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연 GWON Doyeon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소개
올해 한 해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창작활동을 펼쳐나갈 2019년도 10기 입주 예술가를 소개합니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는 공모로 선정된 국내외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창작 역량 강화를 위해 비평 및 연구 프로그램, 창·제작 발표지원 프로그램 등을 운영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시각과 공연분야에서 활동하는 10기 입주 예술가의 창작과정과 작업세계를 공개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권도연은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사진을 이용해 지식과 기억, 시각 이미지와 언어의 관계를 탐색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섬광기억》(갤러리룩스, 서울, 2018), 《고고학》(KT&G 상상마당, 서울, 2015), 《애송이의 여행》(류가헌, 서울, 2011)이 있으며, 미국 포토페스트비엔날레, 스페인 포토에스파냐 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고은사진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1년의 사진비평상을 비롯하여 대구사진비엔날레(2014), 제7회 KT&G SKOPF 올해의 최종 작가(2015년), 영국 브리티시 저널 오브 포토그라피의 ‘Ones to watch’(2016), 미국 포토페스트 비엔날레(2018) 등에서 수상 및 선정되었다.
The Megaphone Project_creating a wireless and embodied network of sound games_2007~present
Q. 창작의 관심사와 내용, 제작 과정에 대하여
A. 사진을 이용해 지식과 기억, 시각 이미지와 언어의 관계를 탐색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작업한 작업들로 나의 창작과정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첫 작업 <애송이의 여행>은 종이가 접힐 때마다 새로운 면을 만들어 다른 사물로 탄생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종이가 지니게 된 접힌 자국들을 통해 사물의 존재 방식에 대해 탐색하려 했다. 더불어 나의 또 다른 작업 <개념어 사전>에서는 파주의 폐도서 처리장에 수거한 사전을 수집하여, 책 안의 글자와 삽화를 드러내어 촬영한 후, 개념어와 연관된 나만의 시각적인 사전을 만들기도 했다. 이 작업을 통해 한정된 대상에 대한 시각적 사유가 확장되는 즐거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또한 <고고학> 연작은 작은 삽을 들고 동네의 개들과 땅을 파고, 발견한 사물들을 촬영한 작업이다. 사물의 효용성에는 무심하지만, 그 효용성을 제외한 다른 가능성을 살펴보는 데에 집중했다. 버려짐으로써 더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 사물들을 새롭게 호명하는 일이 나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능이 퇴화한 대상을 붙잡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다. 대상이 도구의 용도로 파악될 때, 그 사물은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도구의 존재감을 눈앞에서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은 그 도구가 망가졌을 때뿐이다. 나는 도구의 방식으로 눈앞에서 사라진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사진은 눈앞에 없는 것을 위한 ‘존재의 증명’ 이기 때문이다.
고고학 #4_Pigment Print_105x135cm_2015 | 고고학 #9_Pigment Print_105x135cm_2015 |
열 살 무렵 서울을 떠나 경기도 변두리의 신도시로 이주했다. 새로 이사한 도시에는 또래 아이들이 없어서 주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동네의 헌책방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청소년기에 문학과 이미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 1860~1904)의 단편소설들을 좋아했다. 이 시절의 독서 경험들이 지금까지 작업하는데 큰 자양분이 되었다.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이 이유는 무엇인가?
A. 두 가지 작업을 이야기하고 싶다. 먼저 <고고학 (2015)> 작업은 작은 삽을 구매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삽을 들고 동네의 개들과 함께 작업실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고고학자가 된 것처럼 진지하게 땅을 파고, 발견한 사물들을 테이블에 놓고 관찰하며 사진으로 촬영하였다. 주택가 땅 밑에는 스티로폼과 컴퓨터 부품, 캔 등 고만고만한 생활의 흔적들이 묻혀 있었다. 때로는 땅 위에서 말라비틀어진 무나 지우개 따위를 덤으로 얻기도 했다. 나는 문학을 전공한 자신이 사진을 찍고 있듯이 지우개의 운명은 꼭 지우기 위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질문이 생겼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단단하게 고정된 의미의 통념에 작은 균열을 내는 일은 나 스스로 그리고 사진가의 임무라는 생각을 한다.
