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하고 새로운 열정으로 가득한, 그래 ‘바로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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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예술가의 낯선 등장을 환영하는 <바로 그 지원>은 당신의 소중한 작업을 위해 사람, 공간, 자원과의 연결을 돕는 소규모 지원 프로젝트입니다. <바로 그 지원>은 공모 과정으로 진행하지만, 서류로만 평가하지 않고 인천에서 먼저 활동했던 동료 청년예술가들이 당신의 작업을 응원하고 지역과의 연결을 돕습니다. 심사위원도 있지만 그들의 역할은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예술적 안목을 걸고 가능성을 찾아내고 당신의 작업을 지지하는 일입니다. <바로 그 지원>에서는 매달 청년예술가의 새로운 작업을 만나고 함께 예술을 하는 동료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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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처음 시작되어 올해로 2년차를 맞이한 인천문화재단의 ‘바로 그 지원’, “청년 예술가의 낯선 등장을 환영”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7월에도 많은 2~30대 예술가들이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이날 프리젠테이션 파티에서는 총 24팀의 프로젝트 계획들이 장장 3시간에 걸쳐 선보여졌습니다. 5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내에 자신의 프로젝트를 최대한 잘 전달하고자 말을 빨리하던 발표자, 퍼포먼스의 방식을 활용한 발표자, 그리고 영상과 설치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들을 활용한 발표자 등, 각자의 삶과 사회를 표현해낸 그 작업물만큼이나 이를 소개하는 방식들 또한 참으로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현장이었습니다. 같은 시대를 따로 또 같이 겪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비슷하면서도 또 그만큼 다른 다양한 시각들을 통해 “오늘 우리는”이라는 막연한 큰 그림을 그려보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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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젠테이션의 첫 문을 연 이지혜 작가는 온라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각종 위장용 몰래카메라의 제품 이미지를 띄우며 자신의 프로젝트 밥상머리교육에 대한 소개를 시작하였습니다. 리벤지 포르노와 각종 불법음란물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매체, 애초에 방범 목적으로 제작되었지만 어쩐지 지금은 여성혐오 범죄의 상징물 중 하나가 되어버린 몰래카메라. 이 몰래카메라를 자신의 집 ‘밥상머리’에 설치하여 “물 한 잔도 자신의 손으로 떠 마시지 않는” 아버지를 ‘도촬’할 것이란 작가의 계획에 현장 곳곳에선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가장 일상적인 공간인 식탁에서 작동하고 있는 가부장제의 남성 권력을 오늘날 어쩌면 가장 ‘남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매체로 담아낸다는 아이디어가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몰래카메라라는 방식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니 만큼 과정에 대한 고민이 필수적일 것 같다는 우려 역시 표출되었습니다.

백소연 작가의 낙태키트 역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성차별 문제를 다룹니다. 낙태라는 키워드로부터 출발한 작가의 문제의식은 공익광고와 법 제도 그리고 사회적 시선 전반이 어째서 낙태를 여성의 문제로만 치부하는지, 더 나아가 여성 당사자의 생존권은 어째서 태아의 생존권보다 우선시되지 못하고 있는지 질문합니다. 그리고 섹스-임신-낙태 이 일련의 과정이 한 여성 개인만의 일이자 책임이 아니라는 의식에서 출발해 ‘랜덤 임신’이 가능한 가상의 세계를 창조해냅니다. 피임 없는 섹스를 한 쌍방 중 한 측이 성별과 무관하게 무작위로 임신을 하게 된다면 낙태절차도 지금보다 훨씬 간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으로 영상과 설치를 아우르는 ‘낙태키트’ 프로젝트를 진행시켜 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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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프로젝트가 상황이나 관계를 전도시켜 보여주는 역지사지의 화법을 취한다면, 신민 작가의 Basketball Standards는 전쟁의 이면에 끊임없이 비가시화 되고 있는 여성 피해자들의 문제를 형상화하고자 합니다. 여러 전쟁지역에서 성노예/성폭력 범죄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범죄와 그 피해자인 여성들은 전쟁 담론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시작이었습니다. 