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나누는 일상의 이야기 <선린동 사진구락부>

 

햇볕 따스한 4월의 봄날. 차이나타운 해안성당 맞은편에 자리한 카페 모노그램에서 < 선린동 사진구락부(이하 구락부) >의 회원들을 만났다. 운 좋게도 기자가 < 구락부 >를 방문한 날은 생일파티가 열리는 날로, < 구락부 >의 많은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인천문화재단에서 진행한 ‘화교학교 사진반 수업’을 계기로 만들어진 < 구락부 >는 올해로 2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다양한 전시회와 아카이빙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은미 사진작가를 비롯하여, < 구락부 >의 회장 손미영 씨, 총무 왕언리(앨리스) 씨, 화교학교의 선생님이자 < 구락부 >의 회원인 손세혜, 추계홍, 사서범 선생님을 만나 < 선린동 사진구락부 >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선린동 사진구락부 >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모임을 구성하게 된 계기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활동이 궁금하다.
서은미
2014년 인천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사업인 [무지개다리] 사업을 통해 사진반을 개설했다. 학생반, 인천대 유학생 반, 성인반의 3개 반이 있었고, 성인반은 화교학교의 졸업생과 선생님, 학부모 등이 함께했다. 사진반 수업이 진행되었던 2014년 12월에 아트 플랫폼에서 수업을 정리하는 전시가 있었고, 그 후에 성인반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모임을 진행하면서 이어져 오고 있다.
앨리스
한 달에 한 번, 매월 두 번째 수요일에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각자 한 달 동안 사진을 찍어오고, 그 사진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일주일에 한 장 정도 사진을 찍어오고,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얼마 전 벚꽃이 한창일 때는 같이 사진을 찍으러 나가기도 했다.

지난 해 <114년의 기억, 한국인천화교중산중소학>이라는 책을 출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출간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서은미
아카이빙을 통해 모은 자료집의 일종이다. 회원 중 대부분이 화교학교 출신이거나 선생님이기 때문에, 무지개다리사업의 일환으로 지원을 받으면서 화교학교의 역사와 기록을 아카이빙하기로 하고 1년여 동안 자료를 모았다. 작년 12월에 그 결과물로 책이 나온 것이다. 1902년에 화교학교가 설립된 이후로 2015년 당시 현재까지의 기록들을 모을 수 있었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전시회에는 주로 어떠한 작품을 담는가?
서은미
맨 처음 열었던 사진전은 < Re:선린동 2014 >로, 사진반 수업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진행되었다. 사진전 제목은 선린동을 다시 불러낸다는 의미를 가졌다. 그 직후 < 화교 생활사 사진전 >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진행했다. 인천대에서 진행된 전시회였는데 < 구락부 >의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서 사진을 모았다. 이후에도 세 명의 회원이 따로 사진전을 열기도 했고, < 114년의 기록 > 출판기념회 때도 사진전을 열었다. 작년 전시 때는 회원 네 명이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으로 < 네 명의 여자가 찍은 사계여행 >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열었다. 재작년에 대만으로 사진 워크숍을 다녀왔는데, 올해는 몽골로 사진 워크숍을 가는 것을 계획 중에 있다.

다양한 예술분야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사진을 소통의 수단으로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사진에 주로 어떤 내용을 담는가?

서은미
우선은 재단에서 사진반 수업을 연 것이 첫 번째 계기였다. 화교학교의 선생님들이 한 분 두 분 모이기 시작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됐다.
손세혜
처음에는 재밌겠다는 생각만으로 시작했다. 전에는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풍경을 찍는 정도로만 사진을 찍었었는데, 사진을 배우고 나서는 달라졌다. 오히려 사진을 배운 이후에 사진을 찍는 장소가 훨씬 줄어들었다. 무엇을 찍고 싶다고, 사진을 찍으러 어디를 가야겠다고 마음은 먹지만, 현실적으로 멀리 가기는 힘들어서 아직까지는 근처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지금껏 찍은 사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앨리스
몽골에서 찍었던 별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구락부>의 다른 회원과 함께 몽골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찍었던 별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서은미
손미영 회장님은 동네를 많이 돌아다닌다. 일상에서 골목의 요모조모를 사진에 많이 담는다. 손세혜, 추계홍, 사서범 회원은 화교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학생들의 모습을 많이 찍는다. 사서범 선생님은 매주 여행을 떠날 정도로 국내 곳곳을 여행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여행 다니면서 남긴 사진들이 인상적이다.

손미영 회장님은 동네 사진을 특히 많이 찍는다고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손미영
원래 인천에서 화교학교를 다니다가, 졸업하고 대만으로 갔다. 대만과 중국에서 각각 10여년씩을 살고, 인천으로 돌아온 지 5년이 되었다. 인천으로 돌아와서 일을 쉬고 있었는데, 마침 사진반 수업이 열려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진을 잘 찍어야지라는 생각보다는 사람들과 같이 모여서 어울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계속 활동을 했다. 사진반 수업을 들으면서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하려 고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동네 사진을 찍고 있다. 처음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인물의 모습을 담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골목의 오래된 모습과 같이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 것 뿐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회원들과 언니 동생하며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것도 즐겁다.

추계홍 선생님과 사서범 선생님은 화교가 아니라 대만 분들이신데, 화교학교에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추계홍
대만에서 대체복무를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한국에 와서 1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군인 신분으로 1년간 복역을 했고, 제대한 이후에도 계속 남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서은미 선생님이 아들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것도 좋았고, 학교의 아이들도 정말 귀여워서 학교에 남게 되었다.
사서범
인터넷에서 모집공고를 보고 화교학교에 오게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은 적응이 되었고 편해졌다. 벌써 7년차 선생님이다.

