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채식주의자

한 여성이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육식은 폭력행위’라고 외칩니다. 식당 관계자가 나가 달라고 하지만 여성(A씨)은 “우리 인간이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는 것처럼 돼지도 돼지답게, 소도 소답게, 동물도 동물답게 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채식주의자이자 동물권 활동가인 A씨는 지난달 19일 트위터에 자신의 1인 시위 영상을 올렸습니다.

영상과 함께 A씨는 “폭력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에서 동물의 현실에 대해 알리고 직접 의견을 표출하는 움직임이 널리 퍼지길 바란다”고 적은 뒤 “누군가와 싸우거나, 누구를 비난하는 등의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만약 비폭력적인 방해시위로 인해 사람들이 불편함이나 긴장을 느낀다면 그건 동물이 처한 현실에 대해 인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영상은 모자이크 처리 없이 공개됐습니다.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지만 누리꾼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영업하는 식당에서 과한 행동”이라는 지적이 있었고, “가축 도살 과정이 비인도적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A씨의 행동은 채식주의 강요”, “다른 채식주의자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행동”이라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영업장의 사업주, 근로자 그리고 식사하던 손님들에게 비물리적 폭력을 행사했다”, “도덕성에 취해 남들한테 무슨 민폐인가”, “저 동영상에 나오는 손님들의 동의는 구했나, 사상 강요하기 전에 초상권부터 지켜라”는 뉘앙스의 멘트가 많았죠.

출처: 서울경제

A씨는 ‘서울 애니멀 세이브’와 함께 시위를 기획, 실행에 옮겼습니다. 서울 애니멀 세이브는 ‘비질’이라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비질(Vigil)이란 도축장, 농장, 수산시장 등을 방문해 육식주의 사회의 현주소를 기록한 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 폭력적인 현실의 증언자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해 프랑스 북부 릴에서는 급진 채식주의자들이 정육점을 습격한 일이 있었습니다. 정육점을 향해 돌을 던지고, 스프레이로 자신들의 구호를 적었습니다. 영국 켄트에 있는 한 정육점은 ‘종 차별을 금지하라’는 문구로 뒤덮였습니다.

지난 4월 호주 주요 도시의 대형 도축장 등에서는 과격 채식주의자 수백 명이 쇠사슬로 몸을 묶은 채 동물 해방을 주장하는 시위가 있었습니다. 멜버른 시내에서 100여명의 시위대가 자신들의 몸을 자동차에 묶고 중심 도로를 점거했고, 시위대 해산 과정에서 10대 3명 포함 주동자 39명이 체포됐습니다.

스웨덴에서는 생후 18개월 된 딸에게 ‘채식 식단’을 먹여 영양실조에 이르게 한 부모가 징역 3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채식주의자인 부모는 모유와 함께 현미, 감자 등 영양성분이 제한된 음식을 아이에게 제공했는데, 조사 과정에서 어머니는 사람이 장기간의 정신적, 육체적 훈련을 받으면 물이나 음식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진찰한 의사는 아이가 죽기 몇 시간 전에 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진술했습니다.

차량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농성을 벌이는 호주 채식주의자들
출처:연합뉴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전체 인구의 2~3%인 100만~150만 명입니다. 10년 전인 2008년의 15만 명과 비교하면 10배가량 늘어난 셈입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합니다. 건강 때문에, 동물 애호나 종교 등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음식 취향 때문에 채식주의자를 선언합니다.

1년째 페스코 채식 중인 이모(28·여)씨는 “육식을 위해 사육하는 동물들이 엄청난 양의 메탄가스를 배출한다는 얘길 듣고 작은 행동이나마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동물해방물결의 윤나리 공동대표는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채식을 시작했습니다. “육식 때문에 잔인하게 도살당하는 동물이 적지 않다. 동물 착취를 방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채식”이라고 강조합니다.

초등학교 교사 양보라(40)씨는 회식 때문에 간헐적 채식을 합니다. “다 같이 중국집에 갔는데 혼자 땅콩만 먹고 있을 순 없잖아요. 현실적으로 타협한 거죠.” 영양 불균형을 염려해 간헐적 채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오영(40)씨는 빈혈 때문에 일주일에 하루는 붉은 살코기를 먹고 나머지 날에는 과일과 채소를 먹는 생활을 유지합니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음식 칼럼니스트 마크 비트먼은 ‘저녁식사 직전까지만 채식주의자’입니다. 매일 오후 6시까진 채식을 하고 저녁 먹을 때는 육류나 생선도 편하게 즐기는 겁니다.

