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으로서의 디아스포라

20세기 후반, 현대미술전시 패러다임은 급진적 전환의 시기를 맞이한다. 미술시장을 점령한 유명작가와 유파주의 일색의 전시 문화가 변화를 겪게 된 원인은 아무래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비에트 연방 해체에 따른 냉전주의 종식과 맞물려 있다. 이와 더불어 탈식민주의 연구가 가속화되면서 착종된 식민지 문화에 의하여 나타난 혼종성과 다양성의 현상을 국가와 개인, 거시사와 미시사의 관계를 탐색하는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근대 식민주의의 바탕인 서구중심주의를 해체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을 존재론적 관점보다 사회문화역사적인 관점으로 형성된 실존으로서의 해석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즉 포스트모던 세계로의 이행은 개인이란 존재가 구성되는 조건과 환경이 혈연과 지연에 제한되지 않고 개인, 국가, 민족, 역사, 세계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적 자각을 일으킨 것이다. 당시만 해도 전시는 서구를 중심으로 한 국제 모더니즘 미학을 따르고 있었다. 서구는 미술을 통해서도 동양을 타자의 세계로 남겨두고 미술이 서양의 전유물이라는 또 다른 관념을 끊임없이 생산-재생산하였다. 여전히 미술사와 미학, 그리고 예술가 모두 주로 서구남성에 의하여 구성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탈식민주의 연구의 등장은 인문학계뿐만 아니라 미술 지형도에도 지각 변동을 예약하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전시는 국가, 지역, 매체와 장르, 작가의 유명세에 따라 공간을 분할하거나 서열에 따른 배치가 수두룩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시기획의 이면에는 여전히 서양 백인 남성작가라는 기표는 기념비적 삶과 사상을 드러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탈식민주의 연구는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 문화연구로, 이어서 문화예술현장으로 확장되었다. 드디어 전시라는 영역이 오랜 관습을 재현하는 정치학이 아니라 당대를 비평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말할 수 없었던 타자들에게 말을 할 권리를 제공하는 담론의 장으로 펼쳐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전시가 시대성을 담는다는 의미는 완성된 세계의 재현이 아니라 세계가 어떻게 구축되고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는 ‘미학적 정치성의 발견’을 예견한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다룬 당대 전시들이 처음부터 문화적 차이를 정당하게 제시한 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대지의 마법사”(1989, 퐁피두센터)란 전시는 아프리카 작가들을 백인 작가들과 동등하게 초청하여 문화적 다양성과 작가로서의 등가를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서구미술을 진보적인 것으로, 아프리카 미술을 민속적인 것의 영역에 가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탈식민주의 개념을 대상화했다는 비판은 이후 많은 국제적 규모의 적지 않은 전시에서도 목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지의 마법사들이 열린 지 30년이 지난 현재, 전 지구화 시대의 시각예술 전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태도를 내재한 사회운동의 성격이 탑재된 문화적 산물로 성장하였다. 지난해 광주와 부산의 비엔날레가 주목한 것도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분할된 국경과 국가주의가 세계화와 디지털 기반 (영상)문화에 의하여 어떻게 재편되고 번역되는지를 다뤘다는 점만 보아도 19세기 말 제국주의 식민정책 이후의 점점 더 가속화된 식별 불가능하게 변하는 세계 지형도는 전보다도 더 섬세하게 탐구되어야 할 주제임에 분명하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제7회 디아스포라 영화제와 발맞춰 열린 인천아트플랫폼의 기획전 <태양을 넘어서>(2019)는 한국근현대사에서 인천이라는 장소가 가진 정치지리학적 의미를 박물관학의 차원이 아닌 한국의 동시대 미술가들이 경험하고 바라보는 이산(離散)이라는 주제를 처음으로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반가웠다.

