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큐레이션(2016.09.06~09.19)

‘친구와 술 한 잔’ 하기 위해 시인은 두 달 동안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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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혹은 초가을의 기운도 없이 거인의 발로 성큼 ‘가을’이 왔다. 시를 읽기에도, 술 마시기에도 좋은 계절. 오랜만에 청탁 전화를 받고 시인은 그날부터 시를 생각한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잠을 자면서도 시재(詩材) 생각뿐이다. 친구의 호출도 마감 이후로 미룬다. 수십, 수백 시간 만에 완성한 시를 보내고 원고료를 받는다. ‘가을이니까’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신다. 두 달간 쓴 시를 보내고 받은 돈을 쓰는 데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두 편에 5만원. 20만원을 받으면 좀 나을까? 문인들은 시를 ‘계산’하는 일이 까다롭다고 말한다. 순간적 감응으로 완성할 수도, 몇 년에 걸쳐 다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돈이야 계절이야, 뭐가 됐든 시인들은 계속 시를 쓰고, 술을 마신다. 시가 그리운 독자들은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 간다.

인천에서 자란, 이런 ‘돌아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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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봤어? 물어보기 전에 주위를 돌아보자. 최초의 인간을 다룬 <시발, 놈:인류의 시작>은 제목부터 만만한 영화가 아니다. 뻔뻔해서 웃기고, 황당해서 박수가 나온다. 마냥 가벼울 거라고 예상하면 오산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장 자크 아노의 ‘불을 찾아서’, 무성영화의 클래식한 아우라 등이 백승기 감독다운 방식으로 표현된다. 인천을 배경으로 한 처녀작 <숫호구> 이후 내적 진화를 했다는 평가와 ‘힘찬 패기’라는 감상 뒤에는 ‘깊이 없는 해프닝’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꿈으로 꼭 뭔가를 이뤄야 하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즐기면 안 되나? 도전은 쉬운 줄 아나?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창작, 만들자마자 예술이다.

물은 거꾸로 흐르면 안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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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대는 꼰대였지만 성소수자 아들, 파업 공표 엄마 등 시대를 앞서가는 설정이 있었다. ‘흥행보증수표’ 김수현 작가의 최근작은 방송사 처지에서 볼 때 방영을 하면 할수록 손해인 민폐작으로 마감했다. ‘그래, 그런거야’는 변함없는 꼰대적 구조에 성차별적 장면만 남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혼전순결’ 운운도 촌스럽고 ‘개념녀’의 이분법도 구식이다. ‘여자니까 참아야 한다’는 안이함은 굳이 여성주의를 언급하지 않아도 낡은 사고방식임이 분명하다. 자기 복제와 매너리즘은 잘 이용하면 스타일이 되지만 안주하면 몹쓸 굳은살이 된다.

 

음식 포르노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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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모양과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사람은 음식보다 사람에 포커스를 맞춘 프로그램을 견디지 못한다. 크게 벌어지는 입술과 목젖의 움직임, 점점 커지는 눈동자에 집중하는 화면은 어쩐지 포르노와 비슷하다. 중림동 새우젓(글쓴이)은 온갖 장르에서 소비된 음식에의 탐닉을 고백한다. 정확히는 음식에 관한 문장과 상상 속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다. ‘봄봄’의 봄감자, ‘운수 좋은 날’의 설렁탕, ‘날개’의 아달린 알약, ‘올리버 트위스트’의 꿀꿀이죽과 ‘소공녀’의 오이 샌드위치가 존재하는 시공간은 가히 황홀경의 세계다. 어느 쯤에 다다르면 종교의 경지. 재료 써는 소리, 가스레인지 켜는 소리, 찌개 끓는 소리를 듣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지는 선(禪)의 순간에 도달한다. 웹툰과 영화, 요리 영상 소개까지 음식에 대한 애정으로 알알이 차 있는 글이다.

5로이터 사진전, 이 한 장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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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단어 ‘photography’는 빛으로 그린 그림이고 한자어 ‘寫眞’은 진실을 베낀다는 뜻이다. 기술보다 본질. 건축가 승효상은 ‘사진’이라는 단어에서 더 큰 울림을 느끼고, 사진의 가치는 기억의 재생에 있다고 말한다. 이 한 장의 사진. 난민들이 임시 거주지 앞에 나와 물통과 식기에 빗물을 받는다. 난민선에서 두 달 넘게 표류하다 미얀마 남쪽 해상에서 구조된 로힝야족 난민과 방글라데시 이주자들이다. 오늘은 불안하고 내일은 캄캄한데 그때, 단비가 내렸다. 헐벗은 그들의 얼굴에 한 줄기 행복이 지나간다.

 

이재은(뉴스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