2018년 세계 채식주의자의 날을 기념해 인도에서 채식주의자들이 ‘육식은 살인이다’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
출처:중앙일보

채식이라고 해서 고기를 전혀 먹지 않고 채소만 고집하는 것은 아닙니다.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 ‘채식주의자(Vegetarian)’와 ‘준채식주의자(Semi-Vegetarian)’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는 4종류로 나뉩니다.
‘락토 오보(Lacto Ovo)’-육류·어류는 먹지 않지만 계란과 유제품은 먹는다.
‘오보(Ovo)’-계란은 먹지만 육류·어류·유제품은 먹지 않는다.
‘락토(Lacto)’-식물성 식품에 치즈, 요구르트 등 몇 가지 유제품은 먹지만 육류·어류·계란은 먹지 않는다.
‘비건(Vegan)’-오로지 식물만 먹는다. 육류·어류·달걀·유제품 등 동물성 식품은 절대 먹지 않는다.

비건은 뿌리나 줄기는 먹지 않고 열매만 먹는 ‘프루트(Fruit)’와 열로 조리하지 않은 생채소만 먹는 ‘언쿡트(Uncooked)’ 등으로도 구분됩니다.

준채식주의자에도 세 종류가 있습니다.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평소에는 채식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육류를 섭취한다.
‘폴로(Pollo)’-유제품·달걀·조류·어류는 먹지만 돼지고기·소고기 등 붉은 살코기는 먹지 않는다.
‘페스코(Pesco)’-유제품·계란·어류는 먹지만 육류와 가금류는 먹지 않는다.

출처: 세계일보

채식을 시작한 사람들을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30대가 많습니다.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는 “이 세대의 특징 중 하나가 소비할 때 실용성 외에 윤리성까지 중시하는 것”이라며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공장식 축산의 폐해와 잔인한 동물실험 등을 접하면서 육식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점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분석합니다.

지난 6월 29일 조선일보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육식이 비윤리적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는 20대(26.0%), 30대(25.4%), 40대(20.5%), 60대(20.3%), 50대(18.5%) 순이었습니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반감 또한 20대와 30대가 다른 세대보다 높았습니다. ‘채식주의자가 위선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한 비율이 각각 26.6%, 24.9%로 50대(16.7%), 60대(18.9%)보다 앞섰습니다.

이러한 양가감정에 대해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적극적으로 퍼뜨리지만 자기와 다른 생각은 용납하지 못하고 바꿔야 한다고 여긴다”며 “육식과 채식을 사이에 두고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반감이 드러난 결과”라고 분석합니다.

출처: 뉴시스

대한민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입니다. 채식을 중뿔나게 보는 시선 때문입니다. 직장인 김모(42)씨는 채식주의자로 사는 일을 “자발적으로 핸디캡을 껴안는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강모(27·여)씨는 “가족들마저도 내 앞에서 고기 먹는 걸 어려워한다. 나름대로 신경 써주는 것이지만 오히려 더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털어놓습니다.

‘채식 완벽주의’ 때문에 힘들어 하는 채식주의자도 있습니다. 채식에 단계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던진 ‘채식 한다면서 왜 달걀(또는 생선)을 먹느냐’ 같은 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겁니다. 채식주의자 스스로 완전채식(비건)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채식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한국트렌드코리아 박성희 수석연구원은 “회식 때 삼겹살을 먹는 일은 일상에서 흔하다. 사회가 채식주의자들을 좀 더 배려해 사회적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채식영양연구소 이광조 박사는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은 학교 급식부터 채식 메뉴가 잘 돼있는데, 우리나라 급식은 단백질을 꼭 육류로 섭취해야 하는 것처럼 운영된다. 제도부터 고쳐야 채식주의자를 유별나게 보는 시선이나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개선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글 · 이미지 /
이재은(뉴스큐레이션)

 

*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음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고깃집에서 시위한 채식주의자
YTN 뉴스, 2019.6.26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댓글살롱] ‘살해 멈춰!’ 고깃집서 외친 채식주의자 논란
서울경제, 2019.6.2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3. “고기 먹지 않겠다”… 달걀 먹으면 채식주의자일까
코메디닷컴, 2019.4.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4. “육식은 비윤리적” 응답 비율 2030이 높지만… “채식주의는 위선” 응답도 높아
조선일보, 2019.6.2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5. “육식 반대”…유럽서 채식주의자 ‘정육점 습격’ 잇따라
JTBC 뉴스, 2019.4.1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6. “동물·환경 생각하면 고기 ‘못’ 먹죠”… 채식의 세계
세계일보, 2019.5.2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7. 스웨덴 부모, 18개월 아이에게 ‘채식식단…징역 3개월
뉴시스, 2019.5.2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