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전당의 내일 – 인천의 도서관들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청나라에서 강희제의 명으로 1782년 ‘사고전서’라는 3,500권이 넘는 방대한 양의 백과사전을 편찬했을 때, 청나라 황실은 이 책들은 소실을 우려해서 여러 사본을 만들어 보관했다고 합니다. 마치 조선이 실록을 여러 사본으로 만들어 전국 각지에 보관한 것과 같지요. 그런데 청나라는 이 사본을 단 8부만 만들어 보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금성 내, 혹은 황실의 행궁이나 정원과 같은 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의 정조는 사고전서가 제작된 사실을 알고 어떻게든 한 부를 구입해 규장각에 두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청나라 황실은 40여 년에 걸쳐 단 8부만 만든 백과사전을 절대 조선에 내어주지 않았다고 하지요.

어릴 때부터 글을 익히고, 책을 읽는 것이 당연시 된 동양의 사회에서도 이렇게 집대성된 지식은 황실의 것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책에 접근하는 것이 제한되었습니다. 서구 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그저 장식이 아니라 글을 배우지 못했고, 글을 알더라도 함부로 성서를 읽는 것조차 허락 받지 못한 중세의 평민들에게 예수의 삶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였던 것을 떠올려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책을 통해 지식과 진리에 접근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서구가 근대로 접어들며 국가 권력을 귀족과 성직자의 손에서 ‘국민’에게로 가져왔을 때, 귀족과 성직자의 지혜가 모인 서고는 ‘공공’도서관이 되었고, 그들의 컬렉션이었던 미술품은 ‘공공’미술관에 전시되어 모든 사람들 앞에 놓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지식과 예술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 이것은 권력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있다는 것의 상징입니다.

모두에게 열린 지식의 궁전은 점차 즐거움의 공간이 되고, 문화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도서관 서가에 소설이 꽂힌 것은 19세기의 일입니다. 책으로 진리와 지혜를 구하는 것을 넘어, 즐거움과 상상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대의 필요에 맞추어, 지역의 요구에 부합하여 도서관은 다양한 문화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무수히 늘어난 ‘작은 도서관’은 책을 보는 공간을 넘어, 도서관이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21세기에 들어서 도서관은 지식의 보관이 ‘책’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남겨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도서관은 지역과 공공의 문화기반시설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책과 열람실 위주의 모습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을 시작했습니다.

2001년, 일본 센다이 시에 도요 이토가 설계한 ‘센다이 미디어테크’ -‘도서관’이라는 이름조차 사용하지 않은- 도서관이 문을 열었을 때, 건축계에서는 독특한 구조의 해결 방법이나, 자유로운 평면 구성, 도시로 열린 투명한 외피에 감동했습니다. 또한 이 도서관은 주차장을 제외한 지상 7개 층 중 단 세 층에만 열람실과 서가를 할애했습니다. 그 중에는 디지털 도서관도 있어서, 비디오 테이프, CD, DVD 등으로 제작된 영상자료나 전자책 등을 비치해 두었습니다. 4개 층은 공연장, 갤러리, 스튜디오, 녹음실 등을 계획했습니다. 1층 로비에는 한 가운데에 이벤트를 열 수 있는 오픈 스퀘어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처음 이 곳을 방문했던 2006년에는 오픈스퀘어에서 일본 전통 연극을 공연하고 있었지요. 센다이 미디어테크는 책을 모으고, 읽는 곳 이상으로, 센다이 시의 문화적 중심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하여 시애틀에 문을 연 시애틀 중앙도서관의 서가는 매우 독특합니다. 서가는 일반적인 건물처럼 여러 층으로 구분되지 않고, 거대한 램프(Ramp, 경사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책이 늘어날 때 램프 공간의 밀도를 조절해서 공간을 늘리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책을 보관할 수 있고, 전자책이나 DVD같은 형태로 변화하더라도 능동적으로 공간 구성을 바꾸어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림1> 센다이의 문화적 중심공간이 된 센다이 미디어테크(좌), 완만한 경사로로 서가를 배치한 시애틀 중앙도서관(우)

도서관은 지식 저장의 수단이 책으로부터 전자책, 영상매체 등으로 다변화 되는 것을 받아들였고, 도서관의 기능이 책을 보관하고 읽는 공간에서 공공의 복합문화거점이 되는 것도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에 맞추어 조금씩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도서관은 어떤 변화에 반응해야 하고, 어떻게 변모해야 할까요.

