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기술과 도시공간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세계가전전시회)에서는 지난 전시와는 다른 모터쇼를 선사하였습니다. 많은 자동차 생산업체들이 지난 몇 해 동안 자율주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운전자가 필요 없는 자동차뿐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자율주행 기술에서 가장 앞섰다고 평가되는 구글이나 독일의 자동차 제조사들처럼 우리나라의 자동차 제조사와 통신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자율주행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서울대 연구진이 개발한 자율주행차가 여의도 일반 도로에서 시험 운행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출시된 자동차에는 대부분 레벨2와 레벨3 사이의 자율주행 기술이 탑재해 있습니다. 단거리에서 일부분 조향과 속도 조절, 주변의 상황을 온전히 자동차에 맡길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한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얼마 전 한 통신회사는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테스트하기 위해 인천 경제자유구역에서 자율주행 인프라를 구축하기로 하였습니다. 여기서 레벨4는 스티어링 휠과 페달이 사라지는 레벨5 수준의 완전 자율주행에 조금 미치지 못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운전에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기술을 말합니다.
<그림 1> 이제 자동차 제조사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작동 방법보다 사용자가 누릴 수 있는 환경에 중점을 둡니다.
CES 2019에서 기아자동차가 출품한 R.E.A.D 시스템에 운전석 탑승자의 얼굴을 분석하여 감정 정보를 추출하고,
운전자의 상태에 맞게 내부 환경을 조절합니다. (사진 출처: 스마트경제 _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인천에서 추진되는 자율주행 인프라는 아직 레벨5 수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자율주행 자동차의 대중화는 그리 먼 미래가 아닙니다. 또한 이것은 운전자 개인에게 편안한 환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도시 공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동차 수의 증가는 주차 공간의 면적을 증가시킵니다. 거의 모든 건축물은 면적에 비례하여 주차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동차가 늘어나며 필요한 주차면 수는 점점 늘어났고, 자동차 크기가 커지면서 자동차 1대당 주차장 면적도 넓어졌습니다. 늘어나는 주차 수요는 야외 주차장들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서, 이제 주차장도 지상과 지하 여러 층으로 켜켜이 쌓아 올려야만 합니다. 10년쯤 전부터 아파트 단지 계획에서는 보편적으로 주민들의 안전과 쾌적한 생활을 위해 지상에는 공원의 형태를 조성하고 지하는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과거 단층 야외 주차장 방식으로는 고층 아파트에 사는 거주자들의 소유 차량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완전자율주행 차량의 대중화는 주차장 조성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운전자는 이동할 때마다 자동차 주차 문제를 우선 생각했지만, 완전자율주행 차량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완전자율주행은 운전자 없어도 스스로 자동차가 움직일 수 있으니, 자동차는 운전자-완전 자율주행차량에서는 아무도 운전하지 않으니 그냥 ‘사용자’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만-가 이동할 때 달려오고, 그렇지 않을 때 더 먼 곳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직장인을 출근을 시키고 집에 되돌아간다거나, 가족을 놀이공원에 데려다주고 자동차는 30분쯤 떨어진 한적한 곳에서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연료를 소모하면서까지 승용차 주차가 운전자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가정한 이유는 번화한 도시일수록 토지의 가격이 그만큼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경우, 공영주차장 1개의 면적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대략 8천만 원에서 2억 원까지 추산하고 있습니다. 도심 한가운데 값비싼 업무용 토지를 아침 출근부터 저녁 퇴근까지 주차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은 공간의 효율성이 상당히 떨어집니다. 건축물에서 주차장이 차지하는 면적이 줄어든다면, 해당 공간만큼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아예 현재의 지하주차장이나 주차타워와 비슷한 양식의 건물을 짓지 않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이는 현재의 건축 비용을 절감할 뿐만 아니라 건축자재를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도심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든, 녹지를 확보하여 탄소 발생을 줄이든 주차장이 감소한다면 혼잡한 도시도 조금 숨통 트일 수 있습니다.
