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우리 문화로 꽃처럼 웃는다. 제 2회 인천생활문화축제의 성장과정
제 2회 인천생활문화축제의 성장과정
지난 9월 15일 인천아트플랫폼 일대에서 100개의 동아리가 참여하는 2회 인천생활문화축제<생·동·감>이 이루어졌다.
인천생활문화축제는 사이:多를 첫 회로 작년에 시작되었지만, 그 첫 시작은 13년 전으로 돌아간다.
2005년, 인천에서 10년간 활동하던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는 인천의 문화를 바꾸겠다는 꿈으로 많은 시민을 만나고, 소통하고, 그 힘으로 문화예술 환경을 만들어내어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문화수용자 운동을 시작하였다. 시민이 주인인 문화를 만들어 문화의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문화바람’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1,000명의 문화바람을 만나기 위해 활동가(문화기획자)들이 몇 달을 뛰어다니며 문화바람을 만들어 갔다. 문화바람이 첫 번째 한 일은 공연유치였다. 그 당시, 재미있는 공연 한 편을 보려면 인천의 공연장을 찾기보다 대학로로 향할 수밖에 없었고, 예술인들도 대학로에 가서 활동해야 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거기서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로의 유명한 공연들이 전국 순회를 하면 인천은 빼놓을(서울과 가깝다는 이유로)수밖에 없어 좋은 공연을 찾기는 쉽지는 않았다. 문화바람은 회원들이 매달 내는 회비로 공연을 유치할 수밖에 없었다. ‘백창우와 굴렁쇠아이들’, 마당극 ‘밥상을 엎어라’, ‘오!당신이잠든사이’, ‘강풀의 순정만화’ 등 연 5회 문화바람과 함께 하는 공연을 유치 또는 제작하여 무대위에 올렸고 이후 많은 시민이 참여하였다.
그 무엇보다도 즐거웠던 것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회원을 보는 것이었다. 문화바람 회원도 많이 늘어났지만, 온라인 활동이 자리 잡으면서 각 동아리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었던 ‘더 많은 시민’과 만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사진동아리는 <동사진 전시회>를 매년 열었고, 통기타 동아리는 매월 작은 발표회를 열었다. 작은 발표회를 통해 조금씩 실력을 쌓아가던 동아리는 여름에 ‘인천문화예술회관 야외무대’에서 독자적인 공연을 열기도 하며 작곡동아리는 매년 창작발표회를 열었다. 활발한 동아리 활동은 자신의 모임을 넘어서 다른 동아리, 공동체, 사회로 시선을 넓혀가기도 했다. 1년에 3~4차례 교류의 자리가 열렸는데 여름에는 1박 2일로 ‘회원 MT’를 진행하였고, 가을에는 ‘체육대회’, 겨울에는 ‘송년회’를 가졌다. 또한, ‘신입회원의 날’, ‘공동체 모임’ 등을 통해 서로의 활동을 격려하고 친교를 나누는 시간을 만들어갔다.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만난 회원들은 자신을 넘어 타인을 알게 되고, 그 타인과 함께 하는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튼튼한 관계는 이후 폭발적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2006년 6월 17일, 확대된 문화바람 회원들과 함께 ‘회원의 날’ 행사를 진행하였다. 야외에서 제대로 한번 놀아보자는 취지로 만든 그 행사명은 <삐까번쩍야외축제>였는데, 그 이후2016년 인천시민문화예술축제<끼가뻔쩍시민축제>로 발전되어 11년 동안 축제가 이어졌다. 축제는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회원들은 우리가 만든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축제가 생긴 것을 기뻐했다. 게다가 타 동아리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형성되었다. 이는 이후 아마추어(생활문화)동아리 축제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사진] <끼가뻔쩍시민축제>에 여성통기타 동아리 ‘토마토’가 공연하고 있다.
처음 축제 이름은<삐까뻔쩍야외축제>였다. 3회 축제를 준비할 때였던 것 같다. 행사 몇 주 전부터 장소 근처에 현수막을 걸어 놓았는데, 그 현수막을 본 어떤 어르신이 사무실로 전화를 하셨다. “삐까뻔쩍이 뭡니까? ‘삐까’란 말은 ‘번쩍’이라는 일본어예요” 그래서 4회부터는 명칭을 변경했고, “끼가 뻔쩍이는 시민들의 축제”라는 의미를 담아 <끼가뻔쩍시민축제>로 정하게 되었다.
덕분에 동아리 활동은 점차 활발해지고, 합창단, 밴드 등 다양한 동아리가 생겨났다. 동아리 수가 늘어날수록 모임 공간에 대한 고민이 늘어났다. 동아리 간에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가 필요했다. 일터에서 업무와 집안일을 모두 끝내고 나서 어른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곳이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신나는 문화공간 <놀이터>를 만들게 되었고, 동아리들 간에 교류와 협력할 수 있는 생화문화예술동아리연합 <놀이터>가 탄생하였다. 그해는 2009년이었다.
