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사막이 흐른다

난 사하라에서 왔어 
“난 사하라(Sahara)에서 왔어.” 

새파란 젤라바를 입은 그가 민트티를 홀짝이며 말한다. 

‘사하라 마을에서 왔다고? 그곳에 사람이 살아? 사하라가 어디쯤이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하라에 갈 수 있다고, 아니 사하라에 가야겠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난 사하라에서 왔어.’ 

머릿속에서 그의 말이 내내 맴돈다.

모로코 민트티

여긴 모로코(Morocco) 마라케시(Marrakech)다. 어쩌다 보니,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너무 싼 비행기 표를 우연히 발견한 탓(?)이다. 갑작스럽게 영국에서 모로코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단돈 30유로에 유럽 대륙에서 아프리카 대륙으로 넘어온 셈이다. 처음으로 이슬람 국가에 왔다는 호기심과 아프리카 대륙에 왔다는 설렘도 잠시, 마라케시에서 3일 밤을 정신없이 보냈다. 오늘 낮 메디나 시장에서 본 모로코 가죽필통 가격은 10디르함(MAD)에서 180디르함 사이를 오갔다. 아마 떠나는 날까지 가격을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신발은 3일 만에 먼지와 흙으로 뒤범벅이 됐다. 말과 당나귀, 오토바이와 자전거, 자동차와 버스 그리고 사람이 함께 뒤섞였다. 열 걸음을 채 못 가서 ‘어디에서 왔니? (Where are you from?)’라는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차이나? 자포네? 코레?”
“웰컴! 웰컴 투 모로코!”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모두가 “웰컴 웰컴” 하며 외쳤다. 그나저나 난 웰컴이고 뭐고 모로코에 사하라사막이 있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로코에 사하라사막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무턱대고 이곳에 도착한 내 모습이 사실 좀 우습다.

‘그래, 사막에 가는 거야.’

모로코 전통의상인 젤라바를 입고, 머리에는 터번을 두르고, 새하얀 낙타를 탄 채 사막을 유유히 거니는 상상을 한다.

‘그래, 사하라사막에 가는 거야.’

마라케시 거리

분홍 눈과 아틀라스 신
마라케시에서 사하라사막을 가려면 아틀라스(Atlas)산맥을 넘어야 한다. 아틀라스산맥? 뭔가 익숙한 이름인데…. 아, 하늘을 떠받들어야 하는 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의 그 아틀라스 신! 그럼 이곳의 아틀라스 신은 아프리카 대륙을 지고 있어야만 하는 벌을 받은 건가? 지도를 살펴보니 아틀라스산맥은 모로코뿐만 아니라 알제리와 튀니지에 걸쳐 우뚝 솟은 거대한 산맥이다. 아프리카를 길게 가로지른다. 세계 테마기행이나 신화 속에서 봤던 아틀라스와 사하라라는 이름이 무척 낯설다. 이유야 어떻든 곧 이곳에 간다니 가슴이 뛰었다. 며칠 후 새벽에 일찍 버스를 타고 드디어 사하라로 출발했다. 마라케시에서 사하라까지는 여덟 시간 정도 걸린다.

아틀라스산맥

“산맥을 넘을 때 멀미를 할지도 모르니 비닐봉투를 준비하세요.”

고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멀미가 심하게 난다는 이야기와 멀미가 너무 심해서 버스를 멈춰야 했다는 이야기, 기상이 악화되면 버스를 중간에 멈추고 밤을 새워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별의별 이야기를 들으며 버스를 타고 산맥을 서서히 올랐다. 얼마쯤 지났을까? 버스는 어느새 높은 고개에 올라섰다. 그러자 장관이 펼쳐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이하고 광활한 광경이었다. 난 산맥이라 해서 단순히 거대한 산을 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산맥이라기보다 거대한 대륙처럼 느껴졌다. 아틀라스산맥은 상상한 산맥이 아니었다. 아틀라스산맥을 넘는 일은 끝이 보이지 않게 거대한 대륙을 넘고, 지구의 한 부분을 넘는 것이었다.

문득 창밖으로 눈발이 휘날렸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맞는 눈이라니….
그런데 뭔가 낯설다. 주변이 온통 연한 분홍빛이다. 하얀 눈이 아닌 고운 연분홍색 눈이 온 땅을 뒤덮는다. 아틀라스 신이 짊어진 아프리카 대륙의 기운이 강하디강해 눈이 붉게 물든 것일까? 서울에서는 종종 새하얀 눈이 내린 뒤 회색으로 변해 버린 도로의 눈을 보기만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곱디고운 연분홍색으로 뒤덮인 눈을 보니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 와 있는 것 같다. 난 어디로 가는 걸까? 분홍빛 눈이 쌓인 신화 속 세상을 넘어가는 상상을 하는 사이 버스는 산맥의 한가운데에 잠시 멈췄다. 아틀라스산맥에서 파는 양고기 바비큐를 사 먹었다. 짭조름한 것이 참 맛있다. 분홍빛 눈과 아틀라스, 양고기, 사하라, 모로코, 이슬람 등 낯선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분홍빛 눈이 쌓인 아틀라스산맥

