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이 온 우주가 되어간다_백화점과 새벽배송 사이에서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쇼핑”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그것을 파는 곳에 찾아가서 상품을 몇 개 살펴보고, 물건을 구매하여 집에 들고 오는 것이죠. 이 방식은 근본적으로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습니다. 소비자들은 더 많은 선택권을 얻길 원할때, 그 해결책은 더 큰 규모의 시장입니다. 구멍가게가 사라지고 흔히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들어서는 큰 변화를 마주하는 동안, 근본적으로 물건을 직접 보고 구매하는 행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온라인 쇼핑은 오랫동안 당연했던 생각, “물건은 직접 보고 산다”라는 진리를 깨끗하게 무너뜨렸습니다. 쇼윈도는 제품의 상세 사진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의류, 가구, 먹거리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상품을 스마트폰 하나면 구매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선택지가 늘었습니다. 대규모 쇼핑 사이트와 포털의 쇼핑 탭이 발달하면서, 같은 상품을 사더라도 매번 가격을 비교해가며 다른 업체에 주문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SNS나 카페를 통한 공동구매, 해외 구매대행 업체가 무수히 늘어나면서 단순히 소매상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유통경로 자체가 다변화되었습니다.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와 같은 외국의 세계적인 유통기업을 논외로 하더라도, 국내의 주요 인터넷 쇼핑 플랫폼 업체들은 동종업체는 물론, 거대한 유통 대기업과도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과거에는 우리가 새 TV를 사러 흔히 전자제품 매장이나 백화점으로 갔지만, 이제는 국내 인터넷 쇼핑몰과 해외 직구까지 포함한 대여섯 개의 선택지에서 가장 나은 구매 조건을 찾습니다.

<그림 1> 한 중고차 판매 사이트 광고. 몇 년 전 TV 홈쇼핑에서 수입차가 판매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이제는 중고차를 스마트폰으로 구매할 수 있다고 홍보하기 시작합니다. 인터넷 쇼핑으로 살 수 없는 물건이 몇 개나 남았을까요.
(출처 : 케이카 홈페이지_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온라인 쇼핑에는 필연적으로 두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사는 물건을 직접 볼 수 없다는 것,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제품의 종류일 뿐이지 내게 배송될 상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구매와 획득의 시점이 분리되었다는 것입니다. 물건을 사고 나서 내 손에 들어올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죠.
과거에 흔히 하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봅시다. 먼 미래에 과학이 발전하면, 우리는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서도 촉각이나 후각을 체험하면서 구매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홀로그램으로 옷을 입어보는 것처럼 피팅을 하고, 냄새를 맡으면서 신선한 과일을 고를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상상은 여전히 상상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마 시간이 계속 흐른다고 하더라도 이런 미래는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좀 더 편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더 빠른 배송’과 ‘더 쉬워진 반품’입니다.
좁은 땅과 밀도가 높은 도시에 사는 덕분에, 우리는 엄청나게 빠른 물류 이동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흔히 농담처럼 말하는 ‘옥뮤다 삼각지대’-한 택배회사의 물류 센터인 옥천 물류 센터에서 배송 물품이 며칠 동안 머무는 것을 말하는 인터넷 신조어-에 빠지지 않는다면, 오늘 아침에 결제한 물건은 대체로 내일 점심에 받아볼 수 있습니다. 대형 마트에 이런저런 생필품을 아침에 주문하면 바로 그날 저녁에도 받아볼 수 있습니다. 한때 당일 배송을 강조하는 한 인터넷 서점 업체에서 점심시간에 주문한 책을 다음날 배송하게 되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는 일화가 SNS에서 퍼지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 스타트업 기업이 시작한 신선식품 새벽 배송은 밤 11시에 주문하면 새벽 7시 전에 현관 앞에 물건이 도착합니다. 새벽 배송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여러 업체가 앞다투어 제공하는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이 ‘배송 경쟁’의 결과, 이제 하루 이틀 사이에 대부분의 물건이 우리 손에 들어오는 것이 일상화되었습니다. 게다가 물건이 도착했을 때 제품에 하자가 있거나, 실제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쉽게 반품할 수 있습니다. 극도로 억제된 물류비용 덕분에 배송이나 반품에 드는 비용은 고작 3~4천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림 2> 고도로 발달한 우리나라의 택배 서비스는 넓은 세상을 현관 앞에 가져왔습니다. (출처 : ㅍㅍㅅㅅ_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도시는, 특히 도시의 서비스업은 소비자들의 새로운 요구를 찾아서 더 자잘하게 분화되고, 더 전문적인 서비스를 위하여 변화하여 왔습니다. 이로 인해 한때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대부분의 생활을 집 밖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일은 회사에서, 밥은 식당에서, 공부는 카페에서, 여가는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복합 쇼핑몰에서 보낼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심지어는 가사노동이 집 안에서 사라지고, 식당과 편의점, 세탁소와 빨래방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믿기도 했습니다. 교통의 발달을 통한 이동성의 증가는 도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쉽고 싸게 이용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생각들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습니다. 도시에서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리적인 이동성 또한 점점 더 혁신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중교통과 자가용의 틀을 넘어서 공공 자전거 서비스와 택시 서비스, 퍼스널 모빌리티 등을 더 자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도시 사람들은 이러한 이동성 증가를 통해서 더 많은 도시공간을 옮겨 다니며 서비스를 구매하고 여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을 내 집, 내 방안으로 불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필요한 물건은 인터넷 쇼핑을 통해 택배로 받습니다. 배달대행 서비스로 동네의 맛집에서 배달 주문해서 식사합니다. VOD 서비스로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SNS와 유튜브로 사람들을 소통합니다. 물론 여전히 주말마다 쇼핑몰은 붐비고, 힙한 거리는 사람들로 메워집니다. 방안으로 불러들인 생활은 정말 일부분일 뿐이지만, 과거에 비하면 대단히 커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사나흘 정도의 휴가를-어떤 사람들은 더 긴 시간을- 온전히 집안에서 보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것입니다.

지난여름, 저는 쇼핑이 일종의 레저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했던 쇼핑은 이제 인터넷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집 앞 구멍가게, 문구점, 학교 앞 서점, 단골 정육점 등 생활 편의시설에 대한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백화점과 마트는 레저의 영역으로 옮겨집니다. 지난달, 부평과 구월동의 백화점 건물이 오랫동안 팔리지 못하다가 어렵사리 새 주인을 찾았습니다. 무수히 많은 전철 이용자들이 퇴근길에 가득 메울 거라고 믿었던 사실과 다르게 10년 동안 민자 역사 쇼핑몰 한 곳은 20년이 가깝도록 대부분이 빈 건물로 남아있었습니다. 백화점 간의 경쟁과 건물 규모의 문제, 인근 부천시와 직면하는 상권 문제, 원도심의 쇠퇴 문제 등이 공실문제의 가장 큰 원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깊은 속사정에는 백화점과 마트에 가는 일이 우리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내와 방안에서 있어도 과거보다 더 많은 것을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제 우리는 온 세계로 자유롭게 갈 수 있고, 방 안에 온 세계를 담을 수도 있습니다.

글  /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존 어리(2012). 사회를 넘어선 사회학. 휴머니스트
존 어리(2014). 모빌리티, 아카넷
석혜탁(2018). 쇼핑은 어떻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나. 미래의 창
“롯데百, ‘앓던 이’ 인천점·부평점 매각 성사”. 머니투데이. 2019.5.1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한국 경제를 망친 가장 큰 단일 직종은 역시 택배기사일지 모른다”. ㅍㅍㅅㅅ. 2017.3.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