작가는 조형-퍼포먼스-영상으로 이어지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농구골대’ 조형물을 통해 전쟁과 스포츠의 공통 요소인 공격성, 몰입, 예측불가능성, 이데올로기 등의 상징을 마치 우뚝 선 전쟁기념비처럼 형상화하고, 이를 여성의 신체에 덧씌워 마치 칼을 쓴 듯한 이미지를 연출해 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퍼포머 인건비를 위해 지원하였다는 작가는 자신이 직접 시연을 보인 퍼포먼스 영상의 ‘막 찍음’을 강조하며 퍼포머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는데, 이에 스크린으로는 마치 유령영화와도 같은 영상이, 그리고 객석에서는 작가에게 공감을 표하는 웃음이 동시에 흘러나오며 잠시 묘한 시공간이 연출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젠더 권력에 초점을 맞춘 위 작업들과 더불어 김지원 작가의 티셔츠와 티셔츠는 전지구적으로 자본과 노동력 그리고 재화들이 교환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 대해 일상의 티셔츠로부터 접근을 시도합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SPA 브랜드의 의상들은 어쩌면 해외 공장의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얻어낸 결과가 아닌지, 목화 재배와 원단 직조, 디자인, 제작에 이르기까지 어딘가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과정이 개입된 것은 아닌지, 작가는 위와 같은 질문들을 제기하며 최대한 윤리적인 옷을 생산하고자 시도할 예정입니다. 작가는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SPA 브랜드의 티셔츠를 그 디자인뿐만 아니라 생산 과정까지 그대로, 하지만 정당하게 임금을 지불하며 추적해 수행해 볼 것이고 이 프로젝트는 기성품과 작가의 것, 이렇게 두 장의 티셔츠로 귀결될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똑같은 결과물이지만 각 티셔츠의 최종 생산비용과 가격은 각각 얼마일지, 또 작가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들을 거치게 될 지가 상당히 궁금해지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렇듯 프리젠테이션 당일 현장에는 작가들 자신이 느끼고 살아가는 이 세계를 사회적인 차원에서 작업 속에 담아내고자 하는 프로젝트들이 상당수였습니다. 여러 사회현상에 대해 지금껏 기록한 프로젝트들처럼, 작가 본인의 문제의식과 시각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작품들이 다수이긴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 관찰자 내지는 기록하는 자의 입장에서 현상에 접근하는 작품들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박가인 작가의 <마운틴 패션 매거진>은 언젠가부터 유행하고 있는 40~50대의 산악회 모임, 그리고 그곳에서 피어나는 중년의 사랑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한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등산복 코디가 뛰어난 중년 산악인들의 이미지를 몇 보여주며, 취재 결과 이 코디들이 모두 나름의 철학에 기반한 것이란 작가의 말에 현장에선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등산의 편리함을 위한 기능적 목적이 아닌, 등산복의 디자인과 코디 정보를 강조한 이미지 컷들은 마치 스트릿 패션 매거진을 연상시키기도 하였고, 오늘날 중년 세대의 하위문화와 유행을 대략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게 하는 등,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중년의 삶과 사랑에 대해 나름의 상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작가는 더 나아가 산악회에서 벌어지는 불륜 혹은 사랑의 현장을 포착하여 낭만주의 회화로 재구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밝혔습니다. 작가가 포착한 중년의 ‘낭만적’ 사랑이 어떤 결과물로 나타날지 기다려집니다.

‘파티 없는 응원단’의 홍민기 작가는 이 날 프리젠테이션 파티에서 동명의 프로젝트 파티 없는 응원단의 단원을 공개적으로 모집하며 해당 단체의 ‘파티Party 없음’을 거듭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국경없는의사회 등의 NGO 단체들처럼 조끼 유니폼을 맞춰 입고 여러 분쟁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는 응원단은,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편집을 최대한 배제한 채 영상으로 기록을 남깁니다. 동시에 편가를 것 없이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부채질’을 하고자 부채를 배포한다고 합니다. 이는 논쟁 자체가 뜨겁게 불붙길 바라는 것이며, 속한 ‘파티’는 없지만 전체로서의 혹은 논쟁 그 자체로서의 현장 자체를 응원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프리젠테이션 당일에는 현장에 있는 동료 예술가들에게 부채를 배포하기도 했는데요, 향후 활동을 위한 단원 모집 역시 성공적으로 뜨겁게 불붙길 바랍니다.