전시는 총 2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러시아 레핀미술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한 고려인 변월룡의 회화와 서한으로 채워졌고 2부는 디아스포라를 다양한 방식으로 탐색하고 번역한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으로 이뤄졌다. 우선 1부 “고국으로의 귀환”은 1916년 연해주에서 태어난 변월룡(1916~1990)이 1954~55년에 평양미술학교로 파견을 나가 된 덕택에 경험한 2년간 모국에서의 삶과 그리움을 주목하고 있다. 평양에서 레닌그라드로 돌아온 변월룡은 다시 평양에 가기 위해 애를 썼지만, 이데올로그의 경계에서 모진 그리움만으로는 국가체제를 초극할 수 없는 한계를 처절하게 경험한다. 당시의 그리움은 이후 기억 속의 평양을 다시 화폭으로 소환되어 이중의 디아스포라로 체현된다. 게다가 남북분단의 현실은 어느 국가도 선택할 수 없는 삼중의 디아스포라가 되어 그의 절망감을 배가시킨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인물화와 달리 그리움과 체념을 담아 기억의 풍경을 그린 “평양재건”(1953)과 같은 작품에는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인상주의적 붓질로 조국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담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의 지인들과 교류한 편지에는 돌아가고 싶은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달리 되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안타까운 입장과 고국에 대한 애정이 잘 담겨 있다. 2부 “부유하는 태양”에서는 김기라, 임흥순, 이수영, 가나자와 수미 등 국내외 작가 8명이 참여했다. 개인적으로는 단연 가나자와 수미의 작업이 돋보였다. 그는 “Number-가족”(2012년)에서 폐지된 외국인 등록법 이전에 부여받았던 자신의 외국인등록번호 “B176404263”을 중심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번호를 외국인 증명서류 위에 계속해서 적어 내려간다. 마치 폴란드계 프랑스 작가 로만 오팔카의 숫자 회화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오팔카 역시 디아스포라의 삶을 작업의 배면으로 삼고 있으나 여기에서의 숫자는 매우 실존주의적 의미를 품고 있다. 이에 비하여 가나자와는 제도가 개인을 식별하는 법질서 내부의 존재방식을 질문한다. 이수영은 이주민의 고향과 같은 서울 가리봉동에서 조선족이 운영하는 양꼬치 식당에서의 맛을 찾아 국경을 넘는다. 작가는 디아스포라의 원 의미를 새롭게 재배치한다. 그것은 이방인의 삶의 궤적을 좇는 행위이자 또 다른 관점에서는 자신이 처음 만난 감각적 세계의 원천을 찾아 떠나는 시원으로의 여정으로도 볼 수 있다. 온갖 임시방편의 장치들을 몸에 장착하고 떠난 그의 여행은 고행과 여행, 고통과 유희가 공존한다.

디아스포라는 근대가 열리면서 제국주의에 의한 세계 나누기,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한 과열 현상으로 자신의 땅에서 다른 곳으로 쫓겨나야만 한 이산의 상태를 일컫는다. 산파, 산종, 이산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디아스포라(diaspora)는 원래 팔레스타인을 떠나 유목인으로 사는 유대인 공동체를 의미했으나, 현재는 근대 이후 모국이 아닌 타 문화권에 거주하는 모든 이산자와 이산 문화를 아우르는 용어로 사용된다. 특히 인천은 개항지이자 하와이와 멕시코 노동이민이 시작된 장소이기에 디아스포라와는 어쩔 수 없이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디아스포라”를 이슈로 하는 주제전으로써 <태양을 넘어서>는 이미 시작 전부터 한계를 가지고 제작된 전시다. 아무래도 인천아트플랫폼의 정체성이 작가들의 창작공간이기에 규모가 있는 주제전시를 자체 제작하기엔 시스템의 공백이 없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열악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가 갖는 의미는 여러 관점으로 유의미하다. 첫째, 인천시립미술관 설립이 예정된 상황에서 인천의 정체성과 연계하여 지역미술거점으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한다는 점, 둘째, 인천아트플랫폼의 지정학적 장점을 활용하여 디아스포라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프로그래밍과 활동의 잠재성을 탐구할 수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한국의 창작스튜디오 대부분이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인천아트플랫폼이 새로운 운영방식을 실험할 수 있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레지던시의 연구 기능, 교육을 비롯한 프로그램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전문가, 비전문가 모두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전시 기반을 다질 수 있다는 바람을 갖게 해준다.

 
변월룡, <아내와 아들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60×74.5㎝, 1951
  변월룡, <소나무가 있는 풍경>,
캔버스에 유채, 59.5×97㎝, 1954

김기라, <이념의 무게_북쪽으로 보내는 서한들_수취인 불명_황해>,
단채널 비디오, 10분, 2013

김수미, <Number-가족>,
외국인 등록 원표 기재 사항 증명서, 외국인 등록 번호, 노트, 편지, 가변설치, 2019

민성홍, <연속된 울타리: 벽지>,
볼펜, 벽지에 목탄가루, 수집된 오브제, 세라믹, 나무구슬에 채색, 가변설치, 2018


정현(Hyun Jung): 미술비평가, 독립전시기획자로 활동한다. 비평활동을 하나의 배움의 과정으로 여기면서 글쓰기를 실천하고자 한다. 미술비평, 시각문화, 전시기획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미술은 무엇을 욕망하는가?”란 질문으로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파악하려 애쓴다. “이상뒤샹”(2013), “그다음 몸”(2016) 등의 전시를 기획했고 “큐레토리얼 비평 실천”(현실문화 2014), Art Cities of the Future: 21st century Avant-Gardes, (Phaidon, 2013) 등의 공저가 있다. 현재 인하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