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loo Castle Site at Fukuoka 5

얄루 성터 전시 기간 동안에 종종 이뤄진 로컬 예술인들과 만남이 계속 이어졌고 내년 초에 전통 텍스타일 마을로 유명한 히로카와 타운과 항구도시 모지코에서 전시와 레지던시를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연재에서는 가까운 미래를 한 번 더 기약하게 된 후쿠오카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나누고자 한다.

지난 회에서 언급한 노미짱은 뮤지션 친구가 많다. 전시 준비 기간에 노미짱의 친구들이 참여하는 콘서트를 따라갈 기회가 있었다. 한 층에는 음악 카페가 있고, 다른 층에는 방음 장치가 설치된 작은 합주실이 여러 개 있었다. 시간에 맞춰서 방을 옮겨가며 라이브 음악을 듣는 구조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밴드 Narukorepusinn는 노미짱의 친한 친구이자 이 콘서트를 주관하였다. 내가 듣고 자란 한국식 펑크에 즉흥 연주적 요소가 조금 가미된 친숙한 발칙함이 느껴졌다. 전문적인 음악 지식은 전혀 없지만, 펑크나 즉흥 연주의 에너지에 의존하는 음악을 오랜 기간에 걸쳐 연구한 뮤지션에게 묻어 나오는 특유의 정제된 카오스를 개인적으로 무척 아끼기 때문에 좋은 시간을 보냈다.

전시에 온 Narukorepusinn 밴드의 맴버 사카타와 큐레이터 마사에와 함께

Narukorepusinn 멤버들은 궂은 날씨에도 전시에 찾아와 선물로 밴드의 시디를 전했다. 한국의 음악씬에 관심이 많은 그들은 한국 뮤지션들과 교류하고 언젠가 한국에서도 꼭 공연하고 싶단다. 곧 한국에도 그들의 음악이 알려질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
잠깐 주어진 휴식시간에 옆 방의 팝업샵을 갔다. 제과류와 참여 밴드의 굿즈 셀러들이 있었고 패션디자이너 야마시타 히카루도 있었다. 후쿠오카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중 하나인 야마시타 히카루는 콘서트나 플리마켓에 가끔 셀러로 참여하는데 플리마켓 공지가 뜨면 전국 각지에서 그의 팬들이 찾아온다고 노미짱이 말했다. 인디밴드들이 거대 자본에 저항하여 존재하듯 이곳 패션 팬들은 아이돌 상품이나 예술 작품을 수집하듯이 작가주의 패션을 소비한다. 일본 사람들의 응용 미술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한 번 더 경험할 기회가 되었다. 일본에서 일본 현대 미술 시장이 한국보다 훨씬 작다는 비판을 종종 들었는데, 아마 이런 패션 문화도 예술을 대하는 태도나 예술품에 투자에 대한 관점이 아주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작은 일례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분의 옷은 작가주의 옷 치고 매우 저렴했는데, 생산 비용을 줄이기 위해 헌 옷을 수선하거나 원단 생산지역에 직접 가서 원단을 구하기도 한다. 홍보나 판매는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여 다양한 이벤트에 직접 셀러로 참여하면서 중간 비용을 줄인다고 했다. 거칠게 패칭되어 가정에서 만든 느낌이 물씬 나는 그의 옷은 Narukorepusinn 의 음악처럼 장난기가 가득했다. 가장 맘에 드는 원피스를 집어 들고 혹시 얄루캐슬 전시에서 사용한 원단 이미지를 이용해서 옷 수선이 가능한지 여쭤봤더니 흔쾌히 자신의 어시스턴트 미호 히노가 잘 아는 분야라며 연락처를 줬다.