그룹 P2A의 MRS(Media Rental Service)는 본격적인 아카이브 프로젝트로 동시대의 영상 작업물들을, 특히 미술과 영화가 중첩되는 영역의 영상 작업물들을 수집하여 목록화하고, 이를 대여라는 방식을 통해 감상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전시를 통해 접하게 되는 영상물들이 단기간의 전시 후 파일 형태로 보관되고 기억 속에서 휘발되기 보다는, 아카이브-렌탈 플랫폼을 통해 다시금 소통의 매체가 되고 작가들을 소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듯 했습니다. 불법복제 가능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긴 했지만, 발표자 이양현 씨의 말을 빌려 이 “포스트인터넷의 시대”에, 그리고 이 “포스트시네마의 시대”에, 굳이 사라진 지 오래인 아날로그 비디오 렌탈샵의 형태를 본따 예술계의 생태계를 다양하게 보존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취지가 새삼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예술 생태계, 동시에 이를 논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논해야 하는 사회의 생태계에 대한 고민은 아카이브의 방식뿐 아니라 전시에 대한 욕구 그리고 공간과 자아에 대한 욕구로 드러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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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스윗 홈’의 김해성 작가, 아니 김미미짱은 ‘갈 곳 없는 사람들’로 자신의 프로젝트 팀을 정의했습니다. 성인이 되며 겪었던 20번에 달하는 이사 경험, 재개발 공사로 인해 집주변이 폐허가 되며 토끼를 묻어줄 수 없었던 경험 등, 미미짱은 소위 청년 세대로서 그리고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느껴온 모종의 소외감을 “전시하고 싶다”는 한 마디로 정리해낸듯 싶었습니다. 작가로서 전시를 하고 작업을 내놓고 싶은데 정작 내놓을 수 있는 공간이나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 소외감은 아마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몸을 누일 따뜻한 집이 필요하듯 자신들의 작업물 역시 그것들이 표현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에 놓일 수 있기를, 그리고 이러한 소통의 장이 다시금 함께 먹을 것을 나누는 삶과 잔치의 공간이 되고 작업의 기반이 될 수 있기를, 미미짱은 바랬습니다. 많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섹스 전시하고싶다”라는 발표 마지막 이미지로부터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머무름/전시’를 바라는 마음이 깊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7월 ‘바로 그 지원’은 이렇게 미미짱의 프로젝트처럼, 도시의 제한적이고 선별적인 공간자원으로 인해 위태롭거나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대상들을, 그리고 이미 사라진 대상들을 이야기하는 프로젝트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사진 작업을 하는 곽은비 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으러 다니며 골목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성장만큼이나 빠른 한 도시의 ‘성장’과 재개발로 인해 살아온 지역들은 자꾸 사라지며 아파트가 되었고, 이에 기억을 회상하고 추억할 수 있는 공간들이 사라졌다는 황망함이 들어 공간들에 대한 기록과 표현의 욕구가 생겼다고 합니다. 작가의 사진 시리즈 폐허 속의 오브제는 재개발로 인해 폐허가 된 공간에 소녀를 배치해 촬영하며, 공간 속에 고여 함께 허물어진 시간, 즉 소녀였던 시절과 기억을 폐허가 된 공간 속에서 끄집어내고자 합니다.
이민경 작가 역시 자신이 살던 집이 재개발로 철거되며 맞닥뜨리게 된 낯선 풍경, 그리고 그 낯섦으로부터 비롯된 트라우마로 인해 막연한 풍경 작업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공간은 이미 사라져버렸지만 작가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은 공간의 부분과 파편들을 모형으로 제작하고, 그 모형들을 바뀐 풍경 가운데 배치하여 공간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파편적인 기억은 결국 부분적이기에, 공간과 인간이 변화해왔음을 그리고 변화해갈 것임을 드러냅니다. 작가는 해당 작업이 지역에 기반한 것이기에 오브제 설치와 촬영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프로젝트를 지속하며, 다양한 조형물로 확장해나가는 작업으로 발전시켜보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16기가바이트 용량의 스마트폰은 저장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지속적으로 사진을 삭제하고 있다는 이서연 작가는 자신의 이서연 개인전을 통해 자신과 타인에 의해 버려지는 것에 대한 관심을 담아낼 계획입니다.어떤 선별 기준에 의하여 별 것 아닌 것, 버려질 것으로 여겨진 대상들을 페인팅으로 기록하는 작가의 작업은, 흥미롭게도 무형의 스마트폰 기기 공간으로부터 시작해 인천 곳곳의 재개발 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주의 공간을 아우릅니다. 끊임없이 세련화되고 있는 도시, 그리고 그 도시에서 유형에서 무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과 관계맺으며 사는 우리는, 어쩌면 이제 삶과 정체성을 이루는 공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 감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던 프로젝트였습니다.

글 / 송이원(丙소사이어티에서 글 쓰고 연출하는 사람)
사진 / 오석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