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로 예술을 창조하다 <사운드 코드 비주얼>
12월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에서는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특별한 강의가 열렸다. <사운드 코드 비주얼 – 창조적 숫자에서 시작되는 오늘의 음악>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강의는 코딩을 통한 사운드 및 영상 제작을 배운다. 요즘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코딩을 배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 ‘코딩’은 많은 사람에게 생소하다. 나 또한 사운드와 비주얼은 친숙하나 중간에 툭 껴있는 ‘코드’는 낯설다. 코드에 대해 궁금증을 품은 채 아트플랫폼으로 향했다.
공연장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인 풍경은 15명 남짓한 학생들이 테이블 위에 각자 한 개씩 노트북을 펼쳐놓고 강의를 듣는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인천문화재단에서 열어온 다양한 강의에 참관했지만, 개인마다 PC를 한 개씩 두고 하는 강의는 처음이었다. 이번 특강의 강사님은 ‘그레이코드’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인 아티스트 조태복 님이다. 다양한 활동을 하셨지만, 그 중 아트플랫폼 레지던시 7기 입주작가이기도 하셨다. 활동보고 전시회에서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있었는데, 빨간색에 해당하는 사운드와 함께 미디어 아트가 같이 전시되어 있었다. 강사님의 작품을 통해 사운드예술을 접해보고 코딩을 통한 사운드/미디어 제작의 기초를 배운 뒤 그것을 통해 자신만의 사운드X비주얼 인터랙션 작품을 만들어 보는 것이 본 강의의 커리큘럼이었다.
참관한 당일에는 ‘사운드’를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음악과 산수, 미술의 세 가지 과목을 합쳐 표현해내는 것이 코딩을 통한 사운드X미디어 아트였다. 사운드가 음악과 미술이라면, 비주얼 코딩이 산수에 해당한다. 컴퓨터를 통해 무언가를 표현해내기 위해서는 이에 해당하는 숫자, 즉 코드들이 필요하다.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보는 빨간색 물감이나 눈앞에 있는 사람은 보는 그대로지만, 컴퓨터를 통해 보게 되는 빨간색과 사람은 결국에는 어떤 숫자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숫자(코드)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코딩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수, 음악, 미술 모두를 각각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굉장히 어려운 개념이라고 느껴졌는데, 의외로 학생들은 더 쉽게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MAX 프로그램으로 소리를 만드는 기본적인 방법들과 알고리즘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여러 박스를 이용해서 그 안에 명령어를 넣고 각각의 박스를 연결하여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다. 명령어들의 순서와 계산이 무엇보다 중요해서 명령어와 박스를 사용하는 방법을 기억하고 익히는 것이 핵심 같았다. 코딩을 통해서 무언가를 표현해야 하므로 우리가 실제로 행하는 행동들을 컴퓨터 언어로 바꿔 생각해보아야 답이 보였다. 예를 들어 앰프를 통해 기타 소리를 내고 싶다면 기타에 연결선을 꽂고 그 선을 다시 앰프에 꽂아야 한다. 그리고 음향의 볼륨을 조절하며 어떤 음과 박자로 연주할지를 선택해서 소리를 낸다. 실제로 그렇게 하려면 내가 손으로 직접 선을 연결하고 앰프의 전원을 켜고 기타를 원하는 대로 연주하면 되지만, 컴퓨터를 통해 원하는 소리를 내려면 그 모든 행동을 코드를 입력하고 연결해야 한다. 컴퓨터 자체가 악기와 앰프가 되어 학생들이 연주(코딩)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방법을 설명하고 학생들이 직접 체험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강의의 내용을 만약 책으로 접했다면 머리가 굉장히 아파 진도를 얼마 나가지 못하고 덮어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 컴퓨터로 소리를 내고, 하나씩 차근차근 배워가며 중간중간 퀴즈와 게임을 통해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을 즐거운 고민으로 바꿔버렸다.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얼굴은 흥미로움으로 가득했다. 학생들이 생각보다 쉽게 소리를 낸다고 느껴지는 찰나에 강사님은 중요한 한마디를 던졌다. 소리를 내는 것 자체는 쉽지만, 그 소리를 이용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사실 무언가를 창조할 때 보다 중요한 것은 ‘왜’ 혹은 ‘무엇’이라고 되묻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종이비행기를 접는 방법을 알려주었다고 해서 바로 비행기를 접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뒤로, 대각선으로, 반으로, 4등분으로 접었다 폈다를 여러 번 시도해보며 비행기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종이를 접는다’는 것은 프로그램 사용 방법이라면 ‘종이비행기’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고, ‘종이비행기를 접는 방법’이 바로 코딩이다. 코딩을 통한 사운드 예술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 사운드를 낼 수 있는 코딩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 과정은 어렵지만 중요한 사항이다.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의 작품을 보면 그냥 마구잡이로 붓을 흔들어 물감을 여기저기 어지럽게 뿌려놓은 것 같다. 혹자는 ‘에이, 저걸 누가 못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물감을 마구 뿌려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군가 옆에서 그렇게 해보라고 알려주지 않는 이상 먼저 떠올리기 힘들다. 그런 ‘생각’이 잭슨 폴락 작품의 가치를 만든 것이다(물론 미적인 가치도 있다). ‘코딩’을 통한 예술도 마찬가지 아닐까.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까. 이것이 전부다. 과학기술과 예술 사이의 경계선만 무너뜨린다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입체적인 생각과 상상력,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섬세한 계산들. 학생들은 이번 강의를 통해 새로운 ‘표현방식’을 배우게 되었을 것이다. 바로 창조적 숫자에서 시작되는 오늘의 예술을 말이다.
글 시민기자단 이은솔
사진 인천아트플랫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