개념어 사전 – 11월_Pigment print_105x105cm_2014 | 개념어 사전 – 연보_Pigment print_105x105cm_2014 |
두 번째 작업 <여진>은 어떤 풍경이나 장면 혹은 책을 볼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인상적인 여진들이 남는다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이 여진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강렬한 인상으로 남기도 하고, 분명한 인상을 받았지만 바쁜 일상에 묻혀 사라져 버릴 때도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마음속 깊이 머물러 있다가 불현듯 어떤 계기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가는 선을 따라 그려지고 다시 지워지기를 반복하는 마음속의 인상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어떤 이의 모습이나 거리의 풍경, 책 속의 구절들, 이것은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다가오고 인상을 남기며, 또 지워지는 것일까? 분주한 일상 속에 어떻게 스며들고, 스스로 존재하며 머무는 것일까? 나는 이런 문제들을 항상 생각하고 있다.
고고학 #생각의 여름_5분 5초_비디오 도큐멘테이션_2015 (참고 : https://vimeo.com/187106904)
A. 인천시 서구에 위치한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생태계교란종의 이미지를 채집하고 구성할 예정이다. 본 작업은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 1908~2009)가 말한 ‘원격접사(遠隔接寫)’, 즉 거리를 둘 때 오히려 가까워진다는 언명에서 촉발하여 아라뱃길의 공간과 생물을 지정학적이고 생태학적 관계를 사진으로 재구성하려 한다. 이 작업의 배경은 3년 전 결혼을 해서 기존에 쓰던 작업실을 정리하고 일산에 신혼집을 얻는 것에서 시작했다. 갑자기 갈 곳이 없어진 나는 집 근처의 북한산에서 일주일에 4~5일 정도는 산으로 들어가 풀과 나무의 동태를 살피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생태계 교란 동식물을 발견하고 흥미를 느껴 조사하게 되었다.
《섬광기억》 전시전경_갤러리룩스_2018 |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 등
A. 단편소설들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문학은 내 삶에서 실제로 겪는 경험과 동떨어진 느낌이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도서관에서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1903~1975)의 사진집을 보게 되었다. 나는 묘한 기분에 빠졌다. 문학이 아직껏 체험한 일이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익숙함, 즉 기시감을 심어 주었다면 에반스의 사진은 분명 익숙한 피사체인데도 처음 보는 사물인 것 같은 미시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의 사진을 보며 처음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이미지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진이 나의 현실과 나의 내면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광기억 5_Pigment Print_105x140cm_2018 | 섬광기억 #3_Pigment Print_120x190cm_2018 |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나에게 시각적인 것은 다른 것보다 친숙하고 쉽게 다가온다. 사진은 언제나 한결같이 내 삶의 기쁨과 고통 속에서도 함께 해왔다. 사진은 내 속의 열정과 사랑을 이차원의 형태로 소유하는 방법이다. 내가 가진 생의 감정을 이차원의 무언가로 전환하여 공유한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다. 만약 내가 사진을 하지 않았다면 살면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나는 내 작업이 보편적으로 보이는 것을 원한다. 만약 내 작업이 전부 개인적인 기억에 관한 것이라면 누가 관심을 가지겠는가? 물론 작업 중에는 주관적인 기억들을 담은 사진들도 있지만, 그것들이 객관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로 읽히길 원하고, 보는 이의 마음속에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길 바란다.
섬광기억 #1_Pigment Print_120x190cm_2017
Q. 앞으로의 작가로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하여
A. 사진을 하며 어려웠던 일 중 하나는 학교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정의하는 글을 쓰도록 강요당하는 일이었다. 나는 작업에 대해 어떤 답이나 결론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며, 언제나 열린 태도로 질문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디에 있든 그곳에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과 질문들이 보이기 시작한 사진은 그 순간에 서 내가 바라보고 생각하던 것, 그 전체를 포함하는 풍경을 담고 있다.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