유화물감을 활용한 비정형의 얼룩들을 남겼다. 나는 정물들이 놓인 가상의 공간이 가진 속성이 꿈의 속성과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하여 내가 생각하는 스크린 속의 세계를 은유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 공간은 광활하고, 끊임없이 증식하며, 절대로 늙지 않고, 쉽게 모습을 바꾸며 허물어졌다가 생성되기를 반복한다. 한 개인이 그런 유연하면서도 압도적인 통제의 공간을 마주하며 느끼는 어떤 무력감이나 소외감 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UTC-7:00 JUN 오후 세시의 테이블》 전시 전경_금호미술관_2018

가장 최근에 삼육빌딩에서 열렸던 전시 《이브》(삼육빌딩, 2018)에서 선보였던 두 점의 페인팅은 이러한 공간에 관심사를 더욱 구체화한 작업들이다. 특정한 시간이 도래하기 이전의 유령 같은 시간을 이르는 ‘이브(eve)’라는 단어를 듣고 휴지통이라는 공간을 떠올렸다. 어쩌면 곧 폐기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 텍스트, 정보의 조각들을 안고 있는 어떤 공간, 다시 복구될 잠재성만을 갖고 있는 휴지통의 속성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브’라는 시제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전시를 위해 휴지통에서 건져 올린 이미지들을 이용해 곧 잊혀질 세계에 적응하는 방식을 이미지화해보고 싶었고, 그렇게 나온 것이 이미지와는 다소 반어적인 제목의 두 작업 〈May Your Shadow Grow Less〉와 〈Erase Everything but Love〉 이다.

 
May Your Shadow Grow Less _Acrylic on Canvas_460×240cm_2018   Erase Everything but Love_Acrylic on Canvas_290×190cm_2018

앞서 언급한 금호미술관에서 전시된 작업들과 유사한 프로세스로 그려졌는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풍경들은 하나의 불투명한 이미지로 재현될 수 없다는 견지에서 레이어간의 물성차를 더욱 극대화하여 폐허의 공간을 그렸다.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단어는 ‘환영(Illusion), 물질성(Materiality), 레이어(Layer)’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환영과 물질성은 어찌 보면 서로 대치되는 단어인데, 이것들이 평면위에서 만나 충돌하고 이율배반적인 화면을 만들어내는 내는 데에 관심이 있다. 레이어는 환영에 깊이를 더하는 장치로 사용한다. 앞서 무엇이 실재인가를 구분해내는 일이 무의미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실재감과 생동감에 대한 욕구는 실존 감각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상생활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이 차가운 유리를 만지며 보내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무엇으로부터 그러한 욕구를 채우게 되는가를 자주 생각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러한 환경에서 실제 물질을 사용하여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의 의미에 대해 자주 묻게 된다. 잠정적으로 답하자면 회화는 나 스스로가 이 세계에 접촉해 있음을 환기하는 도구의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EVE》 전시 전경_삼육빌딩_2018

Q. 인천아트플랫폼에 머물며 진행할 작업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최근 나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몇 가지 명상(meditation) 앱을 설치했다. 모바일 명상 서비스는 주로 5분에서 10분가량의 세션들을 제공하며 월 3달러에서 10달러 사이의 가격으로 아름다운 풍경 이미지와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뱉는 방식 외의 개인을 통제하는 다양한 노하우를 전수한다. 우연히 그 가운데 명상의 일환으로 ‘브레인마사지’ 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발견하게 되면서 시각적으로 구현되는 촉각이 전제하는 일정한 조건들에 생각하게 되었다. 일상의 안식 또한 무엇인가를 ‘보는 행위’로 대체하도록 하는 이러한 영상들은 ‘브레인마사지’, ‘브레인오르가즘’ 등으로 불리며 대체로 투명한, 끈적끈적한, 섞여있는, 구형(globular)의 물질을 반복적으로 주무르고 붓고 자르고 캐스팅하는 등의 행위와 함께 생동감 혹은 실재에 대한 감각(liveliness)을 선사하며 뇌에 일종의 자극을 제공한다. 나는 이것이 스스로 작업을 제작하며 느껴온 어떤 감각들과 유사함을 발견한다. 실제 물질을 경험하는 느낌을 ’보는 것’이, 반대로 어떤 욕망을 대체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며, 이를 회화의 존속 이유와 연결하여 생각해보게 되었다. 일상의 대부분의 경험이 디바이스로 매개되는 환경 속에서 어떤 이미지가 실재감과 생동감을 전달할 수 있으며, 이 이미지들이 새로이 획득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또한 왜 우리는 여전히 그려진 어떤 것을 보고 느끼기를 원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가지고 기괴한 만족감을 선사하는 전시를 만들어보려 한다. 최근 들어 작업을 혼자 구상하고 키워나가는 일에는 한계가 있음을 자주 느낀다. 함께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한 동료 작가들 가운데 다른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업하며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을 만들어내고 싶다.

 
Breakfast 2_Acrylic on canvas_162×97cm_2018   Icecream_Acrylic on canvas_90×72cm_2018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나는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늘, 보다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구상하는 대부분의 작업이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점점 신중해지기도 하고, 착수하는 일이 언제나 힘들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느 시점을 넘어 한 점 한 점이 완성되어 갈 즈음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고, 그 단계를 넘어서면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진다. 마치 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그 시간을 위해 작업한다. 나는 대부분의 그림을 기계를 이용해서 기계와 같은 방식으로 그리기 때문에 혹자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감정이 제거된 그림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언제나 감정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그림들이 무척이나 표현적이라 느낀다. 아무리 빈틈없이 그리려 해도 언제나 틈은 생기기 마련이고, 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인간적인 감정을 내가 의도하는 방식대로 공감해주는 분들을 만나면 그게 작업하는 원동력이 된다.

《Allover》 전시 전경_하이트컬렉션_2018

Q. 앞으로 작가로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하여
A. 
앞서 창작을 해나가는 것을 언어를 배우는 일에 비유했는데, 그렇기에 작업은 갈증의 연속이다. ‘아’라고 말하고 싶은데, 자꾸 ‘어’라고 말하게 된다. 작업을 지탱하는 공간과 제작할 때의 에너지, 결과물(output), 그 안에 내재된 형상이든 개념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조건들이 맞물려 힘을 뿜어내는 전시를 만들고 싶다. 이것은 일종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An Angel Whispers》 전시 전경_P21(서울)_2019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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