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그리고 해냈다!

공연이 드디어 끝났다.
지난 8월 첫째 주 토요일에 신흥동 칠통마당에서 첫 만남이 있은 뒤에 석 달여를 달려온 결과를 어제와 오늘 무대에 올렸다. 연습 과정 내내 참여하며 과연 이 상태로 무대에 올릴 수 있을까 하며 염려했던 일이 언제였지 싶을 정도로 모두가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며 즐겁고 뿌듯하게 우리의 연습 결과물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2018 인천 시민왈츠 시민창작뮤지컬 <강화, 1866 삼람성 분투기>
©최종규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걸음
이제는 까마득하게 여겨지는 지난봄을 난 참 힘들게 꾸리고 있었다. 웃어도 웃지 않고, 즐거워도 즐겁지 않은. 보통 한 마디로 힘든 시간이었다. ‘우울’이라는 게 딱 달라붙어 새로 시작되는 아침도 반갑지 않고, 늘 반복되는 일상도 버거운 그런 나날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인천문화재단에서 후원하는 시민 창작 뮤지컬 <2018 인천왈츠> 단원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며칠 망설이다 신청했는데, 그 신청했다는 것만으로도 하늘이 달라 보였다. 그리고 토요일 1시면 서둘러 도화동의 공연예술연습공간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의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 지나고 나면 토요일엔 소파에서 티브이 시청하기가 내 생활이었다. 아이들은 자라 내 손길보다는 관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직장 관계로 가끔 마주하는 남편도 편히 쉬며 내 간섭을 원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힘들다 외롭다는 생각에 퇴근길에 걸어오며 울고, 가족들에게 하소연해도 요즘 말로 1도 달라지지 않는 그들의 태도에 오로지 티브이 앞에서만 내 마음을 달래던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토요일의 연습을 기다리며 5일을 보내고 서둘러 간단히 집안일을 마친 뒤 연습실로 가는 내 발길은 날 듯 가벼울 수밖에.

내 이름 석 자가 불리지 않았다.
오늘 공연이 끝나고 우리 모든 인천왈츠 단원들은 저녁을 함께하며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석 달여를 지내며 즐거운 시간도 많았지만, 위기의 순간도 있었고, 안타까운 상황도 있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잘 헤쳐 온 것을 서로 자축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작년보다 2배 이상 많은 시민이 인천왈츠에 신청했다. 너무 많은 인원이라 스텝 관계자들은 참 난감해했단다. 드라마 팀만 108명이 지원을 해서 두 개조로 나누어 연습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여러 개인적인 이유로 참여를 못 하는 이들도 생겼고, 배역이 정해진 뒤에는 더 많은 인원이 불참했다. 몇 주 동안 기본 동작과 호흡, 발성 등을 익히며 준비하는 과정이 지나고, 간단한 대사와 노래를 통해 배역을 받았는데, 이 배역을 받고 못 받는 시간을 통해 불참하는 인원이 더욱 발생한 것이다. 사실 나도 첫 번째 배역을 발표할 때는 내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설마 이번에는 부르겠지~ 하며 기다렸지만, 끝내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아 참 서운하고 속상했다. 아니 창피했다. 배역을 정할 거라는 날이 오기 전에 설령 내가 배역을 받지 못하더라도 참여하는 데 의미를 두자고 생각했었다. 코러스나 안무로도 참여할 수 있다 했기에 그렇게라도 끝까지 참여하며 가야겠다고 다짐했던 터였다. 그래서 내 옆에 있던 이에게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교과서에서 접했던 피천득의 ‘소리없는 연주’라는 수필을 떠올리며 우리도 끝까지 가자고 말했었다. 그런데 현실은 참 냉혹했다. 내 이름이 불리지 않으니 그냥 기분이 나빴다.