후쿠오카에서 활동하는 패션디자이너 미호 히노와 미팅 중

미호 히노는 나가사키 출신으로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이다. 도쿄에서 컬렉션으로 정식 데뷔를 했고, 파코 백화점에 월이라는 멀티샵에서 그녀의 컬렉션을 만날 수 있었다. 미호에게 듣고 나름 이해한 바를 정리하자면 프렌차이즈 백화점 파코에 속한 월(WALL)은 하이 패션 멀티샵으로 일본 신인 디자이너의 등용문이라 한다. 각 지점의 패션머천다이저들은 시즌마다 신인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컬렉션을 샵에 소개한다. 후쿠오카의 월은 후쿠오카의 디자이너 소개에도 더 신경 쓴다고 한다. 머천다이저와 디자이너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시즌마다 다음 컬렉션에 대해 함께 회의도 하는데, 전국 각지 컬렉션 현장이나 가게에서 손님들에게 직접 얻은 피드백을 전해 받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미호는 말했다. 갤러리 시스템과 아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호의 작품은 내가 선뜻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지만, 절대 비싸다 여겨지진 않았다. 그녀의 옷엔 콘셉트부터 텍스타일 디자인, 원단 제작, 제봉 등 모든 과정에 세심한 손재주와 작가정신이 뚜렷하다. 게다가 인건비, 와 재료비, 유통비까지 더하면 이해가 안 가는 가격이 아니었다.

미호 콜렉션 사진

나와 나이가 같은 미호는 생각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 얄루 캐슬 이미지의 원단 인쇄 가능 여부에 대해 의논하였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패션 학교 동기가 후쿠오카에서 멀지 않은 마을에서 패션 연구소를 운영한다고 한다. 그녀도 그곳에 운영자로서 참여하는 데 그곳의 시설을 이용해보겠냐는 제안을 했다. 마이즈루 공원에 철수 기간을 쪼개서 방문하기로 했다.

히로카와 타운 패션랩 ‘키비루’의 일부 모습

히로카와 타운은 후쿠오카에서 두 시간 거리의 산골 마을로 녹차, 딸기 농사로 유명하며 얼마 전까지는 일본 아주머니의 몸빼바지 원단을 제작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몸빼바지 수요의 급속한 감소와 꾸준한 인구 감소로 몸살을 겪었는데, 몇 년 전부터 도쿄의 젊은 패션 디자이너 그룹이 죽어가는 전통 텍스타일을 살리고자 장인과의 협업을 진행하다가 히로카와 타운의 투자를 받고 패션제작 관련 시설을 갖춘 실험실과 아티스트 레지던시로도 이용될 호스텔을 짓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는 공식적인 오프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호와 유코

미호와 유코는 기차역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유코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아하는 공간 몇 군데를 보여줬다. 그녀의 따뜻한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낡고 버려진 큰 공간들이 아티스트들에겐 무궁무진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곳이었다.

80년대에 개별 관개사업이 이루어질 때까지 사용된 대중목욕탕

녹차밭

도착한 실험실과 호스텔은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가 디자인한 곳으로 전통과 새로운 감각의 은은한 조화가 훌륭했다. 밤새 미호가 얄루캐슬 전시 이미지 일부를 CNC 자수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변환했다. 기계가 새로운 파일을 소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만 실험을 했다. 히로카와산 딸기를 먹으며 셋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손짓 발 짓 더해가며 서로 좋아하는 패션디자이너와 작가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떠들었다.

실험 결과물 중 하나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화 속에서 함께 이뤄갈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한 우리는 함께 전시를 기획하기로 했다. 이후에 간간이 대화를 나누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고 2019년 3월에는 예술과 패션이 함께하는 패션쇼를 기획하려고 한다.

글·사진 임지연

임지연(얄루)
얄루 작가는 인천에서 태어나 사랑받고 자랐다. 미국 시카고 예술학교에서 학부를 마치고 동대학원에서 비디오 아트를 공부했다. 현재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히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비디오 아트 계에서 권위 있는 프로그램인 비디오 데이타 뱅크에서 린블루멘탈 장학금을 수상하였으며2016년 뉴욕한인예술재단이 주최하는 비쥬얼 아트 어워드에서 금상을 받았다. 벨기에 리지 비엔날레, 퀘벡 비엔날레 등 전세계 크고 작은 도시에서 다수의 전시 경험이 있다. 후쿠오카 아시안 아트 뮤지엄, 샌프란시스코 해드랜드 아트센터, 퀘백 라반데 비디오 등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하면서 역량을 쌓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