8시간을 넘어가는 동안 단 한순간도 눈을 감지 않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피곤했는지 졸음이 밀려왔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져 버스는 캄캄한 길을 계속 달렸다. 덜컹거리는 버스에서도 졸음은 쏟아졌다. 분홍빛 눈이 쌓인 아틀라스산맥을 넘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에줄(안녕하세요) 사하라
버스는 밤새 내달려 무사히 사하라의 하실라비드 마을에 도착했다. 사막에도 마을이 있었다. 간밤에는 깜깜해 아무것도 보지 못했기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테라스로 나갔다. 거대한 모래 산이 눈앞에 서 있다. 저 거대한 산이 사막의 일부라고? 사막은 금이 쩍쩍 갈라진 보잘것없는 땅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모래 산은 붉은빛을 뽐내며 당당하게 서 있다. 정말 이곳이 사막인가? 빵과 치즈, 토마토, 오렌지 주스, 달걀 등 모로칸식 아침을 먹으며 거대한 모래 산을 보고 또 본다. 사막을 거니는 사람들이 개미만하다. 저 수많은 모래알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산을 이루다니 정말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
나에겐 비장한 첫걸음이지만, 사실 이곳에 사는 베르베르인들에겐 동네 산책하듯 걷는 사하라 사막 산책이다.  사하라 마을에 사는 주민들의 특권이다. 사하라 산책.

하실라비드 사하라사막에서 보이는 거대한 모래산

사하라사막 마을

사막을 걷는다. 발가락뿐만이 아니다. 손, 머리, 눈, 코, 입 … 구석구석 모래가 숨어든다. 처음 본 사막은 출렁출렁 붉은 빛이 넘실댄다. 땅의 여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붉은 사막이 숨 쉬고 춤춘다. 사막은 바다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파도처럼 바스러진다. 난생처음 바다를 걷듯 거대한 모래산에 오른다. 모래 속으로 발이 쑥쑥 빠진다. 파도를 걷고, 바다를 걷고, 구름을 걷고, 하늘을 걷는다. 걷는 법부터 다시 배우며 모래산에 꼭대기에 오르니 온몸에 지구를 머금는다. 나도 모르게 속삭였다.  ‘애줄 사하라(Azul Sahara)!’ (애줄은 모로칸 아닌 사막에 사는 베르베르족(Berber) 인사말이다)

거대한 모래 산에 오르는 나

파도 같은 물결이 새겨진 사하라사막

그 흔한 낙타도 타지 않은 채 하실라비드 사하라사막에서 여러 날을 보냈다. 그저 매일매일 숙소 앞 사막에 맨발로 올라가 뛰어놀았다. 시시각각 물결치는 모래 언덕을 바라봤다. 척박한 땅일 줄 알았던 사막은 아이러니하게 너무나 풍요로웠다. 오늘은 사막에서 수백만 년 전 물고기를 만났다. 베르베르 아이들이 내민 목걸이 속 생명이다. 수백만 년 전 사하라에 살던 물고기는 이제 화석이 된 채 목걸이 안에서 나를 만났다. 물고기가 지나온 영겁의 시간이 아이들과 나를 감싸고 흘렀다. 그들의 운명은 기나긴 시간을 지나왔다. 수백만 년 후 나는 어떤 흔적으로 남을까. 목걸이 속 물고기만한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을까?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수백만 년 시간이다. 사하라는 척박하기는커녕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사하라 마을의 낙타와 아이들

사막을 걸었다. 매일 걸었다. 여기가 정말 사막인가? 아니면 내가 사막의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무엇 때문에 여기 온 걸까.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얻으러 여기 온 걸까.

나는 사막의 이마지겐
난 사하라 사막에서 돌아온 후 사람들에게 사하라사막, 자립형 레지던스를 다녀왔다고 말하곤 한다. 그곳에 머물며 느낀 것을 한국으로 돌아와 작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레지던스를 간다고, 작업을 하러 간다고, 비장한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하라사막은 대자연과 나의 경계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매일 사막을 걸으며 모래알처럼 작아진 나를 발견했다. 사막이 우주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막의 모래를 보며 기나긴 우주를 품은 시간을 상상했다. 

우주 같은 사막

사막에서

그저 우연하게 홀연히 간 사하라사막에서 난 3개월 레지던스에 못지않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를 자연스럽게 내 작업과 연결시킬 수 있었다. 올해 7월, 세마창고(SeMA)에서 전시한 영상 작업 ‘내 몸에 사막이 흐른다’ 작품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베르베르인을 만났다.
‘고귀한 사람’, 이마지겐(imazighen)이란 불린 이들은
사막과 함께 태어나고 사막과 함께 죽는다.
이들은 말한다. ‘나는 사막이에요. 내 몸에 사막이 흘러요.’
베르베르인의 핏줄 속을 걷듯 이들을 따라 사막을 걷는다.

사막에서 붉은 바다를 보고 맹렬한 모래바람을 맞으며 사막의 숲을 보고 지구의 탄생과 소멸을 느낀다.
매일 사막을 걷자 이마지겐처럼 내 몸에도 사막이 흐른다.
나는 사막을 걸은 게 아니었다.
그곳은 지구 또는 우주,
나는 그 어딘가에 있다.

슈크란(고마워요), 사하라

SeMA 전시 전경

영상 작품 ‘내 몸에 사막이 흐른다’ 중 일부

·사진 이승연

 

이승연(Seung youn LEE)
고대사와 신화, 또는 상상의 극한을 보여 주는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고대’라는 재료를 갖고 미래를 얘기한다. 최근에는 물리학과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드로잉을 기반으로 철과 나무, 패브릭,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작업한다. 2012년에서 2017년까지 영국인 알렉산더와 ‘더 바이트 백 무브먼트’아티스트 듀오로 활동했다. 당시의 신화적·종교적·사회적 관심은 개인작업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영국 서머싯 하우스, 국립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 문화역 서울 284, 영은 미술관,
켄 파운데이션, 베를린 ZK/U, 등지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구석기 시대의 동굴벽화처럼 영원히 남을 작업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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