서은미 작가님은 인천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데, 특별히 화교학교에 관심을 가지고 < 구락부 >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서은미
지금은 다 이사를 가버리고 없지만, 모교인 축현국민학교와 남인천여중이 이 동네에 있었다. 학창시절에 놀던 동네였던 것이다. 이 동네에서 지낸 물리적인 시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지냈던 추억들이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동네에 대한 애착, 애증 같은 것들이 남아있다. < 인천 이지안 >이라는 개인작업을 진행할 때 인천의 다양한 사람들과 작업하면서 도시 ‘인천’의 특징을 잡으려고 시도했었다. 인천은 개항도시이고 중국, 일본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는데, 화교만이 이곳에 정착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화교 분들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한 [무지개다리] 사업에 참여하여 화교학교에서 사진반 수업을 열게 되었다.

기자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차이나타운이라는 말을 들으면 관광지 정도로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곳에 오랜 기간 화교사회가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화교학교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이렇게 화교사회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사진전과 활동은 화교사회를 알리며 지역사회에 소개하고 또 소통하고 있는데, <구락부>활동을 시작하기 전과 후에 변화한 점이 있는지?
손세혜
학교가 개방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인 것 같다.
서은미
그렇다. 작년 가을에 열린 제 3회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화교 소학교 학생들이 찍은 영화의 시사회를 열었다.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영화제에서 많은 작품이 상영됐는데,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찍은 영화가 큰 주목을 받은 것이다. 올해도 영화수업이 진행되고, 학생들이 직접 촬영을 하고 편집까지 거쳐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전시나 보도 덕에 화교학교가 많이 노출되고, 찾아오는 사람도 늘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지역사회가 화교학교나 화교 사회에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이전에는 학교가 개방이 안 되어 있었나?
손세혜
이전에는 화교학교와 지역사회의 교류가 아예 없었다. 원래 폐쇄적인 사회였는데, 사진 수업을 통해 외부인이 화교학교에 처음 들어오게 되었고, 수업을 하면서 화교학교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을 외부에 전시를 하는 등의 교류가 생긴 것이다.
서은미
화교를 피사체로, 대상으로 외부인이 작업한 사진은 있었지만, 자체적으로 사진을 찍고 전시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 큰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화교 사회 내부에서도 좋은 반응이 있었다. 학생들의 사진도 전시되었는데, 학생들의 사진들은 성인반의 사진보다도 더 다양한 것들을 담고 있었다. 화교 사회 내부에서 많은 어른들이 학생들의 작업 결과를 보면서 “기특하다, 기대 이상이다”하며 좋아했고, 영화제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결과물들이 있었기에 계속해서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화교학교가 있는지조차도 모른다. 꼭 <구락부>의 활동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화교학교와 화교사회가 이 전보다는 더 많이 알려지고 소통하고 있는 데에 일조한 것 같아 뿌듯하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사진전이 있는가?
서은미
1년에 한 번은 사진전을 열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작년에 화교학교의 역사에 대한 아카이빙으로 사진을 모았던 것처럼 ‘화교 생활사 아카이빙’을 계획하고 있다. 14년도에 생활사 사진 공모전 때문에 모아놓은 사진들이 있어서 더 많은 자료들을 추가해 책을 발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 선린동 사진구락부 >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앨리스
다른 회원들보다 늦게 참여하게 되었지만, 함께 사진을 찍고 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이 아닌 다른 일상의 이야기도 나누는 것이 참 즐겁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 말고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 구락부 >에서 좋은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 인연을 통해 또 다른 인연들도 만나게 되었다.
추계홍
재미있다.
사서범
한국에서 친구들이 많지 않았는데, <구락부>에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사진도 찍으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손세혜
제일 많이 놀 수 있는 나이에 한국에서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 곳에서 지내는 생활이 매우 단조로웠다. 대학친구들도 다 대만에 있고, 집과 학교만을 오갔기 때문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생활이 아니었다. <구락부>에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여가 활동을 전보다 더 많이 즐기게 되었다. 심심할 때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오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사진기를 메고 밖으로 나가거나, 사진전을 보러가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좋은 장소들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손미영
이 모임이 끝까지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정말 좋다.
서은미
처음 사진반 수업을 기획하고 진행할 때는, 폐쇄적인 이 곳의 특성상 참가자 모집도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모임이 이어져오고 있고, < 구락부 > 의 회원들이 비타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말 내내 심하게 앓았는데, < 구락부 > 모임에 오면 기운을 차리게 된다.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 말고도 수시로 모인다. 오늘처럼 회원의 생일이 있으면 챙기기도 하고, 이 곳(카페 모노그램)에서 함께 커피수업도 듣는다. 일상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 선린동 사진구락부 >는 사진을 통해 화교사회를 지역사회에 소개하는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 구락부 >의 회원들에게서 사진에 대한 더 큰 열정과 애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단순히 화교사회를 소개하는 수단으로 사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 일상을 다시 발견하고, 그 일상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고 있었다. 재단에서 시작한 작은 수업 하나가 많은 사람의 일상을 변화시켰고, 이제 그들에게 사진은 소중한 일상이자 세상과의 통로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을 통해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 선린동 사진구락부 >,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인터뷰 및 정리 인천문화통신 시민기자 김진아