[사진] 동아리 회장단 회의 모습이다. 놀이터는 매월 1회 동아리 운영위원회를 개최하여 사업과 운영에 대한 자발적인 결정을 하였다. 지금은 ‘놀이터’의 공간이 없어졌지만, 운영위원회를 꾸준히 개최하여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모단체인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에서 독립한 생활문화예술동아리연합 <놀이터>는 한 해의 주 사업으로 <끼가번쩍시민축제>를 펼쳤다. 일정기간에 참가동아리 신청을 받고, 장소를 디자인하고, 장소별로 각 동아리가 배치되어 공연, 전시, 체험으로 시민들을 맞이했다. 또, 동아리 회원들이 직접 스텝이 되어 무대설치부터 철거까지 함께 하였다. 동아리 회원들의 자원봉사모임 명을 “기동단”이라고 지었고 활약을 했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끼가번쩍시민축제>에 참여한 동아리 수는 약 1000여 개의 동아리이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축제, 서로가 격려하는 축제, 내가 즐거운 축제로 자리매김하며 자라왔다.
[사진] 오전 9시에 만나 무대 장치를 나르고 설치하는 모습이다. 동아리 회원들이 자원하여 축제 스텝이 되고 무대 설치부터 철거까지 함께 하였다.
<인천생활문화축제>는 이러한 역사성을 갖고 있다. 민간단체에서 주관했던 <끼가번쩍시민축제>의 목적과 의미를 기반으로 인천생활문화축제는 태어났다. 축제의 주인이 동아리 회원들이 축제의 일원이 되어 공연무대를 채우고, 전시하고, 체험을 준비하여, 동아리를 알리고, 시민에게 생활예술을 알리는 축제가 되는 것이다. 인천생활문화축제 과정은 이렇다. 워크숍을 통해 생활예술의 의미와 축제에 대한 시선을 함께 맞추고, 축제의 이름을 투표하여 정한다. 축제를 선포하고, 라인업을 함께 구성하고 출연료도 함께 논의하여 기준을 정한다. 각자 연습과 작품준비를 하고 필요한 기자재들을 준비하면 축제가 이루어진다. 물론, 100% 동아리 회원들이 준비할 수는 없지만, 그냥 공연만 하고 가는 축제가 아니라, 서로 격려하고 축하해 주는 축제로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인천생활문화축제는 다른 축제와 달리 준비하는 과정이 오래 걸린다. 동아리들과의 의사소통 구조가 기본이기 때문에 전체 동아리가 모이는 워크숍도 몇 차례 진행해야 하고, 실무자들도 많은 회의를 진행해야 비로소 축제가 이루어진다.
제2회 인천생활문화축제의 목표는 더 많은 동아리가 참여하고,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하며 우리(동아리)도 즐거운 축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 결과 84개 공연 동아리, 15개 체험 동아리, 11개 전시동아리 등 총 100개 동아리가 참여하였으며, 60명의 스텝이 배치되어 진행되었다. 6곳의 공연장소, 5곳의 전시장소, 1곳의 체험 장소를 비롯해 푸드 트럭, 이벤트 부스 등이 함께 어우러져 진행되었다. 그리고 장소마다 컨셉을 달리하여, 칠통마당은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중앙광장은 넓은 잔디 위에서 관객과 공연자가 편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꾸몄다. H 동은 밴드팀만의 공간으로 꾸며져 간단한 음료와 함께 개성 있는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사진]칠통마당에서 공연하고 있는 첼로동아리‘바첼리’. 이번 축제에는 총 100개 동아리가 참여했으며, 그 중 84개는 공연팀이었다.
[사진]인천아트플랫폼 중앙광장 공연장. 공연장마다 컨셉을 달리하여 진행되었다. 중앙광장에서는 17개팀과 통기타 콜라보공연, 합창콜라보공연이 이루어졌다.
한중문화관 야외는 공연장소 중 가장 많은 동아리가 공연하였다. 축제에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축제의 과정을 담은 영상과 더불어 20개 동아리가 모여 콜라보레이션 공연을 펼쳤다. 또, 지나가는 이들이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버스킹 무대를 마련하였다. 전시도 카페 서니구락부, 하버파크호텔 등 시민들의 접근성이 높은 곳으로 전시장소를 섭외하였으며 일주일간 전시가 이루어진다.
[사진]H동 밴드 동아리 공연장. 작년보다 밴드동아리 참여율이 높아 밴드팀이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장소를 특화하였다.
[사진]축제의 마지막은 20개 동아리가 창작곡으로 콜라보레이션 공연한 것이었다. 축제 전 연습모임을 갖고, 즐겁게 서로 배려하고 준비하여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어쨌든 9월 15일 축제는 끝났다. (물론, 전시동아리의 전시는 21일까지 진행된다) 동아리들이 축제에 임하는 모습은 아름다웠고, 한순간 한순간이 소중했다. 축제당일 우천예보가 있었고 비도 내렸다. 운영진이 야외공연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동아리 팀원들은 괜찮다며 운영진을 오히려 안심시켰다. 테이블을 나를 때도 사람이 없어 고심했지만 도와주겠다며 함께 날라주었다. 오랫동안 축제에 참여해서 힘들 텐데 웃으며 공연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다리 아픔도 싹 없어졌다.
축제 당일 철거까지 완료 후 만보계를 보니 총 2만8천 보를 넘게 걸었더라. 아마, 실무자들이 다 그러했을 것이고, 참여했던 동아리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 걸음만큼 축제는 보람된 일이다.
김경원(金京垣, kim kyeong won)
현. 문화바람 대표
제2회 인천생활문화축제 총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