완전자율주행 차량의 보편화는 ‘개인적인 대중교통’의 수요를 좀 더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자가용에 준하는 택시 서비스가 보편화할 수도 있습니다. 도시 대중교통에서 자율주행 기술이 보편화하면서 ‘무인버스’, ‘무인택시’가 활성화될 것입니다. 현재 기관사 없이 운행하는 인천지하철 2호선처럼 말이지요. 버스는 노선이 이미 정해져 있어 큰 차이가 없겠지만, 택시는 지금과 다른 형태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카카오택시나 티맵택시 사례와 같이 콜택시 애플리케이션이 많이 보급되어 있으나, 여전히 빈 택시가 승객을 찾아 헤매는 방식은 비효율적입니다. 무인택시는 공공이나 민간 사업자들이 마련한 몇 군데의 거점에서 대기하다가 승객이 택시 탑승을 원하면 가까이 위치한 곳에 승객을 태워 도착지에 내려주고 다음 거점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굳이 자동차를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됩니다. 운전자 없이 택시를 이용하는 것은 자신의 자가용에 탑승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죠. 점차 상승하는 자동차 구입 및 유지 가격으로 인해, 자가용 구매보다 무인 택시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입니다. 또한 특정 시간대에 승차 거부와 택시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심야에는 승객이 없는 빈 택시가 도로를 메우는 일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림2> 미국의 유통회사 아마존은 지속적인 연구개발의 결과로
2016년에 30분 이내에 상품을 배송하는 무인배송시스템 Prime Air의 시범 운영을 진행했습니다.
(사진 출처: 아마존_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자율주행의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또 하나의 변화는 도시가 더 입체화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자율주행이 자동차뿐 아니라, ‘드론’이라 불리는 무인항공기 기술과 연결되었을 때 가능합니다.
이미 2013년에 미국의 유통회사 아마존에서는 드론으로 개별 가정에 상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를 시험했습니다. 여전히 아마존, DHL, 알리바바 등의 유통기업들은 무인항공기를 통한 배송 시스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물류 수송이 도로 교통에서 완전히 해방되면서 신속한 수송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기업은 이 기술의 현실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드론 기술은 제도적으로 사생활 침해와 보안, 해킹을 통한 범죄 이용 등을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인천의 경우, 공항 주변과 휴전선 부근 등에서 드론 이용이 금지되었고, 서울의 경우 허가받지 않은 대부분 시가지에서는 날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드론 배송 기술이 향상된다면, 도시 공간도 지금과 같은 규제에서 벗어나 이에 적합하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도시의 하늘에는 상업적인 물류 배송을 위한 드론 경로가 제일 먼저 지정될 것입니다. 마치 비행기 항로가 평면적인 이동경로와 이동고도가 정해져 있듯이 무인 항공기 도로를 구획하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 기존 도로의 상공을 이용하겠지만, 산이나 강과 같은 지형에서는 기존의 도로와는 별개로 하늘길이 정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건축적으로는 개별주택의 옥상이나 마을 단위로 드론 착륙장이 생길 것입니다. 아파트의 베란다도 마찬가지로, 어쩌면 현재 아파트 평면에서 많이 계획되는 에어컨 실외기실이 드론 착륙대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정적으로는 무인항공기를 위한 하늘길을 법적으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입체 지적에 대한 논의가 확대될 것입니다. 현재 지적제도에서 대지, 전, 답 등으로 구분하는 지목은 하나의 평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도시가 발달하면서 단일 토지를 복합용도로 이용하는 사례가 매우 빈번해졌고, 한 토지를 여러 지적 용도로 사용하거나 지목과 실제 이용이 달라지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행정기관이 토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지상과 지하를 구분하는 입체지목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꾸준히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무인항공기 이용이 활성화되면 이러한 입체 지목의 필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행정기관의 토지관리가 더욱 용이해질 수 있다고 예상됩니다.
자동차 자율주행 기술과 무인항공기의 보편화는 굉장히 먼 미래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기술로 산업, 일자리, 일상생활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도시공간도 바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공간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는지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글/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김순자 외(2016). 드론 택배 도입을 위한 각국의 정책과 발전방안에 대한 연구. 물류학회지, 26(1).
김영수,지종덕(2014). 입체지적 도입을 위한 지목세분화에 관한 연구. 한국지적저보학회지, 16(1).
김영수,지종덕(2013). 한국 입체지적을 위한 지목체계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한국지적정보학회&서울특별시 춘계학술대회 논문집.
이승준(2017). 자율주행자동차의 도로 관련법상 운전자 개념 수정과 책임에 관한 시론 –독일의 논의를 중심으로-. 형사법의 신동향, 56.
“SKT, ‘인천경제자유구역’에 5G 자율주행 인프라 구축한다”. 로봇신문. 2019.4.2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