최근 수 년간, 정보와 지식의 전달에서 책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인터넷입니다. 일상 생활에 밀착된 정보는 블로그를 통해 얻고, 일반적인 검색 자료는 위키피디아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 세계에서 구하기 어렵다던 전문가 수준의 자료도 이제는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학은 인터넷을 통해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고, 구글 스칼라를 통해서 해외에 게재된 논문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도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강조된 인터넷을 통한 지식과 정보의 전달을 최근에 더 유심히 보게 되는 이유는 인터넷의 컨텐츠들이 텍스트에서 사진과 영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일상 정보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이미지 중심 SNS를 통해서 주고 받습니다. 뉴스 또한 이미지 중심의 카드뉴스의 형태로 제작됩니다. 더욱 중요하게 보이는 것은 유튜브로 대표되는 동영상 서비스입니다. 단순한 일상적 지식을 넘어, 유명 석학의 강연도 유튜브를 통해 전달됩니다. 더 어린 세대일수록, 더 이상 정보검색을 위해 네이버나 구글 대신 유튜브를 이용한다고도 하지요.

이런 변화는 지식이 생산되어 일반 대중에게 전달되는 시간을 현격하게 단축시켜 주고, 지식에대한 접근성에서는 책의 형태를 압도합니다. 아직은 여전히 종이로 된 ‘책’의 필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점점 더 많은 지식이 책의 형태에 의존하지 않고 만들어지고, 확산될 것입니다. 이미 수 년 전 우리는 ‘TED’의 유행을 통해서 이런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사람들은 책이 아닌 유튜브로 TED 영상을 봄으로써 세계적 석학이나 경영인, 예술가의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다른 중요하게 생각되는 점은 인터넷에 기댄 지식의 생산과 전달이 방향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책을 쓴 사람이 읽는 사람에게 단방향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과는 다르게, 최근의 인터넷 공간은 모든 사람들이 지식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다른 사람의 지식에 덧대고, 수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과정 또한 개정판을 기다려야 했던 책과 달리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지요.

우리가 도서관을 그저 책의 보관소로 여기지 않는다면, 도서관은 언젠가 이러한 지식의 생산과 전달의 양상을 반영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인터넷 접근을 위해 더 많은 PC를 설치하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통해서 세상 모든 곳에서 인터넷에 접근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도서관은 그 단계를 넘어서, 사람들이 모여서 지식을 생산하고, 수정하고, 전달하는 공간으로 변모할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저는 도서관의 미래를 최근 부각되는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림 2>공유업무공간을 넘어서 창조의 인큐베이터로 변화하고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좌). 을지로 위워크(우)

혼자서도 노트북 하나면 창업할 수 있는 시대에 독립 사무실을 갖추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여러 시설과 장소를 제공하는 코워킹 스페이스는 최근 2~3년 사이 공유경제의 부각과 맞물려 대단히 주목받고 있습니다. 코워킹 스페이스는 단순히 책상과 프린터, 인터넷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용자들에게 필요한 강의를 마련하기도 하고, 서로 멘토링을 할 수 있도록 소개해주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각자의 생각을 보완하고, 발전시키고, 때로는 협업과 동업자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코워킹 스페이스가 가능성을 인정받는 이유는 그저 새로운 형태의 임대업으로서의 가능성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에 있습니다. 공간을 공유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생각과 지식을 공유하며 더 많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도서관은 이미 같은 공간에서 같은 책을 나누어 보면서 기초적인 공유경제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누적된 책과 지식은 미래 지식을 만드는데 중요한 기반과 참고자료로서의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또 책으로 만들어지지 못한 지역사회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래된 지식과 기억들이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될 수도 있습니다.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 운영의 경험은 새로운 지식창조자들에게 필요한 교육과 도움을 주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역단위로 연결된 공공도서관의 네트워크는 다른 도서관 이용자들과의 연결의 가능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공이 운영하는 도서관은 민간의 코워킹 스페이스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낮은 문턱의 공간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미래의 인천의 도서관이 인천 사람들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자유롭게 공유하는 공간이 되기를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글·사진 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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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소람,박성우(2015). 코워킹 스페이스로서의 공공도서관 무한창조공간 개념 분석. 한국도서관·정보학회. 4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