2018 인천시민왈츠 오리엔테이션
©백지영

11시가 다 되어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참 여러 생각을 했다. 내가 무엇이 부족했지? 노래는 뭐 썩 잘 부르지 못한 것은 인정한다 해도 대사는? 왜 아니지? 그동안 연습 시간에 늦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고, 안무나 몸을 풀고 걷고 구르는 모든 연습을 할 때도 가능하면 앞에 서서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했는데, 왜 나는 선택을 못 받았지? 화가 났다. 조연출에게 연락해서 왜 내가 선택을 못 받은 것인지 그 이유를 알아야겠다고 물어볼까? 버스에서 내린 나는 공원을 걷고 있었다. 운동해서 일단 체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얼마 전부터 시작한 걷기 운동이었다. 그래, 더 열심히 해서 반드시 배역을 받고 말 테다. 나를 처음에 뽑지 않은 것을 분명 후회할 거야.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고 숨겨진 능력도 참 많은데…. 걸음이 빨라질수록 내 생각은 그렇게 굳혀지고 있었다. 그 뒷날부터 쪽대본을 외우기 시작했다. 외워 가면 또 연습하며 지도해 주신대로 익혀 가면 연출 선생님의 눈에 들 거로 생각하고 반드시 그렇게 되고 싶어서 금방 까먹는 대본을 자꾸 읽고 또 읽으며 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토요일이 되니 연습실에 가고 싶지 않았다. 가기 싫었다. 배역이 없으니 내 자리가 없다는 생각이 내 발걸음을 그냥 집에 앉히려고 했다. 다행히 버스에 올랐고 난 또 어김없이 연습실에 있었다.
지난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8월 첫 주에 초등학교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지난 5월에 결정했던 제주 여행을 예약할 거라는. 아차, 잊고 있었구나! 11월 3, 4일에 제주도로 놀러 가자고 약속했었는데 그걸 잊고 있었다. 어떡하지? 친구들과의 약속이 선약이었는데 우리 공연은 11월 17, 18일이라 3일에 여행을 가게 되며 연습에 분명 차질이 있을 터였다. 지금은 토요일만 연습하지만, 공연날짜가 가까워지면 일요일은 물론이고 평일까지도 연습하게 될 터인데…. 한 사람이라도 빠지게 되면 연습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고 그게 나라는 것은 나 자신이 받아들이기 싫었다. 망설이다 사실대로 말했다. 결정은 내가 해야 하는데도. 내 말을 들은 친구는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 그 말에 용기를 내고 제주 여행은 못 가겠다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다행히 친구들은 내 공연에 많은 응원을 해주고 축하해주었다.
그날 연습실에는 지난주보다 자리가 좀 더 비어 있었다. 그리고 강화 여인들을 연습할 때 한 자리가 비어 있었고, 출석부를 들여다보시던 연출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셨다. 황미경 님! 야호, 내게 드디어 기회가 온 거야.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 연습 무대로 나갔다. 열심히, 또 잘 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강화 여인들의 대사는 짧았다. 정말 짧았다. 금방 외워도 될 채 10줄도 안 되는 대사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 한 줄 한 줄이 어렵다. 연출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머릿속에서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내 목구멍을 통해 나가는 소리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래도 차분하게 열정을 보이시며 원하는 대사를 끌어내려고 이끄셨고 칭찬을 해주셨다. 다른 사람들의 감탄을 들으며 대사를 해내는 이도 있고, 좀 더 연출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이도 있었다. 연습 무대가 아닌 양옆의 자리에서 들으면 쉽게 이해되는 것들이 연습 무대에만 서면 몸이 굳고 혀가 굳었다. 다행히 나 같은 이가 드물게 있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조금씩 연기라는 것을 해내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2018 인천시민왈츠 연습과정
©백지영

되돌리고 싶었던 선택
그런데 우리 연습 과정에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맡은 배역을 충실하게 해내던 단원이 갑자기 개인적인 일로 불참을 선언했고, 그와 같은 상황이 아니어도 연습에서 빠져나가는 인원이 늘어난 것이다. 108명이 출발했는데, 어제오늘 무대에 선 드라마팀 단원은 35명이다. 내가 무대에 선 배역은 강화 여인이 아니다. 시작은 강화 여인이었으나, 포수로 무대에 올랐다. 포수가 5명이 필요했는데, 경상 포수 배역을 맡은 단원이 결석하더니 연락도 없이 대역으로 연습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서로 드러내놓고 말은 안 하지만 구멍 난 배역에 대해 걱정을 하는 분위기였다. 공연날짜는 다가오는데 연습은 사람이 없어 못 하게 되는 무척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연출팀에서 어떻게든 해결하겠지 하며 애써 조바심을 달래는 터인데, 단원 중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할 수 있는 지원자를 찾는다고 하셨다. 우리 연습 단원 중 최고령자가 노래도 상당히 잘하시고 앞으로 결석할 일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그날 마침 자리한 그분께 조심스레 강화 여인에 참여하신다면 내가 경상도 포수로 가겠다고 말을 해버렸다. 물론 그즈음 가까이 지내던 양 장군 부인 역할을 하는 이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다는 그 말과 충동에~ 아, 이것은 정말 실수였다. 함부로 그렇게 내가 경상도 포수를 하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그날 집에 와서야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평소 나도 경상도 사투리를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자신하던 터였는데, 막상 연습한 것을 들어보니 아니었다. 이것은 사투리도 뭐도 아니었다. 못하는 거였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해가며 강화 여인에서 내 자리를 굳히고 몸에 붙게 잘해나가고 있다 하던 중이었는데 내가 일을 크게 저질러 버린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모든 사람이 함께한 자리에서 약속했으니 어떡하든 나는 지켜야 한다. 녹음해 온 경상도 사투리를 듣고 또 듣고, 내가 해야 할 대사를 외우고 또 외웠다. 그런데 잘 안 외워진다.
석 달 반을 연습하며 내가 정말 잘한 것이 있다. 공식적인 연습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한 것! 직장 일로 좀 늦게 간 적은 있으나, 모든 연습에 꾸준히 참여했다. 아마 그런 열정 때문에 11월에 연기연습을 위해 연출 선생님이 부르신 석호진 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실력이 참으로 이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깨달으며 달달 외운 사투리로 힘겹게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 내게 석호진 배우님의 지도는 햇살이었다. 오아시스였다. 그때 배운 것을 연습하면서 전날보다 나아졌다는 단원들의 칭찬과 격려를 들을 수 있었고, 공연날에도 떠올리며 연습을 했다.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내 일처럼 격려해주고 이끌어주고 칭찬해준 단원들 덕에 오늘 이렇게 무대에 섰다고 자신한다. 고맙고, 사랑한다, 모두.

<2018 인천시민 왈츠> ‘강화 1866, 삼람성 분투기에서 포수 역할을 맡은 황미경 씨
©노형민 제공

시민과 같이 만드는 인천왈츠
인천왈츠는 대사나 노랫말 등을 단원이 같이 참여할 수 있다. ‘강화 1866, 삼랑성 분투기’라는 제목도 단원들이 지은 것이다. 노랫말도 공모했는데, 극 중 양헌수 아내가 부른 노래는 내가 응모한 노랫말을 바탕으로 거의 80% 이상을 참조하여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그 노래는 물론이고, 이 ‘강화 1866, 삼랑성 분투기’에 더욱 애착이 크다. 그리고 처음으로 음악을 듣던 날도 잊을 수가 없다. 큰 기대 없이 들은 노래는 연습을 마치고 나가시는 음악감독님을 붙잡고 이렇게 인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제가 아주 큰 대접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석 달여의 연습을 이어가며 과연 이것을 무대에 올릴 수 있을지 염려했던 우리의 우려보다 더 애태우셨을 여러분들- 극단 집현의 최경희 대표님, 이상희 연출님, 신영길 음악감독님. 그리고 두 시간여를 지하철로 오셨다는 안무 선생님. 그리고 특히 우리 포수들에게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수염을 붙여 멋진 포수로 탈바꿈해주신 분장 선생님 등 손으로 꼽을 수 없는 그 외 여러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참 사진을 찍어주시던 기사님도. 또한 뒤에서 조용히 인천왈츠의 살림을 꾸려나가신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팀의 백지영 님, 마지막으로 석 달여를 함께 달려온 우리 35명의 단원 하나하나를 지독하게 사랑하며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그나저나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막을 내렸는데, 앞으로는 어떡하지?^^

2018 인천시민왈츠 연습과정
©백지영

글 황미경(黃美京, Hwang Mikyeong)
현재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재직중
사진 노형민, 최종규, 백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